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유월은 행복했네 / 도월화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밖에서 꼬마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들린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파트 담장엔 붉고 붉은 유월의 줄 장미, 그 장미 빛처럼 빨간 티셔츠에 태극기를 두르고 거리 응원을 나가는 초등학생들이 보였다. 얼굴에 태극 모양으로 연지곤지 찍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그새를 못 참고 나에게 묻는다.
"공 들어갔어요?"
"아니, 아직 안 들어갔어."
나도 지금 막 시작된 한국과 스페인 8강전 텔레비젼 중계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녹색 잔디 구장에는 젊은 건각들이 종횡 무진 숨 가쁘게 공을 좇아 달린다. 이따금 클로즈업되는 선수들의 눈빛이 어쩜 그리 형형할까. 대표 선수 선발할 때는 외모도 보는 것인가. 하나 같이 잘 생기고 멋지다. 광주 월드컵 경기장이 붉은 옷의 우리 응원단으로 가득한 광경이 화면상으로는 빨간 사과 상자를 진열해놓은 청과 시장 같다.
경기장 외에도 오늘 전국적으로 500만 명이 거리 응원을 나섰다. 광화문 부근에만도 몇 십만이 12시간 전부터 밤잠을 잊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지난 미국 전 때는 대학교 다니는 큰 아이도 그 곳에 다녀왔단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없이 붉은 물결을 이루었고, 교통 정리하던 경찰 아저씨들까지 오 필승코리아를 부르더란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한민국' 소리치면, 거의 자동적으로 '짝짝짝짝짝' 손뼉을 친다. 그 분위기에 매료된 외국인 관광객이 대~한민국을 함께 외친다.
텔레비젼 중계는 계속되고 있다. 극적인 순간을 맞으면, 아파트 옆 동 응원 소리가 다 들리고 온 동네가 들썩거린다. 어렸을 때 고향에서 군에 입대하는 청년이 생기면, 농악놀이를 하며 동네잔치를 베풀어주던 생각이 난다. 오늘은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안방 텔레비젼 앞에서 온 국민이 한 동네 사람이 되어 같이 울고 웃는다. 화면에 빨간 스카프를 앙증스럽게 두르고, 얼굴에 태극기를 그린 아기 붉은 악마가 나온다. 예쁜 아가, 그대는 귀여운 악마. 아기 옆에는 엄마 붉은 악마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전 국민이 붉은 악마다. 군대 얘기, 축구 얘기 제일 싫어한다던 여자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나도 4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만 해도 축구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 전 해 인가, 우리 가족은 시댁 대소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 행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그날따라 훤칠한 젊은이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내 옆 좌석의 잘 생긴 청년에게 주위의 아이들이 줄줄이 와서 사인을 받아갔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옆자리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룹사운드 가수들이세요?"
"아뇨. 축구 선수예요."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말 한 마디 잘 못해서, 그 날 난 우리 아이들에게 무진장 핀잔을 들었다. 어머니, 국가 대표 축구선수에게 가수냐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정말 창피해서 혼났다 구요 라고.
우리 아이들 말에 의하면, 그 비행기에는 지방 전지훈련을 떠나는 국가 대표 축구팀이 다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텔레비젼 해설자는 그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고, 이번에 주장으로 뛰는 선수도 있었단다. 48년만의 첫 승을 거둔 폴란드와의 경기 때 이마에 피를 많이 흘려서 붕대 투혼을 불사른 선수, 그 밖에도 이 번 대표팀에도 속해있는 많은 선수가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축구에 대해 무지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별 관심 없이 스쳐 보냈으니 눈 뜬 장님이 따로 없다. 아는 만큼 느끼고, 인생의 묘미도 느끼는 자의 몫이 아니던가. 음악과 시가 삶을 아름답게 한다면, 스포츠가 있는 인생도 아름답다는 것을 여태 모르고 지냈다.
오늘 8강전 경기에서, 후반전이 끝나도록 어느 편에서도 득점을 내지 못한다. 연장전에도 득점이 없자,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손에 땀을 쥐는 숨 막히는 순간이다. 우리의 멋진 태극 전사들은 침착하게 5명 전원이 시원하게 골문을 열었다. 스페인이 한 점 실점해서 우리는 마침내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월드컵 첫 승을 갈망하던 우리가 16강, 8강 벽을 뚫고 준결승에까지 진출하게 될 줄이야! 태극 전사들이여, 잘 싸웠다. 자랑스럽고 장하다!
4강 기적의 감격으로 붉은 악마와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고, 선수들과 관전 중이던 대통령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중계하던 아나운서와 해설자도 울먹인다.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이 특유의 골 세리머니, 어퍼컷을 날린다. 정말 멋진 모습이다. 이 분의 인기는 강제 귀화시켜서 축구 정당을 만들게 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하멜 이후 최고의 네덜란드인'이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대한민국 국민 일동이라고 찍힌 주민등록증이 인터넷에 떠다닌다. 꿈의 16강을 기원하던 우리나라가 4강에까지 진출했으니 선수들과 감독의 피와 땀이 이뤄낸 쾌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열두 번째 선수라 일컬어지는 붉은 악마와 4700만 국민의 응원도 한 몫 했다. 외신에 의하면 세계는 한국 축구의 기량 향상에 놀라는 것에 못지않게 선수들의 정신력에 놀란다. 그것은 전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힘과 기를 모아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4700만 국민이 주연이 된 대단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내 생애 이런 국민적 화합을 본 적이 없다. 온 국민이 하나 같이 생애 최고의 축제라고 한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화합과 감동을 축구가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고 있던 붉은 색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박완서 님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에는 피난통에 피를 나눈 다섯 살짜리 어린 동생을 버린 일곱 살 소녀의 뼈저린 이야기가 나온다. 픽션 속에서만이 아니라 6.25를 겪은 이라면 누구라도, 빨간 꽃만 봐도 빨갱이와 붉은 피를 떠올리고 전율할 만큼 비참한 것이 전쟁이라지 않던가. 이제는 빨강은 화합과 감동의 빛깔, 줄 장미가 불타오르는 화사한 유월에 혼연일체가 되었던 추억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함께 해내었다. 자발적으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참여했음으로 행복했다. 아, 그해 유월은 행복했네.
450g 남짓한 공 하나가 어떻게 이런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민족의 소망을 축구 공 하나에 실어 모두의 혼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우리의 무형의 염원이 2002 한 일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현실로 나타났을 때 해서 안 될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온 나라에 생성의 기운이 뒤덮였다. 이 좋은 기운이 축구 이외의 다른 분야에도 확산하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현장에서 4강 신화가 계속되는 기적을 체험했으면 좋겠다. 이웃과 손님을 섬기고 대접하기 좋아하고, 역사상 남의 나라를 넘보거나 먼저 침략한 적이 거의 없는 순박한 우리 민족은 그 진정한 평화의 메시지를 가지고 이제 가자, 준결승으로. 이제는 가자, 우승으로! 그리고 가자,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