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소득세 / 신재기
마침내 아파트를 팔았다. 꼭 30년 동안이나 소유한 집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두 아이도 낳고 키웠다. 그곳에서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런저런 꿈들을 가꾸기도 했다. 작은 다툼도 있었다. 지난 연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그 집을 삼심 년 만에 결국 팔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처분하려고 했으나 마음속 계산과 조건이 여의치 못해 지금까지 끌고 왔다. 팔고 나니 앓는 이를 빼버린 것과 같아 시원했다. 이 년마다의 전세 계약이나 예고 없이 닥치는 잔잔한 집수리는 불편함을 주었던지라 묵은 숙제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고 후련했다. 정말 잘했다 싶었다. 부동산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내를 쳐다보니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그 연유를 알 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침묵이 오히려 아내의 허전한 속내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 때 나와 아내의 경제적인 처지는 매우 달랐다. 그때 나는 군 제대 후 겨우 일 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사글셋방에서 조카와 자취생활을 하던 무일푼이었다. 형님의 도움으로 겨우 대학공부를 마친 나로서는 집안에서 결혼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반대로 아내는 부모 슬하였고, 직장생활 칠 년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처가는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아내 밑으로 세 처남이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라 경제적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는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때 아내가 저축해둔 돈과 융자금으로 그 아파트를 장만했다. 당시 대부분이 전세방에서 신혼을 출발했는데, 우리 부부는 운이 좋았다. 결혼 후 둘 다 큰 굴곡 없이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이어왔기에 융자금도 갚고, 지금 사는 넓은 아파트도 새로 갖게 되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공부했다. 그 후 결혼 때까지 대학원에 다니면 2년간 하숙한 것을 빼고는 줄곧 자취생활을 했다. 그것도 남의 집 문간방이나 아니면 골방에서였다. 안채와 독립된 문간방의 벽은 대부분이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것이었고, 지붕은 슬레이트가 아니면 콘크리트 슬래브로 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시멘트벽과 지붕이 달구어져 방안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더웠다. 골방에 살면서는 가끔 연탄가스에 취해 주인집 김칫국물을 얻어 마시기도 했다. 생각해보건대 그때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 생활은 열악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했다. 늘 집주인 눈치를 봐야 했고, 주인 식구에게는 주눅 들어 있었다.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나도 집주인이 되어 안방에서 밥 먹고 잠잘 수 있는 날에 대한 갈망을 항상 품고 살았다. 그 염원이 간절했던지 결혼과 동시에 안방에서 잘 수 있었다.
결혼 후 내가 주인인 집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내 집에서 잠을 잤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한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경제감각지수는 제로에 가까웠다. 집은 가족이 모여 편하게 사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다. 모자라게도 그것이 재산이고 돈이라는 것을 몰랐다. 부창부수였던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팔십 년대는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가 일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우리 부부는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집으로 재산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두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나 두 번 다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 이유라는 게 어이없는 것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돈을 셈하는 데는 어둔하기 짝이 없다.
양도소득세 신고 차 세무사인 친구 사무실을 찾았다. 서류를 검토하고 난 친구의 첫말이 "니도 정말 엔간하다."였다. 세상사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해 낡은 아파트를 삼십 년 동안 끌어안고 온 나의 무딘 셈에 대한 질책이었다. 대답할 마땅한 말이 없어 "왜"라고 어정쩡하게 반문만 했다. 내 자신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시세가 좋을 때는 다 놓치고, 재개발도 어려워 바닥을 치고 있는 지금에서야 아파트를 팔고 속 시원해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누구나 다 재테크를 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경제 계획과 감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한테 필수 항목이 아니겠는가. 이제 노후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 돈에 대한 나의 무계획적인 셈법을 생각할 때마다 한심함과 걱정이 밀려들었다. 반성도 잠깐, 그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돈을 제대로 셈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내가 부끄럽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양도소득세와 전세금을 제하고 남은 돈 전부를 아내에게 넘겨주었다. 내 소유였던 집을 팔았으나 내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은 셈이다. 사실 내 돈으로 산 집이 아니니까 남은 것이 없다 해도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내 명의로 양도소득세를 내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시점부터 수중의 것을 조금씩 남에게 양도하고 죽을 때는 손 털고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잠시 빌렸으니 당연히 돌려주어야 하는 것. 그 집에서 젊은 시절 별 탈 없이 잘 살았던 것만으로도 본전 이상이니 나의 영리하지 못한 셈법을 크게 자책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재에 밝지 못해 수중에 큰돈을 모으지는 못했더라도 지금 내 한 몸 편하게 누일 집이 있는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내 존재 자체가 본래 얻은 것이라면, 남은 시간 동안 양도소득세를 흔쾌히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이런 넉넉한 마음이 가장 지혜로운 노후대책일지도 모른다고 내 자신을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