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산 어머니의 바다
윤형두
나는 바다와 같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서 산과 같은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며 자랐다. 해조음을 자장가로 들으며 바다를 요람으로 삼고 어린 시절을 살았고, 소년 시절엔 뱃고동 소리를 행진의 소리로 여기며 꿈을 키웠다.
나의 어머니도 갯물이 휘날려 지붕을 덮는 바닷가 초가집에서 태어나셨다. 어머니는 평생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바다와 같은 삶을 사셨다.
바다의 잔잔한 파도는 어머니 치마폭의 흔들림이며,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어머니의 옷고름은 고기를 가득 실은 만선의 깃발이었다.
성난 파도는 흰빛을 띄었다가는 파란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모래톱 위에 흰 비단자락처럼 펼쳐졌던 파도도 푸른 바다 밑으로 스르르 쓸려 간다.
바다의 파도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거세게 꾸짖었다가도 이내 노여움이 사라져 바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정의 마음이다. 거센 썰물의 물흐름 소리와 율돌목에 울려 퍼지는 해조음은 어머니의 노한 꾸짖음이며, 밀물의 은은한 바다 소리는 어머니의 자상한 타이름이다.
나는 가끔 심한 병앓이를 할 때면, 임종하실 때 손을 꼭 쥐고 이를 악물며 아픔의 고통을 입안으로 삭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어머니의 삶 또한 그랬다. 성난 파도가 밀려와 튼튼한 방파제를 때려치는 그 격랑의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그 숱한 세상사와 싸워 나온 모습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분명 바다였다. 순한 바다도 성이 나면 열 길의 물기둥을 세우고 암석에 부딪혀 포효를 하며 모래톱을 사정없이 훑어 내린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오셨다. 서른이 갓 넘어 아버님과 사별한 후, 홀로 아들 하나에게 기대를 걸며 살아오셨다. 모진 가난의 세월과 여수·순천사건, 6·25전쟁을 겪으시고도 모자라, 필화사건 등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아들의 옥바라지 등 숱한 각고를 겪으며 60평생을 사시다가 아들에게 집 한 채와 얼마간의 여유돈을 마련해 주시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신 분이셨다. 목욕을 시켜 주실 때도 손, 발, 목 등 눈에 잘 뜨이는 곳을 아프도록 닦아 주셨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서 지고 들어오면 혼벼락이 났다. 공부도 잘하라고 강요하셨고 인사성 밝은 것을 으뜸으로 여기셨으며, 내가 우리 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의 가장 큰 면이었던 고향 돌산의 면장이라도 되어서 금의환향하는 것을 그렇게도 바라셨다. 그런 어머니의 소원을 하나도 이루어 드리지 못했다. 나는 요사이도 고흥군 장흥면에 있는 신세계공원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어머니의 무덤을 가끔 찾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셨던 분이다. 말씀이 없으셨다. 산처럼 침묵 하시면서도 무언의 행동으로 교육을 시키셨던 분이다. 목욕을 같이 가서도 몸을 닦는 데는 별말씀을 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 두셨다가 나올 때쯤이면 불러서는 꼭 귓속과 배꼽 등 사람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부분을 깨끗이 씻고 닦아 주셨다.
내 어릴 때의 성적표를 받아 보시고도, 공부는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낫지만 공부가 사람이 되는 데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착한 일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며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어려운 일도 참고 꾸준히 일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회초리 한번 들어보신 적이 없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말 듣게 한다고 내가 성년이 된 후에도 종아리에 매질을 하셨던 어머니와는 너무도 다르셨다. 어느 날인가, 음식을 먹을 때엔 소리를 내지 말라고 몇 번인가 타이르셨는데 짜금거리며 밥을 먹자 숟가락 놓고 밖으로 나가라는 꾸중을 하신 일이 기억날 정도다.
아버지는 산마을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산을 찾는 방랑의 생활을 하셨다. 프리드리히의 <산에 서 있는 사람>이란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항시 고독해 보이셨다.
산 중턱을 휘감아 흐르는 자욱한 안개바다 위에 홀로 서 있는 나그네처럼, 광활한 우주의 한 공간에 서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팡이를 짚고 섰는 한 중년의 뒷모습처럼 나의 아버지는 항상 우수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사색하는 모습이셨다. 그런 아버지는 내 나이 열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당신이 어릴 때 노셨던 고향 산에 묻히셨다.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50을 넘으면서부터 바다와 같은 격랑의 감정은 차차 사라지고 산과 같은 부동과 침묵의 세계가 나에게 다가왔다.
바다는 생동감 넘치는 파도의 세계라면, 산은 움직이지 않아 죽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살아 있는 침묵이다.
나는 이제껏 어머니의 바다와 같은 삶에 영향을 받고 따르며 살아왔다. 모진 격랑을 헤치고 썰물과 밀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억센 몸부림으로 참고 살아왔다. 거센 파도에 온몸을 송두리째 맡기기도 하고 또한 부딪쳐 침몰하기도 하면서, 어지간히 내가 바라던 피안에 닿았다.
이제 산의 지혜를 배울 때가 된 것 같다. 침묵하면서도 삼라만상을 포옹하는 장엄한 그 뜻을 알아야겠다.
산과 같은 아버지, 바다와 같은 어머니.
나는 이제 산과 같은 아버지가 될 나이가 된 것 같다. ♥ essa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