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쨩이라는 아이가 있다. 매끈한 살갖에 맑은 눈동자를 가졌는데, 볼의 혈색은 다른집 아이들처럼 생기가 없다. 언뜻 보기엔 온통 노르끄레한 느낌이다. 엄마가 너무 귀여워해서 바깥으로 놀러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 집에 드나드는 미용사가 말한 적이 있다. 엄마라는 사람은 트레머리가 유행하는 지금 세상에, 고풍스럽게 (마게)라는 머리를 나흘마다 꼭꼭 틀어올리는 여자로, 자기딸을 '기쨩, 기쨩' 하고 언제나 간난애처럼 '쨩'을 붙여서 부른다.
이 엄마 위에 또 짧은 머리를 한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가 또 '기쨩, 기쨩' 하고 불러댄다.
'기쨩, 샤미센 선생님한테 갈 시간이야, 기쨩, 괜히 밖에 나가서 아무 집 아이하고 놀면 못써.' 그런 소리를 한다.
기쨩은 이런 까닭으로 좀처럼 밖에 나와서 놀 때가 없다. 하긴 이 근처는 그리 좋은 환경이 못된다. 앞에는 막과자집이 있다. 그 이웃에 기와장이가 있다. 좀더 앞으로 가면 게다(나막신) 고치는 집과 땜장이 겸 자물쇠 고치는 장수가 있다. 그런데 기쨩네 집은 은행엘 다닌다.
울안에 소나무를 심어 놨다. 겨울이 되면 정원사가 와서 비좁은 뜰에 마른 솔잎을 잔뜩 깔아놓고 갔다.
기쨩은 별수 없이 학교에서 돌아와선 심심하면 뒤꼍에 나가서 논다. 뒤꼍은 엄마나 할머니가 빨래 말리는 곳이다. 가정부 요시가 빨래하는 곳이기도 하다. 설날이 오면 이마를 질끈 동여맨 남자가 절구를 지고 와서 떡을 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칫거리 배추에 소금을 뿌려 나무통에 절여 넣는 곳이기도 하다.
기쨩은 여기 와서 엄마며 할머니며 요시를 상대삼아 놀곤 한다. 때론 상대가 없는 대로 혼자서 나오는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야트막한 울타리 사이로 뒤꼍의 공동 주택을 들여다보곤 한다.
공동 주택은 대여섯 채나 된다. 울타리 밑은 1미터 남짖한 벼랑이어서 마침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안성마춤이다. 기쨩은 어린 마음에 이렇게 공동 주택을 내려다보는게 재미난 것이다.
조병창에 나가는 다쓰 아저씨가 웃옷을 벗어부치고 술을 마시고 있으면, 술을 마시고 있어, 하고 엄마한테 말한다.
목수인 겐보가 손도끼를 갈고 있으면, 뭔지 갈고 있어, 하고 내려다보는 대로 보고를 한다.
그러면 요시가 큰 소리를 내고 웃는다. 엄마도 할머니도 재미난다는 듯이 웃는다. 기쨩은 이렇게 누가 웃어 주는 게 제일 자랑스럽다.
기쨩이 뒤꼍을 내려다볼라치면, 이따금씩 겐보네 아들 요키치와 얼굴을 마주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세 번에 한 번쯤은 말을 걸게 된다. 그렇지만 기쨩과 요키치는 이야기가 맞을 리가 없다. 언제나 쌈이 되고 만다. 요키치가, 뭐야 업혀 다니는 꼬마 주제에 하고 아래로무터 말하면, 기쨩은 위로부터, 야, 코흘리게, 조무래기, 가난뱅이, 하고 멸시하듯 동그란 턱을 치켜세워 보인다. 한번은 요키치가 약이 올라 아래로부터 바지랑대를 불쑥 내밀자, 기쨩은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 다음엔 기쨩이 털실로 곱게 꿰맨 고무공을 벼랑밑으로 떨어뜨린 것을 요키치가 주워 가지곤 이내 돌려 주지를 않았다. 돌려줘, 던져줘, 으응, 하고 한사코 재촉했으나, 요키치는 공을 손에 쥔 채 위를 쳐다보고 으시대고만 서 있다. 빌어봐, 빌면 돌려 주마고 한다. 기쨩은 누가 빌어, 이 도둑놈아, 하고는 바느질하고 있는 엄마 옆으로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화가 나서 정식으로 요시를 시켜 가보라 했더니, 요키치네 엄마가 참 미안하구만 했을뿐, 공은 끝내 기쨩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후 사흘이 지나서 기쨩은 커다란 빨간 감 한 알을 가지고 다시 뒤꼍으로 나갔다. 그러자 요키치가 여느 때처럼 벼랑 밑으로 다가왔다. 기쨩은 울타리 사이로 빨간 감을 내밀곤, 이걸 줄까, 하고 말했다. 요키치는 아래로부터 감을 노려보면서 탐날 것 없어, 까짖것 안 가질래,하고는 꼼짝 않고 서 있다. 안가져, 안가질 테면 고만 둬, 하고 기쨩은 울타리에서 손을 거두었다.
그랬더니 요키치는 여전히 까짖것, 까짖것, 한 대 맞구 싶어, 하면서 더욱 벼랑 밑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럼 가질래, 하고 기쨩은 다시 감을 내밀었다. 안 가질래 까짖것, 하고 요키치는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이런 말을 너댓 번 되풀이하고 나서 기쨩은, 그럼 줄까, 하면서 손에 들었던 감을 털썩 벼랑 밑으로 떨어뜨렸다. 요키치는 황급히 흙 묻은 감을 주웠다. 그리곤 주워 들기가 부섭게 옆댕이를 와락 깨물었다.
그때 요키치의 콧구멍이 부르릉 떨리는 것 같았다. 두꺼운 입술이 오른쪽으로 비뚤어졌다.
그리곤 물어뜯은 감의 한 조각을 툇 하고 뱉었다. 그리곤 더는 그럴 수 없는 증오를 눈동자에 모아 가지고, 아 떫어 이거, 그러면서 손에 쥐었던 감을 기쨩을 향해 내던졌다. 감은 기쨩의 머리 위를 지나서 뒤꼍 광에 가서 맞았다. 기쨩은 야아, 먹보야, 먹보, 하면서 달려서 집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기쨩네 집에선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도쿄(東京)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 머물며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소세키는 도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다』를 발표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거의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다망한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 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이후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구메 마사오 등의 일본 작가들에게 그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6년 소설 「명암」을 연재하던 중 위궤양 악화로 숨을 거두었다. 소세키의 대표작으로는 『행인』을 비롯, 『나는 고양이로다(吾輩は猫である)』 『도련님(坊っちゃん)』 『산시로(三四郞)』 『그후(それから)』 『문(門)』 『마음(こころ)』 『명암(明暗)』(미완) 등이 있다. 특히 『행인』에서 그는 동양적 윤리성과 서양 문학에서 습득한 고도의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에 깃들인 에고이즘의 추구라는 근대적 테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