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쓴 수필>
양지의 꿈 / 천경자
아침 나절에 눈이 살풋이 내리더니 날씨가 포근하고 어느덧 하늘은 코발트 그레이로 개며 햇볕이 쬔다. 오랫동안 난로의 온기에 생명을 의지해 오던 고무나무와 포인세티아 화분을 햇볕 드는 곳으로 옮겨 주었다.
포인세티아는 잎이 다 떨어진 채 후리후리한 키에 빨간 꽃만 이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되어 뱅뱅 돌 것만 같다. 뜰의 장미나무는 뿌리 언저리에 덮어 준 노란 왕겨와 그 위에 아직 녹지 않아 힐낏힐낏 햇볕을 받고 흰 빛깔로 반짝거리는 눈을 이불 삼아, 잠자고 있는 듯 섰어도 어딘지 봄 냄새를 풍긴다.
좁은 마당 한가운데 큰 고무 대야를 내다 놓고, 더운 물을 붓고 가루비누를 풀어 빨래를 했다. 늘 방 구석에 화분처럼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생각에 잠겨만 있다가 이렇게 포근한 양지에서 빨래를 주무르니 따뜻한 기운이 오붓하게 마음으로 번져오고 기분이 상쾌하다.
포글포글하게 올라오는 하얀 거품에 손을 담그고 내의를 주무르면 엷은 비누 냄새가 그리움처럼 코에 스며온다. 하얀 런닝셔츠의 목 언저리를 일부러 코에 대 보니 독특한 머릿기름 냄새가, 그가 금방이라도 전화해 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퍽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아이 아버지의 내의들을 빨면서 나는 한없이 무엇인지 그립고 아쉬운 생각에 눈을 감아 버렸다.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가 눈앞에 떠오른다. 마술에 걸린 공주가 날이 밝으면 백조로 변해 숲으로 날아 가버리고 왕자는 슬픔에 잠긴다. 그 중에서도 ‘불새’라는 춤이었던가 마술사에 의해 돌이 되어 버린 왕자를 구하려고 공주가 불새의 빨간 날개 깃털 하나를 얻으려 하는 춤. 불새가 정열의 화신인 양 불덩이가 구르듯 날개를 떨던 모습이 선하다.
어째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걸까. 나는 공주도 아니요, 아이 아버지가 왕자인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나는 짐짓 아이 아버지의 지금의 처지를 마술사에게 끌려 간 왕자의 그것인 양 생각해 본다.
금싸라기가 내린 듯 따스한 햇볕 아래서 나는 부질없이 이런 생각에 잠겼다가 굳어지는 아픈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갠 하늘. 거기서 나는 지난 밤 꾼 꿈을 찾아보았다. 태양이 없는 하늘에 백조좌의 모습으로 하얀 백로가 판박이처럼 박혀 있던 그 꿈의 하늘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차디찬 코발트빛 하늘에 하얀 레이스로 된 새가 날고 있는 광경은 냉혹한 지성파 화가의 그림을 몇 겹 아름답게 다듬어 놓은 듯했고, 날개의 레이스 구멍 속에는 날개를 접은 백로들이 한 마리씩 앉아 있는 게 무수한 작은 별들처럼 보였다.
나의 그림 세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 차디차고 아름다운 광경은 하늘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누군가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불새의 깃털만 가지면 어떤 소원이라고 이룰 수 있다는 꿈 같은 바람으로 먼 하늘에 떠 있는 밝고 너무도 싸늘한 백조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쫑쫑이 대문을 힘차게 열고 “엄마 어디 갔어?” 하는 소리에 나는 깜짝 백일몽에서 깨어 다시 빨래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런대로 머지않아 봄이 올 것만 같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화가, 수필가, 홍익대 교수>
출생~사망; 1924~2015 | 출생지; 전남 고흥 | 학력; 전남여고 /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 경력; 초대전 3회 등 / 개인전 7회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그림.
1952년 발표 당시 '여자가 뱀을 그렸다'며 입소문이 났고, 천경자 화백은 일약 화단의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처연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창백한 얼굴에 머리에 꽃을 단 여인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대표작이다.
1991년 위작 논란에 휘말린 이 작품으로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했다.
논란이 일던 당시 천 화백 본인이 위작이라는 의견을 밝힌 반면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을 주장했던 상황.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위작임을 고수했지만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수군거림에 큰 충격을 받았다.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류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화풍을 개척한 그녀,
강렬한 채색화로 한국 화단에 큰 자취를 남겼고 천 화백 자신을 비롯한 여성을 화폭에 담아냈다.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특이한 삶을 살아온 분의 글이라
강한 힘이 전해집니다.
