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안재홍(安在鴻 1892-1965)은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호는 민세(民世).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를 졸업하고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고 귀국하여 3·1운동 때는 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시대일보}를 창간한 것을 비롯하여 조선일보 주필·사장 역임. 기개와 절개, 학문이 뛰어난 언론인으로 민족의 긍지를 지닌 저항정신으로 일관, 웅건한 지사풍의 사설과 시론의 필자로 이름이 높다. 학자로서 상고사 연구에도 업적이 많다. 6·25때 납북되어 북에서 서거했다.
우리나라 초기 현대문의 우수한 기행수필을 많이 남겼다. 해박한 지식을 통해 자연과 인생의 해석에 묘미를 보인 수필들로 그 뿌리는 민족애이다.
윤오영 씨는 이 수필이 웅건(雄健)하고 호장(豪莊)한 지사풍(志士風)의 문장이고 초기 현대문 중 우수한 기행수필이라고 했다.



春風千里 / 안재홍(安在鴻)


"人生難得 百年閑"이라고 옥중(獄中)에서 영탄(詠嘆)한 자가 있다. 百年閑이 반드시 인생 생활의 극치는 아니겠지마는, 馬車말같이 분망한 생애는 이름높은 한양의 춘색(春色)도 완상(玩賞)할 겨를이 없이 지냈었다. 이제 마산행의 기회로써 春風千里 남국의 화신(花信)을 전하게 된 것은 浮生 分外의 閑事이라 할까. 남원 가는 이 도령의 행색은 아니지마는 夜渡漢江水하는 진위행(振威行)의 途次에는 沿線의 春色을 엿볼 수가 있었다. 鄕第에 체재하는 一日, 분묘(墳墓)에 省하여 쓸쓸한 老姑草(할미꽃)를 보았고 桃花杏花·莘荑花 등은 아직 꽃망울이 터져 보려하는 즈음이었다. 다시 경부선 차중의 사람이 되니, 각각으로 접근되는 남국의 춘색은 앉아서 山水의 묘경(妙境)에 노는 듯하게 한다.
청일전쟁의 명소로 吾人 인상이 얕지 아니한 성환역의 부근에서는 벌써 嫩綠을 바라보는 수주의 수양을 보았다. 속요(俗謠)에 나오는 천안 삼거리의 능수버들을 생각하게 한다. 芙江에 오니 황량한 촌락에 행화가 만발하였고 신이(莘荑)는 더욱 한창이다.
[莘荑花落杏花開]라는 漢詩가 있거니와 두 가지 꽃이 일시에 만개한 것은 재미있다. 신이화를 속명에 '개나리'라고 하니 '나리'는 백합의 속명이요, '개나리'는 假百合의 속어이리라. 이로써 歐語 '캐나리'의 귀화어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백합과 신이가 一은 구근식물이요, 一은 관목이지마는, 꽃이 동과(同科)에 속한 고로 이러한 명칭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개나리'를 莘荑로 쓰는 것은 잘못이니 연요화(連翹花)가 그 참인 것이다.
