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 신재기
산촌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저절로 배울 수밖에 없었던 소년 시절, 세상에 조금씩 눈떠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힘의 한계와 가능성을 짐작케 해준 것은 유무형의 무게와 마주치면서였다. 나에게 지워진 무게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세상 속으로 천천히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져야 할 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은 성숙의 한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그늘이나 슬픔과 마주치면서 그것의 부피를 키워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조급증을 보일 때도 많았다. 톱으로 나무를 잘라 도끼로 장작을 패는 일, 타작마당에서 도리깨를 허공에 한 바퀴 휘돌리면서 땅바닥에 널린 곡식 위로 힘차게 내리치는 일, 나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나운 황소를 익숙하게 몰고 다니는 일, 리듬을 잃지 않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삽질이나 괭이질을 하는 일, 일일이 풀을 잡지 않고도 능란한 낫질로 단번에 한 아름의 풀을 벨 수 있는 기술, 바싹 마르지 않은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활활 탈 수 있도록 불을 지피는 요령, 캄캄한 밤에 멀리 떨어진 이웃집에 부모님의 심부름을 가는 것, 그리고 전등불 없이도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오는 일. 힘과 용기와 기술이 필요했던 일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 무게를 내 스스로 짐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게가 나를 압도하면 할수록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오기가 더 생겼다. 두려움 속에서도 내 힘과 의지로 그러한 무게들을 감당했을 때 적잖은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나의 홀로서기의 상징물은 ‘지게’였다. 농촌에서 운반 도구로써 지게는 없어 안 될 필수품이다. 어느 농가든 농사꾼의 수만큼 지게가 있기 마련이다. 여분으로 더 있는 집도 많았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담벼락이나 처마 끝에 지게가 가지런히 기대어 있다. 어떤 농부든 지게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자신의 몸처럼 소중히 여긴다. 엎어져 있거나 옆으로 넘어져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빈 지게의 경우 언제나 지게의 세고자리와 윗세장에 엇갈리게 지게꼬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깔끔하게 사리어 걸려 있고, 지게작대기는 지게 앞 등태 위에 똑바로 놓여 있다. 그리고 농부는 산과 들을 다니면서 지게를 걸 때 몸체로 쓸 수 있는 재목을 눈여겨 찾는다. 적당한 재목을 발견하면 잘라서 손질하여 집 뒤안이나 그늘진 응달에 말려 필요하면 언제나 지게를 걸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농부는 일터로 나갈 때 항상 지게를 지고 간다. 꼭히 지고 올 물건이 없다 해도 맨몸으로 들에 가는 일이 없다. 지게는 바로 농사꾼의 몸의 한 부분이었다. 지게를 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농사의 출발은 지게를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게에 짐을 얹어 자유자재로 지고 다닐 수 있어야 진정한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농사꾼으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첫 관문이 자신의 지게를 소유하는 일이다. 맞춤옷처럼 자기 몸에 딱 맞는 지게를 가지는 것은 농촌 아이들의 꿈이었고, 그런 꿈을 꾸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초등학교 때 주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들에 가서 쇠꼴을 베어 오는 것이었다. 키가 작아 지게를 질 수 없을 때에는 쇠풀을 망태기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집으로 왔다. 그럴 때마다 내 몸에 딱 맞는 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모님은 내가 지게 지는 것을 탐탐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내 지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봤으나, 아버지는 단호하면서도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내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뜻을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래의 친구들이 자신의 지게를 지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래서 그대로 지게 되면 목발이 땅에 닿아 끌릴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지게 밀삐 아랫도리를 목발 끝에 바짝 당겨 매어 밀삐를 짧게 하면 억지로 질 수 있었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지게를 지게 되면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신 길가 둔덕에 받히거나 넘어지기가 일쑤였고, 그러면 지게 위에 실린 짐이 땅에 떨어지거나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게 된다. 이는 여간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게와 내 몸을 조절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고자 애썼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지게가 생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새 지게를 걸고, 당신께서 쓰던 지게를 내 몸에 맞게 개조하여 주었다. 