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자기 / 찰스램
나는 오래 된 도자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여성적이라고 할 만큼 편벽된 애착 비슷한 것이다. 큰 집을 구경하게 되는 경우, 나는 도자기를 보관하는 진열장이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고 그 다음에야 화랑(畵廊)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 좋아하는 순서에 대해 이유를 들어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누구나가 어떤 취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이 너무도 오랜 옛날에 비롯되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변호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어른들을 따라 맨 처음 구경했던 연극이나, 처음 보았던 전시회를 기억한다. 그러나 도자기 항아리와 접시가 언제부터 내 마음속에 끼여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때에도-도자기 찻잔이-저 원근법 이전의 세계에서 어떤 요소의 제약도 받지 않고, 남자니 여자니 하는 개념으로 둥둥 떠 있는 하늘색 물감으로 그려진, 저 귀엽고 법도 없는 기묘한 모습이 싫지 않았는 데 -어찌 지금이라고 싫어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이 옛친구들과 만나보기를 좋아한다 -이들의 모습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허공에 모습이 떠 있지만(그렇게 사람의 눈에는 보인다), 여전히 대지 위에 서 있다. -왜냐하면 격식을 차린 화가는 터무니없는 것이 될까봐, 그들의 신발 아래 적어 발라놓은-바로 그 짙은 남색 반점을 화가에 대한 예의로라도 대지라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되도록이면 더욱더 여자다운 표정을 지닌 여자를 좋아한다.
여기 젊고 정중한 중국의 관리가 2마일쯤 떨어진 거리에서 둥근 쟁반에 받쳐 든 찻잔을 한 귀부인에게 바치고 있다. 보라, 거리가 얼마나 존경심을 돋보이게 하는가! 또 여기 그 여인이 아니면 다른 여인이-핀잔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많았으면 같은 사람일 터이니까-고요한 정원의 시냇물 이쪽 기슭에 대놓은 조그마한 요정(妖精)의 배를 타려고 사뿐사뿐 단정한 걸음걸이로 발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내딛는 발의 정확한 각도로 보아서(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각도와 같다면) 어김없이 그 여자는 그 묘한 시냇물 저쪽 반 마장이나 떨어진, 꽃이 만발한 초원 한복판을 딛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좀더 먼 곳에는-멀고 가까움을 그들 세계에서는 점치기 어렵지만-말과 나무와 탑들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이쪽으로는 웅크리고 있는 암소나 토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큰 것과 작은 것이 크기가 같아 보인다 - 아마 아름다운 중국의 밝은 공기를 통해서 보면 사물들이 그렇게 보이나보다.
나는 간밤에 중국 녹차를 들면서(이따금 오후에 아무 것도 섞지 않은 녹차를 마실 만큼 우리는 구습에 젖어 있다)그때 처음 사용했던(최근에 구입한) 한 벌의 희귀 한 고(古) 청자 찻잔에 그려져 있는 위와 같은 몇 가지 아름다운 그림들을 사촌 누님에게 설명하고 있었고, 그러자니 이와 같이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이따금 우리 눈을 즐겁게 할 여유가 있다 싶어, 만년(晩年)의 우리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런 처지가 되었느냐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마음속에 스쳐 지나는 감정이 누님의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 같았다. 