薪灘江頭에서 두건 쓴 사공이 협장(狹長)한 木船에다가 四, 五의 백의 남녀를 싣고 담벽(湛碧)한 강수를 건너려는 것을 보며 무르녹은 시취에 잠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행로 알 수 없는 피안을 상징하는가 생각하면 묘연한 情思 형언할 길 없다. 대전역을 지나 사위에 솟은 산악을 바라보며 한참 장엄한 기분을 돋우는 중에, 樵夫가 小童으로 더불어 노방(路傍)에서 쉬는데 초망에는 마른 풀이 한 짐이요, 옆에는 작작(灼灼)한 두견화가 한 묶음이다. 만개한 두견화는 예서 처음이다. 深川까지 가서 절벽의 한 중간에 매달려 있는 두견화를 보았고, 沿邊 일대에 다시 성개(盛開)한 두견화를 찾을 수 없었다. 吾人은 꽃을 사랑하되, 그러나 꺾기를 즐기지 않는다.
꽃은 봄의 중추요, 생명의 표지라, 貪花蜂蝶이란 말이 있거니와 꽃을 탐내는 것은 봉접(蜂蝶)뿐이 아닐 것이니, 무릇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예찬하는 자 누구든지 꽃을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때 만나 핀 꽃을 한손으로 꺾어 버리는 것은 잔혹이 심한 자이다. 꽃을 사랑할진대, 마땅히 그 정원이나 촌락에 옮겨 심어 둘 것이요, 그 힘이 없으면 차라리 두고 볼 것이다. 꽃을 꺾으니 그 선연(嬋娟)한 방혼(芳魂)을 상함이요, 하물며 시들은 뒤에 진개(塵芥)와 함께 버리기는 더욱 할 수 없는 일이다. 봄의 꽃, 가을 단풍, 무수한 관상자들이 한 다발씩 꺾어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애석하기 짝이 없는 바이다.
추풍령을 넘는다. 일대 산악이 원정층준( 山層峻)한데 北流하는 溪水는 오히려 만만한 기세를 보인다. 추풍령은 경부선 중 최고 한 지점을 이루었다. 白頭의 正幹이 속리산에 미쳐서 역행하여 한남과 금북(錦北)의 諸山脈을 이루었고, 차령으로부터 南走한 산맥은 호남 일대에 뻗쳤으니, 추풍령은 즉 속리로부터 서행하는 과도 지대이다. 昔者 壬辰의 役에 黑田長政이 西路軍을 거느리고 추풍령을 지나 청주, 죽산 등지를 거쳐 북상하니 吾人 독서자의 두뇌에는 이러한 인상이 때때마다 스러질 수 없다.
한국의 기후가 추풍령을 분계로 삼아 남북이 특이한 바 있거니와, 秋風, 이북에는 北流水를 보고 秋風 이남에는 南流水를 보는 것도 매우 흥미깊은 현상이다. 추풍령을 넘어 남하하는 도중 직지사라 하는 산간 소역이 盛開한 莘荑叢中에 파묻혀 있다.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문구를 기억하거니와 홀홀한 여로가 이 산간의 정토(淨土) 직지사의 묘경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섭섭한 일이다. 천 역에 당도하니 비로소 盛開한 櫻花를 보겠다. 이것이 남국 춘색의 第一境이라고 할 것이다. 櫻花에 관하여는 추후로 일필이 있고자 한다.
떠나는 길에 뒤로 돌아보니 금천의 川邊 높은 석축의 밑에서는 白衣白巾의 漂母群의 방망이 소리가 한창이요, 맞은 쪽 一面白沙의 위에는 세탁한 白布와 白練이 그럴 듯이 보인다. 대신 역을 지나니, 오후에 하학한 학동들이 손마다 한 다발씩의 두견화를 들고, 즐거운 듯이 지껄이며 돌아가는 양이 매우 마음기쁘게 한다.