뱅뱅, 힐낏힐낏, 포글포글,
이런 의태어들이 글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양지의 꿈- 천경자 화가의 수필을 읽는데 따뜻한 햇볕아래서 빨래를 하는 여인의 그림을 보다가 꿈속의 '백조의 호수' 무용을 관람 하다가 다시 딸의 목소리에 깨어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지내요. 저도 종종 집안 일을 하다가 엉뚱한 생각과 상상에 사로잡혀 꿈을 꾸다 깨어나듯이... 화자는 무엇인지 그립고 아쉬운 생각에 눈을 감아 버리고 부질없는 생각에 꿈을 꾸듯 골몰하기도 했던 일을 글로 옮기셨네요. 그림을 잘 그리시는 분은 글로도 묘사를 참 잘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성있는 글 실감나게 잘 읽었어요.감사합니다.
제 나이 20대 초반에 친구와 인사동에 있는 천경자 화랑에 간 적이 있어요.
화려하면서도 지적인 분 같았어요.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아주 도도한 신여성으로 보였고요.
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의 그림을 보면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나지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러 권의 그림 에세이를 발표했고요. 담담하게 그림을 그리듯이 글로 풀어서 묘사하는 기술이 뛰어나네요.
그 부분에서는 정말 부럽고 닮고 싶어요.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작가는 어떤 심정이었을 까요?
자신을 아름답게 표현 하는데 중점을 두었는지
자신의 이미지를 하나 선택해 이미지화 혹은
차별화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르시즘에 빠져서 일까요?
역시 화가인지라 색의 묘사가 생생하고, 움직이는 마음을 따라가는 표현도 같이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밤에 꾼 꿈과 현실의 꿈, 그리고 상상...
저는 상상력이 부족한지 어쩐지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림은 마음으로, 느낌으로 보니까 천작가의 작품이 좋습니다만, 이글에서는 안타깝게도 저는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필을 읽으며 머리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려고 했는데 상상력이 부족한가봐요. 빨래빠는 모습에서 그리움도 찾아 보려고 했고, 백조의 호수 발레단의 모습도 상상해보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모습들을 다 집어 넣었더니 천경자 선생님이 원하시는 주제를 제 그림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ㅎㅎ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되면 가끔식 엄마가 이불 빨래하라고, 대야에 하이타이 풀어 두 다리로 신나게 밟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네요. 청춘 그리운 청춘이였네요.
강렬한 원색과 과감한 선으로 자신의 그림을 화폭에 담았던 인상적인 화가로 천경자를 기억합니다. ‘천경자도 빨래했나?’ 캔버스 대신 고무 대야를 놓고 물감을 푸는 대신 가루비누를 풀고 봄이 가까운 따뜻한 양지에서 남편의 내의를 주무르는 화백의 모습을 상상하며 호기심이 돌았습니다. 그녀의 그림과는 다르게 글은 수채화같이 여리고 섬세합니다. 무덥고 답답한 이 여름 우리에게 머지않아 마음에 봄도 올 것만 같습니다.
화가가 쓴 수필은 느낌이 다르네요.
바탕 그림에 색을 입혀가는 듯한 표현이 아주 좋게 느껴집니다.
대단한 여류화가의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 엿보여 더욱 정겹구요.
내 기억으로는 천경자씨가 3권의 수필집을 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연달아서.
80년대 중반쯤이었는데 그 수필집에 푹빠져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쓴글이라는 호기심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낙네의 한을 거침없이 내뱉는 푸념에 끌렸었지요.
글이 문학적이다. 아니다. 그런것도 개의치않았습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홍익대 교수 시절, 선생님은 어디에서 예술(그림)의 영감을 얻으십니까? 학생들로 부터 간혹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내딸의 호수같은 아름다운 눈에서 영감을 받아요. 라고 대답했답니다. 많은 작품의 계기가 된 그 아름다운 눈의 소유자인 딸과 나는 6년을 같은 교정에서 보냈지요. 나와 그딸이 같은 반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정말 그아이의 눈이 그렇게 아름다우냐?
감정의 느낌은 주관적이지 절대로 객관적이 될수 없었기에, 천경자씨가 그렇게 느끼면 그런거지.
각각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을 보살피며 학교생활도 착실한 모범생이었는데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와서
지금도 뉴욕 근처에서 살고 있지요.
절편이 되어 구할수 없는 수필을 이곳에서 만나 좋았습니다.
소설가 박경리는 오랜 지기인 천경자를 '고약한 예술가'로 부른 시
'천경자를 노래함'을 통해 천 화백의 성품과 기질을 소개했다.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고/
매일 만나다시피했던 명동시절이나/ 이십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가까와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 바람을 더욱 배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