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조경희
치자 열매는 많이 보았으나 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무에 열려 있는 치자도 보지 못하였다.
가끔 빳빳하게 말라버린 치자열매가 마치 꽈리를 묶듯이 꼬여 묶여진 것이 건물점에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치자의 노란 물을 내어 쓰기 위하여 양푼 같은 그릇에 물을 떠놓고 담그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노르스름한 물이 치자에서 꽃처럼 피어나듯 우러나는 모양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일도 있다.
그러나 치자라는 열매가 그렇게 인상적이 아닌 것은 열매를 늘 마른 것만 보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열매가 지닌 운치가 너무 희박하다는 느낌이었다.
이렇듯 치자 열매에 대한 인상이 대단치 않았기에 치자꽃은 경이 그것이었다. 백합과 찔레꽃이 그 향기를 자랑한다면 치자도 백합이나 찔레꽃에 지지 않는 강렬한 향기를 담고 있었다.
꽃은 흰 꽃이어야 그 내음이 좋은가. 색채에 소박함을 띤 만큼 안에서 내풍기는 내음의 미는 한결같이 높은 듯하다. 치자꽃을 처음 보기는 나의 친구 K여사 방에서였다.
K여사의 방에는 항상 꽃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흔히 보아 왔고 또 볼 수 있는 낯익은 꽃들이었기에 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싱싱하게 피어 있어도 나는 꽃을 화제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K여사는 나를 극진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연소할 때는 남을 극진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내 성질이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먹어진 탓인지 동무들 사이라도 나를 극진히 아껴 주는데 마음이 많이 끌리게 된다.
이러한 느낌이 자주 K여사를 찾게 하였는지 모른다.
K여사가 나를 대접하는 모습은 때에 따라 달랐다.
어떤 때는 내가 다소 한 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군산 술과 안주를 시켜왔다. 어떤 때는 자기의 옛 이야기를 조용히 말하는 것으로 밤을 새우게 하였다. 어떤 때는 꽃병에 꽃을 새로 갈아 꽂아 주었다.
치자꽃을 보게 된 동기도 이러한 K여사 마음의 표현에 기인했다. 나는 처음에 치자꽃을 보고 정말 놀랐다.
K여사가 '치자꽃' 할 때에 나는 그 서울 건물점에 주렁주렁 달린 치자 열매를 연상하면서 당황하는데, 훌륭한 시인이나 소설가나 철학자의 그 어느 이름이라도 몰랐던 순간처럼 당황하였다.
꽃은 송이와 나뭇잎이 함께 믿음직하였다. 거센 비바람에도 쓰러질 것같이 야들야들한 잎사귀가 아니었다.
감나무나 사철나무 잎 같은 계절을 이겨낼 수 있는 굳굳한 절개가 더욱 좋았다.
봉오리의 아름다움은 또한 새로운 멋이 돌았다. 여인의 머리를 길이로 둥글둥글 커트한 송이송이 같았다.
길게 말아 세운 머리 송이 하나하나가 풀리면서 꽃이 되는 듯하였다. 꽃이 예쁘고 잎사귀가 아름답고, 봉오리가 묘하여도 그 중에서 제일 이 꽃이 자랑으로 삼는 것은 역시 내풍기는 향기였다.
치자꽃의 높은 화격(花格)은 내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외모보다도, 육체보다도 정신과 높은 교양과 양식은 꽃에서 향기를 제일로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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