어느 프리랜서의 우울감 치유법 / 정여울
프리랜서로 살다 보면 어떤 특별한 이유도 공지받지 못한 채 일감이 끊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서늘한 소외감을 느낀다. 내가 왜 추방당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추방을 당할 때마다 내 존재의 기둥이 하나씩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직장이 없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또는 내 의견을 굽힐 줄을 몰라서 추방되는 듯한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깊은 애정을 가지고 참여했던 일이나 조직에서 추방당할 때마다 나는 프리랜서의 고립감을 느꼈다. 일에 대한 내 깊은 애정을 철회할 때마다 내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가는 느낌으로 괴로웠다.
어떤 사람은 “글이나 쓰고 여행이나 다닐 수 있는 네 팔자가 부럽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나는 ‘글이나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마다 내 인생을 걸고 있다. ‘여행이나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글쓰기의 소중한 재료를 얻기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은 나도 취직을 하고 싶었지만, 매번 면접에서 떨어졌다. ‘당신은 이미 작가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곧 면접에서 떨어지는 계기였다.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작가로서의 내 삶이 따로 있다는 것이 취직의 결격사유였다. 하지만 정작 나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 불안한 인생 때문에 매일 불안에 떤다. 그런데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도 하나같이 ‘불안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삶 자체가 본래 불안하고, 현대사회의 노동환경 자체가 불안하다는 더 큰 틀의 진실을 성숙하게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느끼는 이 항시적인 불안을 프리랜서의 특수한 고통이 아닌 삶 자체의 고난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이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언제 일감을 놓칠지 모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함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최고의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나의 진심과 나의 최선이 언젠가는 나와 전혀 친하지 않은 타인에게도 반드시 전해졌다. 일을 넘어 타인과의 따스한 관계 맺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내 삶의 길과 일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나를 바꾸었다.
얼마 전에는 내 책의 독자가 이메일을 통해 SOS를 청해왔다. “저는 직장에서의 감정노동이 너무 힘들어요. 사회생활에 소질이 없어요. 그냥 선생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글쓰기만 배우면 안 될까요. 저를 문하생으로 받아주세요.” 나는 그 독자에게 이런 취지의 답장을 보냈다. “먼저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그만두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주세요. 어쩌면 감정노동에 지쳐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건지도 몰라요.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다면 누군가의 문하생이 되기보다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용감하게 글쓰기훈련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우선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의 문제를 최대한 직면한 뒤, 또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도 늦지 않다. 또한 작가에게도 사회생활이 필요하다. 작가도 편집자와 독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때, 더 좋은 작가가 되는 길도 열린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조직생활을 피할 수는 있지만, 더 커다란 의미의 사회생활을 피할 수는 없다. 더 나은 일감을 찾기 위해, 그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매일 새로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분투해야 한다. ‘다음에, 다른 일자리에서 더 잘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이 한정된 상황에서, 나의 최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 꿈의 씨앗을 뿌리고, 내 꿈의 열매가 맺힐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매일 조금씩 더 나은 나, 더 깊고 향기로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조직에서 버려질까봐 두려워하기보다는 후회없이 이 순간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미련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프리랜서의 삶이 내게 가르쳐준 용기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