고요한 가을 찬 밤 귀뜨라미 울지 마라
어지러운 때의 물결 이적엔 어이된고
燈 아래 홀로 누운 몸이 한숨겨워 하노라

왕년 作이다. 詩야 어찌 되었든지, 대구는 나의 잊기 어려운 인상 깊은 도시이다. 추풍령을 넘은 남해의 기차는 若水, 왜관 등 역을 지나 대구까지 왔다. 왜관은 낙동강의 중류가 굽이지어 흘러가는 곳이다. 왕왕한 탁류가 바로 장강 大河의 맛이 있다. 수십 년 전 필자가 왜관에서 내려 "이놈으 자식" 말하고 사투리 쓰는 마부들과 편주(扁舟)로 낙동강을 건너고 필마(匹馬)로 '바람티'를 넘어 성주읍내까지 가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우편으로 달성공원의 듯듯는 춘색을 지점(指點)하고, 좌편으로 금호강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추억많은 대구역에 왔을 적에는 벌써 십수 년 전의 추억은 스러지고 다만 己未 壬戌의 깊고 깊던 옥중생활의 인상이 되살아난다. 10분간 정차를 이용하여 구름다리를 건너 개찰구까지 가서 역두에 몰리는 군중을 쳐다보았다. 동으로 팔공산, 서로 남산의 정벽( 碧)한 景色이 더욱 회고자의 감회를 돕는다. 삭풍이 에이는 듯한 獄城中의 운동장에서 백설 애애(商商)한 팔공산의 연봉(連峰)을 바라보던 덜덜 떨리는 囚人에게는 마치 폭위(暴威)가 늠열한 渾世魔王과 같이 보이더니, 지금에는 자못 강산의 풍경 웅원창달(雄遠暢達)한 바 있음을 깨닫게 한다. 더욱이 남산은 옥창으로 들이쏘이는 載陽한 春日과 함께 人世 동경의 표상으로서 조망되는 바, 오늘날에 대하여 더욱 다정해 보인다. 남으로 경산 역을 지난다. 경산은 경부선 중 평택역과 함께 미곡 산출이 풍부한 곳이어니와, 금년은 오래 가는 봄 가물음으로 인하여 경산의 평야 一點水를 볼 수 없다.
성현 수도(省峴隧道)를 지나 청도를 거쳐 밀양 역에 달하였다. 밀양강 일대에 수석(水石)이 점철하고 龍頭終南의 諸山이 촉촉하게 雲際에 솟았는데 翼然한 영남루가 밀양 江岸에 번듯이 서서 묘망한 광야의 景色을 토탄하는 듯하다. 밀양은 曾遊의 地요, 斯地에 다시 고인이 많은지라, 기타 신인 행객의 追懷를 일으킴이 많다.
삼랑진에 다다르니 櫻花가 구름 같다. 구름같이 늘어선 담백한 櫻花의 叢中에는 수 주의 桃花가 사이사이 끼어 있어 점점홍의 교태가 견줄 데 없다. 櫻花가 내외에 擅名하는 것은 물론이어니와 꽃으로 인물에 비긴 것이 많으니 목단이 부귀인, 연화(蓮花)가 군자, 국화가 隱士, 매화가 한사(寒士), 혹 숙녀, 장미가 小人, 해당이 미인, 桃花가 遊女라고 하는 것은 꽃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짐작하는 바이다. 遊女를 상징하거나, 숙녀를 형용하거나 담백한 花雲 중에서 이 작작한 桃花를 보는 곳에 자못 赤熱한 정감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다.
楡川·密陽 일대 溪山이 映帶하는 곳에 비로소 一派 죽림을 바라보며, 선명한 南國淸調를 일으키게 되었더니, 삼랑진 이남에는 더욱 무성한 죽림이 곳곳에 다 있는 것을 보겠다. 鵲院關을 바라보아 古戰場의 餘劫을 조상하며, 물금·구포 등 역을 지나 부산진까지 왔다. 삼랑진 부근부터는 溶溶한 낙동강의 하류가 거의 항상 기차와 병행하게 된다.
昨夏 낙동강 하류의 대홍수로 인하여 大渚面 일대의 주민들이 모두 魚鼈를 이루었다고 하더니, 지금에도 연강 일대의 촌락은 오히려 숙연한 풍경이 마치 전란 후의 시가를 봄과 방불하다. 작년 八월에 부산까지 왕복하는 길에 기차로 여기를 통과하며, 처연한 재해지의 부녀의 곡성을 듣고 문득 愁然히 傷感함이 있어 돌아가 八, 九일간의 哭譜를 썼더니, 미구에 本報는 정간의 厄을 당하였으므로, 이 재해의 표상인 哭의 譜를 쓴 것이 緣起가 좋지 못한 일이라고 하여, 동인간에 가끔 조소를 받았었다. 금번에는 될 수 있는 대로 환희의 春光을 널리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다.
대구 부근에서부터 기온이 頓然히 높아져서 침울한 기분이 깊었더니, 부산진에 내려서 묘망한 五六島 부근의 海色을 바라보니, 심기 일전, 자못 청상쇄락(淸爽 落)함을 깨닫게 한다. 驛頭에 나서니, 뜻밖에 一故人이 대구서부터 同車하여 그곳까지 왔었고, 동래온천으로 향하는 전차에서 다시 一故人을 만났다. 이번 길은 히 獨行하여 一夕의 휴양을 얻고자 하였으므로, 知人 諸氏에게도 통지하지 못하였다. 추억 많은 강수영·남문구 등 지점을 지나 동래성을 남쪽으로 두고 溫泉場裡에 파묻혀 버렸다. 봉래교·백록교 등 송림과 앵화(櫻花)가 어울어진 곳에는 天成한 遊樂地에 다시 人爲의 기교를 가미한 것을 알 것이다.
―尹五榮 編著 『韓國隨筆選集』 관동출판사 발행

 

* 註解

인생난득 백년한(人生難得百年閑): 인간이란 것은 백년 동안 유한하기란 힘들다
진위행(振威行): 위풍을 떨치며 가는 것
향제(鄕第): 고향집
원정층준( 山層峻): 꼬불하고 꼿꼿하다(산의 모습)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인간의 내재된 본성을 다스리면 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
백의백건(白衣白巾)의 표모군(漂母群): 흰옷 입고 흰수건 쓴 빨래하는 아낙네들
웅원창달(雄遠暢達): 웅장하고 심원하고 유창하고 통달함
재양(載陽): 절기가 따뜻해짐
익연(翼然)한: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좌우가 넓은 모양
돈연(頓然)히: 조금도 고려함이 없이
청상쇄락(淸爽 落): 맑고 상쾌하고 심신이 맑아지는 상태. 명리에 얽매이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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