여름철에는 쇠꼴을 베었고, 겨울철에는 산에 가서 푸나무를 했다. 쇠꼴과 푸나무를 지게에 짊어지고 걸으면서 고통과 함께 나도 이 세상에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지게는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세장에 의해 연결되는 양 몸체는 세고자리에 와서 끝남으로써 꼭짓점 없는 삼각형의 틀로 짜여 있다. 몸체에 연결되어 짐을 떠받치는 가지는 지게의 목발 부분과는 둔각 삼각형을, 허리세장 위와는 예각 삼각형의 구도를 이룬다. 밀삐세장에서 밑세장 사이에 달려있는 등태도 윗부분이 잘려나간 삼각형이다. 지게를 세우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설 때 가로 쥐고 땅에 힘을 주는 데 소용되는 지게작대기도 삼각형의 역학에 근거한다. 지게작대기의 땅에 닿는 한쪽 끝은 뾰족하게 깎여 어떤 장소든 잘 고정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고, 윗세장에 걸어서 지게 전체를 안정되게 세워주는 다른 한 끝은 가위다리처럼 아귀진 나무로서 그 모양도 삼각형이다. 그리고 지게에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모양도 삼각형의 형상이다. 이러한 지게의 구조는 역학상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가장 적합하게 고안된 도구인 것 같다. 세 개의 변과 각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은 매우 유동적이고 변화의 가능성이 큰 도형이다. 불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삼각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균형이다.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삼각형에서는 심리적 완결성을 느낄 수 있다. 예리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이지적 두뇌, 힘으로 현실적 힘을 발휘하는 육체, 전체를 통일시키는 균형 감각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삼각형이다. 지게는 이러한 삼각형을 기본 구도 위에서 안정된 균형을 지향한다. 균형을 위해서는 언제나 적절한 절제가 필요하다.
산촌의 겨울, 아침 햇살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마을 전체를 비출 때면 마을의 대다수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간다. 열다섯 살의 소년에서부터 육십이 넘은 노인네들까지 모두 같은 시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줄을 지어 산으로 오른다. 벌목이 금지된 때라 주로 푸나무를 한다. 바싹 말라 불에 잘 타기도 하지만 그 재가 농사에 필요한 거름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겨울철 산촌 사람들은 별일 없으면 오전, 오후 하루 두 짐씩 푸나무를 하여 나무 낟가리에 쌓아두고 이듬해 봄까지 뗄 수 있도록 준비한다. 지게 탕개줄에 금방 날을 세운 낫을 꽂고 지게작대기와 갈퀴를 밀삐에 끼워 어깨너머로 가지런히 넘기고 짧은 겨울 해를 생각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늘 해오던 일이기에 급하게 서둘지는 않는다. 적절한 장소를 잡아 풀을 베고 그것을 갈퀴로 긁어모아 경사진 산비탈에 지게를 눕혀 놓고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나뭇짐을 꾸린다. 나뭇짐의 가로 양 끝은 칡으로 동줄을 매어짐이 흐르지 않도록 하고, 꼭대기 한복판에는 한 아름의 나무를 덧방으로 얹어 모양을 내고 지게꼬리를 최대한 팽팽하게 당겨 윗세장에 묵는다. 한 손에는 세고자리를, 다른 손에는 지게꼬리 잡고 지게를 세워 지게작대기로 고인 다음 나뭇짐 매무새를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면 새로 짐을 꾸려야 한다. 그리고 균형과 함께 외관상 모양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이는 단순한 나뭇짐의 수준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창작품의 단계까지 도달해 있음이다.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일어서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우선 지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왼쪽 무릎을 꿇고 지게작대기를 가로 짚은 채 힘을 주고 일어서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힘을 잘 배분해야 한다. 일어서 첫걸음을 떼는 순간 산을 내려가 집까지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또래 친구들의 나뭇짐보다 더 커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몇 번이고 넘어져 나뭇짐을 고쳐 꾸려야 하는 고생이 뒤따른다. 땅이 미끄러워, 가파른 경사 때문에, 좁은 길가의 나뭇가지에 걸려, 지게목발이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혀 뒤로 넘어지고 앞으로 엎어지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오후에 또 산으로 간다. 나는 운 좋게도 중학교부터는 대구에서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방학 때는 언제나 고향에 가서 농사일을 했고, 겨울에는 매년 나무를 하러 산을 오르내렸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게를 지는 것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짐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지게를 벗어던지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놓여 날 때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삶의 여정에서 져야 할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은 한시도 없는 것 같다. 가면 갈수록 더 무거운 짐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 그 마지막 짐은 죽음일 것이다. 지게로부터는 벗어났으나 삶의 무게는 그대로다.
