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년 김점선  

 

 

 

마흔을 훌쩍 넘겼던 어느 해의 어느 날부모님이 우리 집에 왔다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나는 관심도 없었다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우수한 놈도 없고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나는 그때 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재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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