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노래 / 안경덕
여러 채의 초가가 나지막한 산기슭에 소곳이 엎드려 있다. 노랗고 둥근 지붕이 마치 대광주리를 엎어 놓은 듯하다. 포근한 마을이 분지 같아 광주리 터인가 보다. 마음을 안온하게 보듬어 준다. 초가 외벽에는 오래된 크고 작은 대광주리가 오달지게 매달려 있다. 낡은 것도 서러운데 흙바람을 맞는 게 안쓰럽다. 참한 광주리는 초가의 파수꾼일까. 오직 못 하나에 의지하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와중에 뒤란의 대숲 노래를 듣겠다며 귀를 모으는 여유를 부린다. 차분한 광주리가 내 마음을 붙든다.
대광주리는 재질이 가볍다. 펑퍼짐한 모양과 달리 바닥 올이 촘촘하다. 대나무 숲의 그 푸른 바람 냄새가 솔솔 난다. 섬세함과 대쪽 같은 장인 정신도 올마다 숨 쉰다. 까칠한 대나무를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서 만든 값진 노동의 산물이다. 대광주리의 생명력이랄까. 통풍을 위해 성글게 엮인 전은 자식을 포용해 주는 어머니의 느슨한 마음 같아 한 번 더 눈을 준다. 인생길도 광주리처럼 실용적으로 엮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광주리의 성근 그 전 사이로 슬쩍 비집고 들어간다. 삶이 고달팠던 어머니가 떠올라서다.
언젠가 파란 강물을 낀 십리길 강변에서 훤칠하고 청청한 대나무밭에 흠뻑 빠져 본 적이 있다. 속을 비워낸 대나무들이 저처럼 내 안의 욕심과 잡념을 들어 내주어 마음이 종잇장처럼 햇갑았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서걱대는 대숲노래가 걸음걸음 따라왔다. 댓잎만큼 시리고 아렸던 어머니의 삶이 깃던 연가로 들렸다. 애잔한 그 선율에 대나무들도 서슬 퍼런 위용을 잠시 내려놓고 귀 기울어 주었다. 그 살뜰함을 지닌 대나무는, 차고 곧은 남성적 이미지를 배재하고 서정적인 성향만으로 여인들의 전유물인 광주리로 재 탄생되나보다.
예전엔 아기자기한 전통생활용품 속에 아낙들의 소중한 꿈, 추억, 애환이 담겨 있었다. 계절 따라 용도 따라 달리 쓰이는, 크고 작은 대광주리의 생광스러움이 살뜰한 살림살이에 초석이 되었다. 집안의 생활용품 대 물림 중에서도 열쇠꾸러미, 반짇고리, 물동이, 광주리를 시어머니께 전수 받아야 온전한 며느리 자리로 메김 되지 않았던가. 그 물건들에는 집안 내력과 안어른들이 대대로 이어온 숨결이 묻어 있었다. 순박하고 수더분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 있는, 우리 집 대광주리를 보면 마음이 절로 낮아지고 순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대광주리는 작은 텃밭이었다. 어머니는 여름마다 나와 함께 연례행사처럼 건풍이 잘 되는 큼지막하고 너른 광주리에 고춧잎과 산나물을 살짝 데쳐서 널고, 노란 호박은 길게 잘라 쭉쭉 펴 널어 호박고지를 만들었다. 둥글 넙적하게 썬 가지와 하얀 밀가루로 옷을 입혀 쪄낸 풋고추도 널고, 늦가을이면 흰 무를 성글게 채 썰어 살뜰히 펴서 널었다. 평상 위 무말랭이와 아래채 처마 밑에 내 걸린 무청 시래기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무척 조화로웠다. 무말랭이는 찬바람에 시래기들끼리 서로 몸 부비는 소리가 잔소리로 들렸을까. 타시락거리지도, 늑장 부리지도 않고 까슬까슬 잘도 말랐다.
어머니는 대숲노래를 들으며 고된 시집살이의 한도 대광주리에 담아 쨍쨍한 햇볕에 일광욕을 시켰다. 성스러운 햇볕이 꾸끕한 마음을 뽀송하게 해 주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럴 때마다 번화자가 된 어머니 얼굴이 참으로 거늑해 일상의 그늘은 찾을 수 없었다. 현대인들의 노래방에서 요란스럽게 행해지는 스트레스 해소법과 차원이 다른 셈이다. 자체 해결의 지혜가 아주 돋보인다고 할까. 어머니의 가뿐해진 마음이 건채에 살아있는 들내를 만들어 냈다. 입맛을 돋우었던 그 건체는 몇 십 배로 응축된 엄마표 비타민 덩어리였다.
대광주리는 추억이다. 나도 어머니처럼 딸과 함께 고구마 줄기를 삶고, 무채를 썰어 대광주리에 널어 말린다. 그 시간, 어머니와 흑백 사진 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면 한동안 오감해진다. 광주리는 어머니와의 교감이자 그리움을 달래는 도구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 나와 딸이 정을 이어가게 하는 둥근 마음이다. 내 속내를 읽은 야채들도 삶거나 칼질을 해서 바람이 노긋하고 햇볕이 따끈할 때 날쌍한 광주리에 널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본연의 맛을 더해주려는 기특함이다. 야채가 꾸덕꾸덕 해지기 전 며칠 비가 질금거리면 흠집이 남는다. 야채는 고운 제 색깔을 잃고 맛도 떨어진다며 안절부절 한다. 착한 야채에 날씨가 뜻밖의 상처를 준다. 우리 삶에도 예고 없이 찾아드는 비바람으로 본래 그렸던 청사진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이런저런 일에 젖고 부딪쳐서 생채기가 생긴다.
어머니도 새댁 시절부터 봄꿈을 가슴에 묻은 채 평생을 혹독한 시집살이, 고된 농사, 크고 작은 집안일로 손에 물마를 날이 없었고, 굽이치는 삶의 파도도 잠 잘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전생에 대광주리였을까. 많은 식구 수발을 지청구 없이 다 받아 안은 후덕한 성품이 광주리의 넉넉함과 똑 같았다. 광주리는 먹거리의 곳간이었다면, 어머니는 온 가족을 온기로 품는 놋화로였다. 가로세로로 엮어진 광주리의 올처럼 훗날 자식들 인연의 끈에서 불어날 며느리와 사위, 손자손녀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을 접은 채 자연 속으로 가셨다. 대광주리와 자분자분 나눴던 정분을 못 잊어 대밭에다 영면의 터전으로 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밭에 가면 어머니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것도 그 생각 때문일 성싶다.
옴팍한 대광주리를 마치 실내 인테리어인양 마루 한 쪽에 두었다. 거기에 뽀송한 빨래를 반듯반듯 개어 담기도 하고, 읽던 책과 신문, 과일과 먹던 과자 봉지를 그냥 툭 던져 놓기도 한다. 무조건 다 받아준 어머니한테 했듯 온갖 푸념을 쏟아 놓고 속내도 털어 놓는다. 광주리가 대숲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려준다. 광주리는 내 마음의 영원한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