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 / 정재순

 

 

 

 

 

어디로 들어왔을까. 뽀얀 싱크대 귀퉁이에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살금살금 살펴보니 완두콩만한 벌레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다.

비취에 안개 낀 몸빛을 하고 어깨에는 한 줄 주홍 띠가 계급장처럼 그어져 있다. 생김새는 짤막한 바퀴벌레와 흡사하고, 허우적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 끄트머리에 도시적인 갈색 매니큐어가 매끈하다.

지난밤에도 모기와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모기가 방안에서 기웃대는 것은 싱싱하고 달콤한 인간의 피를 훔쳐 먹고 싶어서이다. 어둠 속에서 숨죽여 지켜보다가 잠들었다고 판단이 된 후에야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귓가의 애앵~ 소리에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불을 켰다. 한 발 늦었다. 면밀히 살피고 눈을 닦고 다시 보아도 흔적조차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방 구석구석에 모기약을 방사했다. 그제야 몸을 드러내는 모기의 행세라니, 가관이 따로 없다.

모기는 혀를 내두를 만치 똘똘이였다.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보호색이 될 만한 곳에 은밀히 숨어 있다가 표적물이 허점을 보일 때 즉각 공격해 왔다. 놈은 엄연히 주인이 따로 있는 피를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도적질해 갔다. 얍삽하고 잽싼 모기 앞에서 번번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다. 나 자신도 몰랐던 잔인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사디즘의 구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고물거리는 녀석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희한한 발상이 희번덕이며 충동질을 해댄다. 지난 밤 모기에게 당한 앙갚음을 하려는 걸까. 전생에 호되게 당한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걸까?

겉모습이 꽤 예쁘장한 이 미물에게 질투라도 느끼는 듯 야릇한 흥분으로 가슴이 콩닥거린다. 지킬박사의 두 얼굴, 내밀한 욕망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발만한 투명한 그릇에다 물을 받아 나무젓가락으로 녀석을 유인해 떨어뜨린다.

어라, 요것 봐라. 물에 빠진 녀석이 물 만난 물고기 행세다. 나무젓가락으로 몸을 뒤집는 심술을 부렸으나 여봐란 듯 배영 솜씨를 뽐낸다. 기가 찬다.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냥 한판 붙어보자는 시늉이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집착은 선을 넘는다.

한 시간 넘도록 수영하던 녀석이 드디어 지루하다는 몸짓이다. 반복되는 움직임에 기운이 빠질만한데 휘날리던 갈색 더듬이로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호기심은 거의 몰입단계에 이른다. 약삭빠른 녀석은 가장자리로 가서 그릇에 빌붙어 제 몸을 뒤집어 볼 심산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생각대로 되지 않자 한 바퀴 빙 돈다. 그런 후, 드러누워서 태평스레 노닌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다. 이러다 녀석과의 기 싸움에서 지는 건 아닐까. 바짝 긴장의 날을 세운다.

이번엔 다리를 가장자리로 가게 방향을 틀어서 다시 조금 전과 똑 같은 도전을 한다. 역시 쉽지가 않다. 대체 녀석은 지능이 얼마이기에 끝없는 도전에 이리저리 재보기까지 하는가. 연약한 생명에게 이러기도 처음이지만 이토록 시건방진 녀석도 처음 본다. 물속에 떠 있는 배처럼 몇 시간이 지나도 갖은 폼을 재는 녀석이 얄밉다.

저 조그만 눈으로 혹시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현듯 섬뜩하다. 차라리 죽은 체 하면 물과 함께 그릇 밖으로 보내 줄 텐데. 그럼 못이기는 척 살금살금 도망치면 될 것을. 한 시간은 지났을 것이다. 허우적이는 낌새가 느껴져 녀석의 몸을 처음의 자세로 다시 뒤집어준다. 생기를 되찾는 걸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먼 미래에는 도태되지 않은 곤충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이다.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한 나의 시간들은 어떤 인연으로든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리라. 어쩌면 벌써 그들의 족보에 새빨간 색으로 내 몽타주를 올려놓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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