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 / 류영택
바늘귀를 향해 연신 실 끝을 디미는 아내의 손이 가물가물 허공에서 맴돈다. 고개를 치켜든 그 모습이 마치 막잠에 들기 전 누에의 흐느적거림처럼 보인다.
아내는 겨울 초입이면 덧버선을 만든다. 뼛속까지 시린 발을 덮기 위해 내피와 외피 사이에 무명 솜을 넣어 촘촘히 바느질을 한다. 바느질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결혼하고부터 줄곧 맞벌이해오느라 성한 뼛속이 없다. 그러니 바느질 하는 아내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지나 마치 내게 시위를 벌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실아, 잘 살아라."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목이 울컥했다. 스물을 갓 넘긴 딸이 제대로 시집살이를 해낼 수 있을까, 행여 눈 밖에 나지나 않을까 목소리에는 딸을 보내는 걱정이 물씬 젖어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따라 오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기 싫어 그런 것 같았다. 아내와 눈을 마주칠까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길을 걷다말고 다시 뒤를 돌아봤다. 아내도 돌아보고 있었다. 두 분 어른께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한 분은 옷고름에 눈물을 찍어내고 한 분은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달리 도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전 장모님의 말씀은 딸에게 한 게 아니라 나 들으라고 한 말 같았다. 당신 딸을 호강은 못 시키더라도 생고생은 시키지 말라는 당부 같았다. 나는 아무 염려 말라는 듯 두 분을 향해 목례를 드렸다.
담 모퉁이를 돌아서서 아내를 기다렸다. 한복을 차려입은 아내의 손에는 자그마한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순간 가슴이 찡해왔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는 잠시 전 눈물을 쥐어짜던 모습과 다르게 샐쭉이 웃어 보였다. 손에 들린 보따리를 달라고 하자 내 손에 들린 이바지음식과 옷가방만 해도 힘이 들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내 손에 들린 짐이 만만치 않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어젯밤 장모님의 당부 때문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가에서는 출가하는 딸에게 반짇고리를 해 보내는 가습이 있다. 다른 예물은 일찌감치 신혼집에 들여놓지만 이것만은 신행의 딸 손에 들려 보낸다.
"시집 문지방 넘기 전에는 절대 손에서 놓지 말거라."
지난밤 장모님이 했던 말을 아침에는 처고모님이 재차 반복했다. 아내에게도 그랬고 처제들을 보낼 때도 그랬었다.
귀중한 물건도 아닌 반짇고리를 처가 쪽에서 유독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데는 나름의 뜻이 담겨있었다. 출가한 딸이 부귀영화는 못 누려도 그 집 귀신은 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고된 시집살이로 심신이 지칠 때나 어쩌다 전해오는 친정 소식에 마음을 잡지 못할 때면 긴긴밤 반짇고리를 벗 삼으라는 뜻이었다.
아내는 실을 꿰다 말고 반짇고리에 들어있는 돋보기안경을 꺼낸다. 살아생전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다. 테가 둥근 안경을 걸친 아내는 자신의 모습이 멋쩍었던지 나를 향해 희멀건 웃음을 내놓는다. 나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 전 아내의 모습은 간곳없고 자리엔 쪽진 머리의 어머니가 앉아있다. 어머니는 아내를 많이도 힘들게 했다. 물론 작심하고 시집살이를 시킨 건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맞벌이를 했다. 아내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근무 했던 섬유공장은 남자보다는 베를 짜는 숙련공 직수를 더 필요로 했다. 아무리 고장 난 기계를 잘 고치는 기사라도 거느린 직수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자리가 위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를 짜는 일은 힘이 든다. 이십사 시간 주야 막 교대로 일을 한다. 긴 시간 찜통 같은 실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옷을 겹겹이 싸 입고 여름 땡볕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서 아내는 만삭이 되도록 베를 짰다.
아이를 낳고도 마찬가지였다. 해산날이 가까워오자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머니는 평소 나드실 때와는 다르게 커다란 봇짐을 이고 오셨다.
"때가 있는 법이다."
돈은 벌 때 벌어야 하니 아이를 낳고 나면 곧장 직장에 나가라는 말로 들렸다.
어머니의 말씀에 아내가 더 좋아했다.
"얼마 안가 집 장만하겠어요!"
입이 한 발이나 나올 줄로 생각했었는데 의외였다.
아이가 걸음마를 할 쯤 어머니는 몸져누우셨다. 아내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는 동안 부어왔던 적금과 퇴직금까지 병원비로 내놓아야 했다.
어머니의 병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처음엔 심장이 좋지 않아 자리에 눕더니 점점 치매 증세를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병수발을 하는 며느리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다 정신이 맑아져도 평소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몸져누운 당신이 귀찮아서, 행여 며느리가 못된 짓을 하지나 않았을까 밥상을 뒤엎기까지 했다. 아내는 말없이 엎질러진 상과 밥그릇을 주섬주섬 챙기고 방바닥을 훔쳤다. 혹시나 막내며느리인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하냐며 따지고 들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엎드려 걸레질을 하는 아내의 좁은 어깨를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새겼다.
바느질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다. 여전히 돋보기를 끼고 있다. 나는 코끝에 걸린 안경이 걱정이 되어 말을 건다.
"어지럽지 않아?"
"아무래도 산후조리가 시원찮았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말에 죄인이 되고 만다. 아내의 무릎 위에 놓인 덧버선이 엄동설한 흥부네 이불 같아 보인다. 발을 덮으면 얼굴이 시려오는 반쪽 이불처럼 가난해 보인다.
오랫동안 아내와 함께한 반짇고리, 연분홍 공단 겉면에 한 쌍의 원앙새를 오색실로 수를 놓았건만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네모진 대바구니 속에는 무명실타래와 바늘, 골무와 보무라지. 고단했던 아내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을 뿐이다. 결코 녹녹치 않은 세월을 감당할 수 있었던 건. 딸의 손에 액막이를 들려 보내는 처가의 풍습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유실아 잘 살아라.”
자꾸만 메아리쳐 오는 말에 나는 아내를 향해 쓴웃음을 짓는다. 그것도 웃음이라고 아내는 마주 환한 웃음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