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없이 다정한 시대에서 ―김소형(1984∼ )
(…)/인간의 품위가 뭐냐고 묻는/너에게/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이라는/환상에 대해/어떤/구원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그럴 때면 너는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왜 내게는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품위가 우리 곁에서/잠시 사라진 것이라고 말하려는/나에게/너는 그것을 찾게 되면/알려달라고 말했다/그것은 오래전에/잃어버린 것이라고/창가에 앉아/창과 빛이 있으면/그만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말하는 너를 보며 다정하고/까마득하게 웃을 뿐이었다
궁금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의 하나다. 궁금해서 뉴스를 보고, 드라마 다음 회를 기다린다.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마음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을 꽁꽁 싸매 감춰 두지만 시는 정반대다. 마음을 글자로 풀어놓은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읽고 싶은 날은 시 읽기 좋은 날이 된다. 사각사각, 시집 넘어가는 소리 사이에는 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래서 조금 길지만 이 시를 꼭 소개하고 싶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 마음만으로도 꽉 차 있는 시다. 원문은 더 길지만 오늘은 조금만 따왔다. 품위를 잃어버려 슬픈 한 인간과 그 인간을 달래는 더 슬픈 인간의 이야기가 여기 적혀 있다. 인간으로서 내가 지닌 품위는 어디에 있나요? 물어보는 ‘너’는 꼭 어제의 우리와 같고,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다정하게 웃을 뿐인 ‘나’는 꼭 오늘의 우리와 같다.‘품위’라는 말을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좋은 덕목들은 점차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뜻은 알아도 품위 있는 사람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중에는 고어사전에나 남아 있으려나. 우리가 가졌고 사랑했으나 잃어버리고 있는 좋은 말. 김소형 시인의 다정함 덕분에 오늘은 ‘품위’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