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빵 한 조각과 죽 한 그릇 / 설성제
그 겨울 언덕길에 담장이 성벽처럼 솟아있었다. 주먹만하고 반들반들한 돌이 보석처럼 빼곡하게 박힌 돌담이었다. 높은 담장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사는 게 별반 다름이 없는 줄 알면서도 궁금해서 자꾸만 기웃했다. 잎이 너덧 남은 나뭇가지 하나가 담장 위로 넌지시 고개를 내밀어주었다면 조금은 덜 추웠을까. 마침 누군가 이불을 터는 모습이 비쳤다. 성벽 꼭대기에서 깃발이 나부끼는 듯했다. 일요일 오전, 딸과 함께 오르는 서울의 낯선 길이었다.
“어떻게 이 먼 데까지?”
“어떻게 찾다보니, 엄마…….”
한 시간 넘도록 지하철을 타고 온 데다 오르고 올라도 교회는 타나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혹 승용차가 지날 때마다 바퀴에 달려온 찬바람이 우리 앞을 몰아치는 바람에 옷깃을 더욱 여미었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찾은 곳인데. 조금만 더 가면 돼.” 딸이 미안했던지 다시 대답해 주었다.
어젯밤 늦게 딸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콧구멍만한 옷장을 정리하고 방을 몇 번이나 걸레질하면서 서울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딸은 집에서 다닐 때처럼 여전한 생활이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온갖 대회와 공모전을 기웃거리느라 몸이 파김치였다. 이곳에 머무는 짧은 기간만이라도 좀 쉬어가며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정 마음에서 길어 올린 말이라도 껍데기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말은 소용이 없다.
나는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만들어내느라 숨이 턱까지 찼다. 지난 날 남들보다 헤펐던 웃음이 바닥났고 누굴 붙들고 사정을 말할 수 있는 숙기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아침마다 수첩에 빽빽한 일정을 메모해놓고 하루를 지내는 중 메모된 일정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다 보면 밤이었다. 하루에 통장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도움의 손길을 찾아 쉽고 편안해 보이는 길을 가는 건 삶을 우회하는 길이며, 차라리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두운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 바른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내가 만든 억지 길이었는지도.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는 말 대신 내가 도움을 거절한다는 쪽으로 돌리고 싶어서였다.
추운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하여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말을 아끼며 걸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높은 담장이 있는 저택 안을 상상했다. 담장 너머로 드러난 이층 삼층집 꼭대기 부분과 햇빛에 눈부신 창문들이 근엄하고 근사해 보였다. 그 든든한 돌담에 잠깐 기대어보고 싶기도 했다.
한 시간 넘도록 찾아온 교회치고는 특별함이 없어보였다. 그날 설교내용은 대문 밖에 선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헌데 투성이로 부잣집 대문 밖에 버려진 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불리려 했지만 자색 베옷을 입은 부자는 나사로를 돌봐주지 않았다. 나사로도 부자도 세상을 떠나 나사로는 천국에, 부자는 지옥에 갔다.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은 죄로 부자가 지옥 갔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사로에게 필요한 건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배고픈 나사로에게 정녕 필요했던 건 누군가 건네주는 마른 빵 한 조각과 죽 한 그릇이라는 내용이었다.
그즈음 나는 “힘내라, 행복해라, 파이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격려의 말에 오히려 내 안에 부정적 반응이 튀어 올랐다. 긍정적 위로가 나를 더욱 깊은 막연함과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게서 일어나는 그런 아이러니한 마음과 배리가 나를 더 서글프게 했다. 서울 낯선 곳에 홀로 던져진 딸에게, 하루하루 생활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마른 빵 한 조각과 죽 한 그릇이었던 것을.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식탁위에 팔뚝만한 바게트들과 간이 잘 된 흰죽 그릇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함께 빵을 뜯고 따뜻한 죽을 뜨며 만담도 오갔다. 내 몸과 내 영혼이 가장 가난했던 시절, 내 마음의 한 계절이었던 그 겨울, 높고 아름다운 돌담과 그 돌담 안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올려다 본 그 날, 그 한 끼 양식이 나의 겨울을 버텨오게 한 힘이 되었다. 허공으로 흩어져버리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 따뜻하고 든든한 영혼의 양식 그리고 육신의 밥이 내 살과 피에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살기 좋아졌다고 나사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 굶주림과 질병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허기지고 병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부조리한 일에 시달리고 엉뚱한 소문에 걸려들고 삶의 실적을 요구하는 오늘날 정신적 부담감에 던져져 헌데 앓는 나사로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부자가 무관심으로 모르쇠하는 세상이다.
베트남에서 온 그녀를 만난 건 나에게 행운이다. 그녀는 연명하다시피 살아내고 있다. 그녀를 보면 왜 어려운 사람이 자꾸만 힘든 일을 덧입게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 몸을 다쳐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그녀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몸이 만신창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본국으로 돌아가 버릴까봐 시장에도 혼자 못 가게하며 일일이 간섭을 한다는데 “어머니가 안계셨으면 사랑하는 남편이 있을 수 없지요.”라고 말한다. 식당이며 인력시장이며 무슨 일이든 마다않는 그녀를, 낯선 나라에 들어와 가난에 던져진 그녀를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현실을 탓하지 않고 앞날을 꿈꾸고 있으며 자신의 운명에 순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진 비록 초라한 빵과 죽이라도 나누고 싶어 연락을 하지만 그녀는 너무 바쁘다. 좀체 만나기가 힘이 든다. 내 안에 있던 그녀를 향한 마음과 말이 텅 빈 겨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까봐 애가 탄다. 나와 마주한 나사로에게 외면당하는 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