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사람에게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LA 여행이 그랬다. 그곳에 있는 재미수필가협회 창립 20주년 문학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받아 가는 길이었다. 내게 찾아온 행운과 같은 기회, 그 배후에는 여러 가지 상황과 만남 등 좋은 기운들이 작용했겠지만 가장 좋은 배후는 문학이다. 우리나라에 훌륭하고 고명한 교수와 작가가 수없이 많을 텐데, 무명작가와 다름없는 나를 초청하다니, 문학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어릴 때 작가를 꿈꾸었고, 늦게 꿈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만난 숱한 인연들, 문학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글쓰기의 토양이 된 내가 자란 고향과 가족들, 지나는 바람과 스쳤던 사람들, 울고 웃었던 삶의 골짜기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해외 초청강연. 삶의 여정 속에서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게 꿈같았다. 내가 만난 문학을, 소박하고 진정성 있게, 멋 부리지 않고 전하리라. 진심은 어디든 통하는 거니까. LA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모든 일정은 순조로웠다. 협회 임원들의 깊은 배려와 성의에, 마음의 고갱이를 읽으며 금세 친밀감이 생겼다. 이틀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산다는 LA시내를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동행한 작가들에게 이민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강인한 삶의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우리의 언어로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멋있었다. 그리고 훌륭했다. 숱한 문화적 충돌 속에서 지혜롭게 견디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들이 아름다웠다. 드디어 문학 강연 날이다. 호텔 세미나 룸으로 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예서제서 몰려들었다. 우리의 언어로 그곳의 삶과 개인의 정서를 그려내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문학에 목마른 듯 간절한 눈망울, 진지하고 행복한 표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 모두 문학이 주는 기쁨에 환호했다. 그날의 감동과 느낌을 어찌 다 말하랴!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제한성 때문에, 어떤 글재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생각 만해도 문학이 고맙고, 지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립다. 강연을 마치고 협회 회장인 김 작가가 내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어떤 공로가 있다고 그걸 준비했을까. 아마도 의례적인 것 같았다. 멀리까지 왔다는 고마운 마음의 표현으로 주는. 동그스름하면서 가장자리에 모양을 낸 크리스털로 만든 패는 모나지 않으면서 예뻤다. 톡 치면 맑은 소리가 날 듯했다. 장식장 안에 넣어놓고 느낌을 즐기리라.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나겠지. 아침에 차를 마시며 바라보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고 그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여럿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한걸음 옮기는 순간이었다. 내 몸이 약간 기우뚱하면서 그만 패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 와르르! 요란하고 맑은 소리와 함께 공로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너무도 민망하여 갑자기 몸에 열이 훅 났다. 더구나 불길한 예감이 온몸에 엄습해왔다. 담담한 척 미소를 지었다.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 순간이었다. “와아! 접시를 깨자! 짝짝짝!” 박수소리와 함께 경쾌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곳의 원로인 유 작가였다.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고 밝은 표정을 담아 소리쳤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 여유! 저, 배려! 어디서 오는 걸까. 삶의 연륜일까, 아무래도 너그러움이겠지. 긍정적인 사유에서 오는 그런 것. “선생님, 좋은 일 많이 생길 거예요! 서양에서는 접시를 깨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요. 그럴 징조예요.” 유 작가는 내 앞으로 다가와 맑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늘 이용하는 곳이니 새로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그냥 해줄 거예요.” 김 작가와 이 작가도 안타까워하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불길한 느낌이 금세 사라졌다. 고정관념을 깨버렸으니, 내게 또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되었다. 말 한마디, 생각의 전환이, 이렇게 위대할 수 있을까. 