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문 / 유혜자

 

 

 

창경궁 앞을 지나노라니 어떤 부인이 허겁지겁 다가와서는 의과대학 후문을 묻는다. 옛날 약학대학이 있던 동숭동 쪽으로 나가는 문을 알려 주었으나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아 “여보세요?” 하고 불러보니 이미 신호를 따라 반대편으로 건너간 후였다.

아무리 흰 옷이 유행이라지만 여인의 새하얀 한복 뒤태가 쓸쓸해 보여서 대학병원 영안실 쪽의 후문을 물었을 것 같은데, 불러세우기엔 너무 늦었다. 서른은 되었을까. 다시 확인하려고 돌아보며 물어줄까 하고 서 있어봐도 허겁지겁 달려가고만 있다.

나는 20대 초반을 여기서 멀리 않은 원서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에만 오면 잠시 20대 시절로 되돌아가곤 한다.

내가 다닌 학교는 아니지만 시계탑이 있는 의과대학엘 자주 갔고, 담쟁이덩굴이 덮인 건물을 지나 동숭동 쪽으로 내려가면 약학대학, 그 문을 나서면 건너편의 문리대 등 지금은 이사해버린 S대학교 자리에 애틋한 그리움이 남았나 보다. 그래서 나는 서슴지 않고 그편 문을 후문이라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비록 전차도 사라지고 주변 건물도 많이 헐렸지만 아직도 가슴속엔 허물지 않은 기대나 꿈이 남았음일까. 마음이 아득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면 느릿느릿 걸어서, 바람소리와 투명한 햇빛과 새벽안개, 그리고 여린 가슴으로 파닥거리던 내 젊은 날의 잎사귀와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싶어진다.

30여 년 전, 서울로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길을 몰라 당황할 때가 많았다. 돈화문 거리에 있던 경전(한국전력 이전의 이름) 북부지점은 큰길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았지만 골목이 많은 원서동, 계동 원남동을 다니면서 많이 헤맸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저쪽으로 가는 지름길이겠지 하고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고, 어쩌면 낯익은 길 같아서 걷다 보면 웬걸, 엉뚱한 언덕이어서 숨이 턱에 닿아 찔레꽃 핀 양옥의 담장만 되돌아보며 돌아선 것도 몇 차례였다.

서울에 온 지 몇 달 후였다. 시내에 나갔다가 금원담을 끼고 돌면서, 여느 땐 못 듣던 개울물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쯤을 걸어도 변함없는 담장만이 계속되어서 돌아서려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것에 이끌렸다. 담 밑으로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고 주변엔 달개비꽃과 망초가 몇 포기 한가롭게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몇 발자국 위에는 붉은 빛깔이 조금은 남아 있는 작은 대문이 있고 대문의 지붕 기와에는 짙푸른 덩굴이 우거져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나는 온종일 헤매다 내 집 앞에 다다른 듯이 대문 앞 층계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디를 가도 걸터앉을 마루 한쪽 보이지 않게 꽁꽁 걸어 잠근 서울의 대문들.

뜻밖에도 골목 끝에서 내가 발견한 대문은 낡고 문고리도 녹슬어서 잡고 밀쳐봐도 꿈쩍 않고 잠겨있는 금원의 후문이었지만, 인심 좋게 후원을 드나들게 하던 시골 부자네 후문처럼 친근하게 보였다.

먼길을 걷다가 아픈 다리도 쉬어 보고 냉수 한 사발을 손쉽게 청해보던 허술한 주막집의 분위기도 이렇지 않았을까 할 만큼 손질이 잘 안 된 분위기가 더욱 좋았다.

어딜 가나 매끄럽고 현란하고 혹은 소란스러워서 긴장시키던 도회의 속박과 부담감을 잊게 하는 그 소탈함.

시골 친척 댁도 대문 사랑채로 가면 어른들 기침소리가 많았지만 작은 후문으로 들어가면, 도리지꽃 핀 안마당 섬돌 위엔 예쁜 고무신이 놓여있고 수를 놓던 새댁이 작은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그리고 뒤란에서 잘 자란 감나무는 상쾌한 나무 그늘을 주고 가을이면 잘 익은 열매로 우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후문에는 은밀한 일이 일어나서 쉬쉬하며 닫혀지는 비밀을 지니기도 일수였던 것이다. 알려지면 안 돼서 남몰래 떠나던 이들의 발소리를 기억한 채 굳게 닫혀지는 후문의 생리를 모르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왔을 때 뜻밖에 마주친 금원의 후문은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혀 줄만했다. 꾸미고 다듬은 듯 매끈한 서울 인심의 얄팍함도 그 투박한 문 앞에 가면 잊을 수 있었고 주변의 가꾸지 않은 잡초의 한가로움이 긴장으로 가쁜 숨결을 다스리게 해줬다.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를 그 길목이 그리워진다. 한동안은 그 정밀하나 소탈한 후문이 있는 길목에서 마음을 정화시키기도 했고, 나아가 버려진 채로 풋풋하게 자라는 풀꽃들의 소탈한 그 모습에서 시적인 영감이 떠오를까 하고 나만 아는 정서적인 오솔길로 삼기도 했었는데.

나는 아직도 후문에 대한 이런 미련 때문인지 웅장하거나 활짝 개방되는 정문보다도 은근한 후문을 찾게 되고 그 정감을 아쉬워한다. 넓고 화려하고 공개적이어서 물러서게 하는 정문의 웅장함을 피하려는 것은 어느새 정면 도전을 꺼리게 될 만큼 나이가 든 무기력 탓인가 하고 한편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30여 년도 더 지나버린 지금, 옛날의 그 후문을 찾아보면 어떤 마음일까. 험난한 세계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듯이 금원의 기나긴 담장을 따라 가보면 다다를 수 있는 작은 후문. 맞서서 대결하기보다 지혜를 마련하려는 여유처럼 돌고 돌아서 다다르는 길목 끝에서, 끝이 아닌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까.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그 후문을 한 번 찾아가 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한편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과연 그 후문의 모습은 예전대로일까, 아니 그보다도 같은 모습을 보는 내 느낌이 그처럼 편안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반대편 길로 건너고 말았다.

저만치서 천천히 다가오는 장의차 행렬. 놀랍게도 좀전에 길을 묻던 여인이 장의차를 어루만지며 따라오고 있었다. 흐느끼며 발길을 목 가누자 뒤편에서 누가 나와 차에서 손을 떼어내고 부축을 해준다. 번듯하게 차에도 못 오르고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여인의 슬픔은 어떤 것일까.

이승을 마감하고 저승으로 떠나는 곳도 후문이구나 하는 아연한 모습으로 서 있노라니 굵은 빗방울이 차갑게 볼에 닿는다.

끝은 언제고 시작이고 스러지는 것은 깨어남의 예고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문득 코끝으로 향내음이 끼쳐오는 대학병원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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