나는 브리짓에게 나타난 이 여름철 구름과 같은 감정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의 형편이 넉넉하진 못했지만 행복했던 그 좋은 옛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누님은 말하였다. “가난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 정도라는 것이 있지." -그녀는 서슴없이 이것저것 말하는 것이었다 - "그 시절에 우리는 훨씬 더 행복했다고 확신하네. 이제 돈이 충분하고 여유가 생기니 물건을 사는 것도 그저 구입에 불과할 뿐이야. 전에는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은 하나의 승리의 기쁨이었지. 우리가 값싼 사치품을 가지려 했을 때(참, 그때는 자네의 승낙을 받으려고 얼마나 나는 법석을 떨어야만 했던가!)-2,3일 전부터 토론을 하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조심스레 따져보았고,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고, 쓴 돈에 해당되는 액수를 어떤 절약으로 메꿀 수 있을지를 궁리하곤 했었지. 물건을 사고 지불한 돈의 귀중함을 느끼던 그 시절에는 한 가지 물건을 사면 그만큼 보람있게 느껴지곤 했었지"
"자네는 그 갈색 양복이 생각나나?" 실밥이 나와서 친구들 모두가 창피스럽다고 말할 때까지 , 자네는 그 옷을 걸치고 다녀야만 했었지 .-그게 모두가 자네가 코벤트 가든1)에 있는 바커 서점에서 밤 늦게 집으로 끌고 봤던 그 대형판 (보먼트와 플레처)2) 전집 때문이 아니었던가?-기억이 나는가? 그것을 사기로 작정하기 전 여러 주일 동안 얼마나 눈독을 들였었는지 말이야. 또 결정을 못하다가 토요일 밤 10시 무렵에야 겨우 작정을 했는데, 놓치지 않을까 두려웠던 나머지 자네는 그날밤으로 이스링턴을 출발하지 않았던가?-그리고 늙은 책방 주인이 몇 마디 투덜대며 문을 열고서, 깜박이는 촛불로(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으니까) 먼지가 낀 귀중본들 속에서 그 유물같이 낡은 책을 비쳐주던 때를 -그때 자네는 그것을 꾸려 들고 돌아오면서도 귀찮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무게가 갑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네가 그것을 내게 내놓았을 때-그리고 그것이 온전한가를 조사하고 있을 때(자네는 그것을 "제본"이라 했었지)-그리고 자네의 급한 성미가 밤새 놓아두는 것을 참지 못해서, 떨어진 책장들을 내가 풀칠하며 수선하고 있을 때-거기, 가난한 사람의 살림살이에 기쁨이 있었겠나? 아니면, 지금 자네가 입고 있는 말쑥한 검은 양복, 우리가 부자가 되어 깔끔해져서, 항상 솔질이 되도록 조심을 해야 하는 그 양복들이, 자네에게 말이야, 그 낡은 양복-검푸른 자네의 그 옛날 양복을-그 대형관 고본(古本)에 거침없이 써버린 거금 15실링에 대한-아니 16실링이였던가?-그때는 그것을 엄청난 일로 여겼었지- 양심을 달래기 위해 평상시보다 4,5주일이나 더 낡을 때까지 펄럭거리며 입고 다녔지만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던 그 자부심의 절반이라도 뽐내게 해줄 수 있겠는가? 이제 자네는 사고 싶은 책은 어떤 것이라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네. 그러나, 이제는 그 귀한 고서를 구입했던 것과 같은 기쁨을 자네에게서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네."
"우리가 ‘블랜치 부인’3)이라 이름 지었던 레오나르도4)의 그 복제화(複製畵)에 15실링도 못 되는 돈을 쓰고서 자네가 집에 와서 스무 번이나 변명을 하던 때, 또 사온 것을 보고는 돈을 생각하고-돈을 생각하고 나서는 다시 그 사온 그림을 쳐다보곤 했던 시절만 해도-가난한 살림살이 속에 기쁨이 없었겠나? 이젠 서슴없이 곧장 콜나기라는 화상(畵商)을 찾아가면 레오나르도의 복제화 정도야 몇 십 장이라도 살 수 있게 되었네. 하지만 그때 같은 기분이겠나?"