강연이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이제 며칠 동안의 여행이 나를 기다린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접시보다 더 의미 있고 좋은 크리스털 공로패를 깼으니, 앞으로 더 좋은 날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몇 명의 그곳 작가들과 여행을 떠났다. 캘리포니아까지 1번 도로를 타고 달렸다. 푸르디푸른 태평양을 왼쪽에 끼고 덴마크 마을인 솔뱅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바람을 맞았다. 태평양을 보며 그 깊고 푸른 바다를 건너던 이민자들을 생각했다. 얼마나 노력하고 열심히 살았을까. 이민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이국땅에서 삶을 가꾸었으리라. 솔뱅에서 유명하다는 완두콩 스프가게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샐러드와 함박스테이크 모두 입에 맞았고, 명성처럼 스프도 맛있었다. 서빙을 하는 남자는 자그마한 키에 나이가 지긋해보였다. 덴마크인 같았다. 미소 띤 그에게, 나도 살짝 웃어주었다. 산타바버라 근처 예약한 콘도에 도착했다. 이미 깊은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코니에 있는 야외용 식탁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큰 접시에 수북하게 담긴 LA갈비, 나물과 생선, 식탁은 풍성했다. 식탁 위로 드리워진 라일락 닮은 나무에는 하얀 꽃이 올망졸망 피어 나풀댔다. 햇살은 투명했고 바람은 소슬했다. 한여름인데도 그늘에 있으면 서늘했다. 우리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다. 도로에 차가 드물었고, 경적을 울리는 차도 없었다. 생경하지만 평온한 풍경이었다. 와이너리와 존 스타인벡 기념관을 보기 위해 나섰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티 없이 푸른 하늘, 가도 가도 포도밭만 보이는 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등장인물과 그들의 삶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왔다. 낙원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가던 톰 조드 일가와 목사였던 케이시 등이, 저 길을 걸었고, 저 포도밭에서 일했으며, 짓밟히고 착취당한 나날에 분노했으리라. 끝없는 포도밭이 폭력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잠시 들른 와이너리 앞 화원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 있었다. 햇살 아래 소담한 달리아, 사피니아와 금잔화, 맨드라미, 상사화까지 핀 것을 보고, 이국땅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파란 하늘과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유했다. 내게 이런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달리듯 숨 가쁘게 산 날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그렇게 산 날들이 후회되진 않으나, 이제 숨고르기하며 살리라 마음먹었다. 몬트레이 카운티 살리나스에 있는 기념관에 도착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민중의 어려운 삶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휴머니스트였던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의 문학정신을 기억하고 싶었다. 기념관 안을 탐방하며 영화 ‘분노의 포도’ 배경음악을 흥얼거렸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영화 ‘에덴의 동쪽’과 배우 제임스 딘, 영화 세트, 사진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이 자리한 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우리의 읍 정도 같았다. 그곳을 나서며 아쉬움에 자꾸 고개를 돌려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늘어난 게 두 가지 있었다. 잘 먹어서 불어난 내 허리사이즈와 큰 가방이다. 커다란 가방에는 그곳 작가들이 챙겨준 갖가지 선물이 가득 찼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과 고국의 언어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빚어낸. 문학 때문에 진 빚이니 좋은 작품으로 답하리라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었고, 한 편의 영화를 본 후,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비행기는 어느새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낸 며칠이 꿈속인 양 아득해졌고, 집에 잘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가슴이 충만해졌다. 한여름 끝자락 공항 앞 버스정류장에서 새벽을 맞았다. 아직은 후덥지근한 바람이지만 그것도 정답고 반가웠다. 지금도, LA 시내 가로수 팜추리, 다정하고 넉넉했던 작가들, 태평양 바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포도밭, 와이너리에서 본 파란 하늘이 눈에 선하다. 모두 그립다, 무척. |
최명숙 교수님,
안녕하세요?
Covid19 로 세상이 어려운 때에
교수님을 수필로 만나 뵙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여자들의 여행 수다" 이 책을 통하여
재미수필문학가 협회 창립 20주년 문학 세미나 강사로 초빙 되어 오셔서
경험하셨던 일들을 "문학이 준 여행 선물" 로 진솔하게 풀어 내시어
그때의 행사가 어제 일 같이 회상하며 그리워지게 하셨습니다.
이제껏 들어 볼 수 없었던 거침없고 폭 넓고 깊이 있는 강의는
눈 쌓인 계곡에서 피어 나는 에델바이스처럼 신선하였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만나 뵈올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