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 최민자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은? 치타다. 순간 최고 속력이 시속 120킬로미터 정도로 100미터를 3초에 완주하는 속도다. 톰슨가젤이나 타조는 시속 80킬로미터, 지구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시속 37킬로미터 정도다.

치타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달렸다면 인간은 도망치기 위해 달렸을 것이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을 것이다. 배고파 훔친 겉보리 한 되, 고구마 몇 알을 앗기지 않기 위해, 곤장을 맞고 무리에서 내쫓기는 치욕을 면하기 위해서도 목숨 걸고 달리고 달려야 했을 것이다. 싸울까 튈까 죽은 척 할까를 매순간 결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속도의 뿌리는 애초 그렇게 두려움에 잇닿아 있었을 것이다.

생존의 필수조건이었을 속도가 언제부터 그 자체로 엑스터시가 되었을까. 속도가 예술이고 환락이 된 시대, 과정은 소멸되고 서사는 폐기된다. 편지를 부치고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도 지구 저편에 대한 두근거림도 옛일이 되어 버렸다. 튼튼한 장딴지 대신 바퀴 위에 앉아 세상을 내달리게 된 이후부터 사람들은 키 작은 들꽃의 향기를 맡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는 겸허함을 잃어버렸다. 새만큼도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느림은 게으름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묵직하게 기운을 아껴 쓰며 제자리에서 천천히 늙어 가는 한 그루 고요한 나무이고 싶지만 어물어물하다가는 짓밟히거나 떼밀린다.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본의 아니게 민폐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바퀴로 굴러가는 세상,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중력을 잃고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내 삶의 리듬을 보폭에 맞추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속도는 전율이겠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속도는 폭력이다. 단지 제자리를 지켜 내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세상, 사람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제자리에서 제 페이스로 뛰는 심장이 가장 오래 뛴다는 사실을.

바퀴가 존재하기 전까지 인간들은 현기증을 알지 못했다. 멀미하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운전해 가는 게 최선이다. 운전자는 멀미하지 않는다. 내 다리로 걸으면서 멀미가 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 다리는 지구의 자전 속도에 감응하여 심장의 박동소리를 조율하는 성능 좋은 메트로놈이다. 조금은 굼뜨고 뒤뚱거릴지라도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보폭으로 느긋하고 품위 있게 어슬렁거리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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