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조지훈(1920∼1968)
멀리서 보면 / 보석인 듯
주워서 보면 / 돌멩이 같은 것
울면서 찾아갔던 / 산 너머 저쪽.
아무 데도 없다 /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
혼자서 들여다보며 / 가만히 웃음짓는 것.
(후략)
1967년 10월 27일. 한 일간지에 조지훈의 시 ‘행복론’이 실려 있었다. 그로부터 53년이 흘렀고 쉰세 번의 가을이 우리를 스쳐갔다. 그 사이에 사람은 죽고, 사람은 태어나고, 사람은 울고, 사람은 웃었다. 그때와 같은 가을이되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 가을이라는 사실이 참 묘하다.
53년 전의 행복은 53년 후의 행복과 어떻게 달랐던가. 아니, 53년 후의 행복은 53년 전의 행복과 어떻게 같으려나.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이 아쉬워 일부러 10월에 탄생한 시를 읽어본다. 10월에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올해 우리가 행복할 날은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행복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정설은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일 것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있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이 시를 조금만 읽으면 ‘파랑새’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 ‘파랑새’의 행복은 집 안에 있었지만, 조지훈의 행복은 집 안에도 있지 않았다. 집보다 더 가까운 곳, 더 깊숙한 곳, 바로 마음 안에 행복이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게다가 행복은 거기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일체유심조라, 한 점 형태도 없는 마음 자락이 오늘을 천국으로 만들기도 하고 지옥으로 망치기도 한다.
시를 읽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한다. 할 일이 생겼다. 파랑새도 없는 집 안에, 파랑새처럼 잠든 아이의 귓가에 대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네 마음이란다’라고 속삭여줘야겠다.
주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