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명품인생 / 김병권
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명품을 갖고 싶어 하고 또 자신도 명품인생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명품이란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귀금속이란 불의 연단을 통해야 값진 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고난의 연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값진 삶, 명품인생을 영위할 수가 없다. 예로부터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이와 같이 청소년기부터 온갖 고난의 역경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짧은 청소년기에 수많은 경험과 연단을 다 체득할 수는 없다. 물론 부모와 스승과 선배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나 견물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터득할 수 있는 대리체험의 모색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문학을 접하는 일이다. 문학을 하면 수많은 인간사의 내면 통찰을 통해 자신의 심성을 정화, 고양시켜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게 된다. 즉 정신적인 에너지를 충전하여 삶의 의욕을 북돋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글을 쓰면서 사상과 가치관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전 문단행사에 참석했다가 원리시인 H선생과 장시간 대담한 일이 있다. 그 분은 구순이 넘은 고령인데도 그 순박하고 결 고운 심성 때문에 항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문학소년'이라는 애칭을 받고 있다. 가끔 제자나 후배들로부터 '선생님, 그처럼 젊게 사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서슴없이 '시를 쓰면 젊어지지….'라고 하며, 역시 소년처럼 천진스럽게 웃는다.
이러한 H시인한테는 제자가 많다. 물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가르쳤으니 제자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근래에는 시작詩作공부를 위해 찾아오는 나이 든 제자들 때문에 한가롭기 지낼 수가 없다고 한다.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제자들을 가르친다기보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흥미롭고 즐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자 중에는 좀 이색적인 분이 있어 오히려 자신이 새로운 인생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전직 장관인 L씨는 칠십 중반을 넘어 팔십줄에 들어선 나이임에도 새삼스럽게 시작詩作공부를 위해 온갖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장관시절에 시를 알았더라면 좀 더 품격 있는 정사政事를 펼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늦게 이것을 깨닫게 되어 후회막급입니다. 사정이 허락된다면 후배들한테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시집 한 권을 내고 싶으니 꼭 도와주십시오."
이와 같이 감동적인 고백을 들은 스승은 오히려 그 제자 앞에 머리가 숙여지더라는 것이다. 실로 시를 써 온지 육십 여년 만에 느껴보는 참된 시인의 보람이었다.
'시를 알면 국가경영을 잘 할 수 있다는 자각自覺,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관료들이 이러한 시심詩心에 젖을 수 있는 정신문화가 확산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남은 생애동안 더욱더 혼신의 정열을 바쳐 시작에 임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를 쓰면 젊어진다'는 그의 말은, 결코 즉흥적으로 내뱉은 인사치레만이 아니었다. 문학하는 마음에는 늘 긍정적인 사고와 기쁨을 창조하는 감동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쉽사리 노기怒氣를 띄거나 증오심憎惡心에 잠길 수가 없다. 그것은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 속에는 희로애락을 본류本流로 하는 감정에서 희喜와 樂을 선호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감정을 극대화하여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예술, 특히 문학을 접하는 일이라 하겠다.
문학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설사 인생 그 자체가 괴로울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면 얼마든지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가령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본을 투자했을 때 이윤이 남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별로 애태우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 이럴 때 정신적인 평안을 확보하는 쪽은 마땅히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즐거움을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철학을 가리켜 애지愛智의 학문이라고 할 때, 문학은 애락愛樂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 이것은 자칫 육체적인 쾌락으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애락이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정신적인 즐거움은 영원성을 띠기 때문이다.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바로 한시성의 육체와 영원성의 정신을 대비시킨 말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몇 권의 문학서적과 거기에서 얻은 뜨거운 감동을 잊지 못하는 것도 바로 위대한 예술혼藝術魂에 접목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경험이 각별하다해도 그것은 육체를 위한 것이기에 쉽사리 잊을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울림으로 얻어진 감동은 정신적인 내면세계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들도 따지고 보면 문학이 소외된 풍토에서 빚어진 부산물이라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전직 장관 L씨의 넋두리가 한층 진한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모름지기 생활 속에서 문학을 가꾸고 그 문학을 통해 감동과 즐거움을 창출해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인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