니실재 잿마루에 차를 세웠다. 내 고향 신평면과 안평면의 경계지점이다. 경사를 낮추기 위해 고개를 많아 깎아내려 마치 터널처럼 뚫려 있다. 어머니 삼우제를 지내고 곧바로 되돌아서서 대구로 가는 길이다. 고향을 떠난 지 사십 년이 다되어 간다. 수 없이 이 니실재를 넘나들었지만, 그날처럼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낀 적은 없었다. 고향 쪽을 바라다보았다. 저 멀리 선영이 지척에 있는 듯이 곧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옆에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당일까지 여든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들판에서 일을 했다. 십여 년간 일 년 중 반 정도는 대구 우리 집에서 지내셨다. 하지만 농번기에는 맏아들이 고생한다고 꼭 시골 형님한테 가서 힘든 일을 마다지 않았다. 일흔이 지나면서 옆으로 굽은 어머니의 허리가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사실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가는 농촌 생활이지만 여자가 지게를 지는 것은 일종의 금기에 속했다. 자식이 없거나 혼자가 아닌 다음에는 여자가 지게를 지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 고향에 가니, 저쪽에서 지게에 쇠풀을 한 짐 지고 허리를 구부린 채 어머니가 오고 있었다. 순간 강한 자책감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달려가 지게를 놓게 하고 화를 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어머니를 나무랐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었다. 내색은 않았지만 어머니의 짐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제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대구까지 오면서 내내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삼켰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형님이 올봄에 옛집을 허물고 그곳에 새 집을 지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아래채 외양간이 있던 자리에는 철골로 만들어진 농기구 창고가 들어섰다. 화물 트럭과 경운기를 비롯하여 신식 농기계들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모두 편리한 현대식 기기들이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고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붉은 시멘트 벽돌에 머리를 부딪친 듯 멍하게 전해왔다. 어머니의 흔적이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집 뒤안으로 갔다. 호미와 괭이를 비롯한 옛 농기구들이 녹슨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때 등태도 없고 한쪽 밀삐조차 끊어진 지게의 초라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굽고 휘어진 허리가 겹쳐졌다. 갑자기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나는 그 지게를 집어 들었다. 먼지와 거미줄을 제거하고 끊어진 밀삐를 대충 이었다. 지게를 져보았다. 등태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내 나뭇짐의 모습이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어 갈 무렵 아버지는 지병을 얻게 되어 힘든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 많은 부분이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방학 때 어머니는 나더러 여기 걱정은 말고 그만 대구로 가서 공부나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제법 어른스러운 나뭇짐을 지고 오는 아들의 모습에서 작은 위안을 얻었으리라. 어머니가 내 지게 위에 오르는 듯하더니 훨훨 춤을 추면서 허공으로 사라진다. 한 여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쬔다. 갑자기 무거운 짐이 나를 누른다. 등 뒤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도덕적인 관점을 앞세워 인생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그 시작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아주 상투적인 화두에서 출발한다. 이럴 경우 종종 삶의 진정한 의미나 가치가 어떤 모습으로든 뚜렷하게 정제되어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따지고 보면, 그 의미와 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한 순간 바람과 같이 관념으로 스쳐갈 뿐인데도, 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삶은 어떤 의미 덩어리기 이전에 생활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생활은 늘 나를 제한하는 제약으로 가득하고, 충족되지 않는 욕망 앞에서 좌절의 아픔으로 점철된다. 상처받고 절망하며, 그만큼 미움을 키우고 허무 속으로 빠져든다. 대체로 관성에 떠밀려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주어진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적잖은 인내가 요구된다.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고행의 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기를 원하다. 하지만 현실과 연결된 삶의 끈은 질기게도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다. 사람에 따라 짊어진 짐의 무게가 차이가 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도 그 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 가서야 짐을 벗어던질 수 있으려나? 남과 더불어 살면서 나를 세워야 하는 삶의 현실은 자유의 공간이기보다는 구속의 멍에에 가까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짐을 지고 길을 걸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짐은 늘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 피하기 어려운 그 길, 그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