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과 기둥 / 변해명
뒷산에서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 산 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시인의 시 <윤사월>이 나도 모르게 입안에서 맴돈다. 나는 눈 먼 처녀처럼 눈을 감고 꾀꼬리 소리에 귀를 기우리며 시인에 대한 그리움의 소리를 듣는다.
느릅나무 속잎 피는 열두 고비를 청노루 맑은 눈으로 바라보시던 시인의 맑은 영혼이 그리운 하루다.
우리 집은 숲과 닿아 있다. 뻐꾸기, 꾀꼬리가 울고 송홧가루가 날리는 아름다운 숲과 함께 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김동리 선생의 수필 <수목송>도 다시 음미하게 된다. 숲은 동양인에게 성격이 다른 신神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수목이 없는 세상은 아름다움도, 평화도, 기쁨과 위안, 희망도 행복도 있겠는가라고 숲의 고마움을 말하고 있다.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분의 글 속에는 자연을 향한 남다른 사랑이 감동으로 출렁인다. 이 두 분은 내게 문학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신 분이다. 내가 시를 공부하며 시들을 즐겨 암송할 때에도, 수필과 소설을 탐독할 때에도 언제나 스승이 되어 주었다. 한국현대문학에 주춧돌과 기둥처럼 우리 문학이라는 튼튼한 집의 기초를 세우고 우리 마음속에 고향을 간직하게 해 주신 분들이다. 두 분을 생각하면 우리 한옥의 주춧돌과 기둥을 생각하게 된다.
옛날에 한옥을 지을 때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 집을 지었다. 그때 주춧돌은 그저 생긴 그대로의 펑퍼짐한 자연석을 구해 사용했다. 얼핏 주춧돌은 반듯하고 바닥이 반반해야만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써도 기둥을 세우는 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둥에 그랭이질만 잘 하면 되어서이다.
돌의 생긴 모양에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파내는 것이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돌과 나무라는 성질이 아주 다른 두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져 나무기둥이나 돌이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 듯이 밀착되면, 그렇게 세운 두 개의 기둥 위에 널판을 얹고 그 위를 목수들이 올라가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처럼 좋은 집을 짓는 데는 주춧돌과 기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과 기둥을 정확하게 자리를 잡고 세우느냐에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다듬어지지 않은 암반 같은 돌인 덤벙주초라도 엉거주춤 다듬어지지 않은, 기둥 되기에는 맞지 않는 나무라도 그런 자료로 집을 지어도 튼튼하고 야무진 바탕이 되게 하는 그랭이질, 한옥 짓는 목수는 그것에 힘을 쏟았을 것이다.
우리말도, 우리글도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시절, 마음 놓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을 것인가. 우리 문학의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는 좋은 우리 정서의 소재를 또한 마음대로 고르고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그 시절 어느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돌인들 어찌 귀하지 않았을 것이며 번듯한 재목조차 구할 수 없어도 내 뜻을 담아낼 기둥 하나면 족했을 두 분. 이 분들은 그 돌, 그 기둥을 집짓기에 탓하기보다 그랭이질을 잘 하는데 온 힘을 기우려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초를 다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시구 하나하나가 산문 하나하나가 금싸라기같이 빛나는 언어들로 다듬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충청도 서산에 있는 개심사라는 절에는 심검당이라는 별채가 있는데, 단청이 없는 소박한 건물로 휘어진 목재와 커다란 바위가 주춧돌로 만난 5칸 남짓한 덧 집이 붙여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휘어진 기둥과 제 바닥의 바위 같은 굽은 대들보가 익살맞게 기둥,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그 절간이 신라 진덕여왕(651)때에 세워진 것이니 천 년이 넘은 고찰임에도 흔들림이 없다. 휜 기둥일망정 그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주춧돌일망정 그므개로 금을 긋는 그랭이질을 잘 한 결과로 보인다. 어수룩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아 기울 것 같은 받침돌 위에 굽은 기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운 도편수의 솜씨는 돌과 나무가 만나는 숨겨진 연결의 절묘한 만남을 엮어낸 기술에 있을 것이다. 저토록 천 년을 넘게 지탱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기초를 벗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심검당을 보고 있으면 그 넉넉함, 그 소박함, 그 치밀함, 그 멋과 해학, 그 유연한 흐름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우리의 문학의 기틀이 되는 시와 산문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학의 터전으로, 고향집으로 역어놓으신 두 분의 기초다지기의 수고가 그러했으리라. 내가 나를 깎아내지 않고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요철이 되어 함께 보듬는 것임을 깨닫는다.
구름에 달 가듯이 떠나간 박목월 시인, 온 밤을 꽉 차게 지켜줄 뿐 아니라 제 자신 한쪽 귀도 떨어지지 않고 한쪽 모서리도 이울지 않는 꽉 찬 얼굴, 그런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동자의 소유자를 좋아하던 김동리 선생, 나는 오늘도 산 앞에 서서 한 마음으로 한국문학이라는 큰 집의 주줏돌과 기둥으로 계신 두 분의 가슴 흔드는 바람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