"그리고, 휴일이면 엔필드, 포터의 바나 월담에 갔던 유쾌한 산책을 자네 기억하고 있나? -이제 여유가 있게 되니 휴일도 또 다른 유쾌한 일들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 -그리고 입맛이 당기는 냉 양고기와 샐러드 도시락을 담아가지고 다녔던 작은 손바구니-또 점심 때가 되면 들어가서 가지고 간 도시락을 펴놓고 먹을 만한 적당한 주막은 없을까 하고 자네는 얼마나 살피곤 했던가? -미안해서 자네가 주문한 맥주 값만을 치르고서-주막 마님의 안색을 살피고, 탁상보를 빌려줄 눈치인지 아닌지를 점쳐보곤 하면서-또, 유명한 낚시꾼 아이잭 월튼5) 수필에 나오는 그 마님과 같은 소박한 주인이 또 한 분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던가?-그리고 어떤 때는 그 주인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어떤 때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곤 하였지.-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서로서로 명랑한 표정을 짓고, "숭어장간고을 별장으로 가지고 있는 낚시꾼 피스카토어6)가 부럽지 않게 가지고 간 평범한 음식을 맛있게 먹곤 하였지? 이젠, -우리가 어느 하루의 놀이를 떠난다면, 사실은 그런 기회도 거의 없지만, 우리는 중도에 차를 타고-또 호사스런 휴게소에 들어가 비용 같은 것은 전혀 따질 것도 없이 최고급 음식을 주문하네. -그런데, 그 음식이란 우리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대접을 받아도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불안 속에서, 아무 데나 들어가 성급히 먹어치우던 시골 도시락 진미의 채 반에도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
"자네는 이제 자존심이 있어 특별석이 아니면 아무 데서나 연극을 구경하지 못할 테지. 자네 생각나나? 우리가 <헥삼의 전투>, <칼레이의 함락>7)이나 <숲속의 어린이>8)에 나오는 베니스터9)와 블랜드 부인10)을 구경할 때, 앉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말일세. -그때 우리는 한철에 서너 번씩 1실링짜리 싸구려 좌석에 앉기 위해서 각자 동전 한 푼씩 짜냈었지, -그런 곳에서는 자네는 나를 데리고 올 곳이 못 된다고 항상 내심으로 생각했었고-나는 그런 곳이나마 데리고 와준 데 대해서 오히려 고맙게 여겼었지. -또 약간 창피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재미가 있었고-막이 오르면 극장에 들어 온 이상 장소가 무슨 상관이었으며, <아아든>에 있는 <로자린드>나 일리리아 궁전에 있는 <비올라>11) 마음이 팔려 있을 때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다를 것이 무엇이었겠나? 자네는 말하곤 했지. 대중석은 남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연극을 구경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곳이라고-또 이러한 구경거리의 진미는 구경 가는 빈도가 낮은 것에 비례하여 상승하는 것이라고-또 그런 자리에서 만난 관객들은 대개 연극의 대본을 읽지 않으므로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에 그만큼 더 주의를 집중해야만 할 것이고, 또 그들은 그렇게 실제로 주의를 하더라는 이야기며 -한마디의 말이라도 놓치면, 그 한마디는 그들로서는 상상력으로 그 자리를 메울 수 없는 깊은 구멍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하였지. 그때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자부심을 달랬던 거지.-그리고 판단해 보게나, 내가 한 여자로서 받았던 편의와 친절이 그 후 훨씬 값비싼 좌석에서 받은 것보다 그 극장에서 받은 것이 훨씬 못한 것이었겠나, 그렇지 않았겠나? 사실 비집고 들어가서 불편한 층계를 사람들을 헤치고 올라가는 것은 쉬운 건 아니었지,- 하지만 그래도 여자에 대한 예의는 다른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볼 수 있는 정도와 다름없이 지켜지고 있었지, -그리고 하나의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좌석에 앉은 아늑한 기분을 얼마나 북돋우어 주었고, 결국은 그 연극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였던가! 이제 우리는 그저 돈을 내고 걱정 없이 걸어 들어갈 수 있지. 또 자네는 이제는 값싼 일반 관람석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고 말하겠지. 정말 그때 우리는 잘 볼 수도 없었고 또 잘 들을 수도 없었지. -그런데, 시력도 그 밖의 모든 것도 가난과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나는 생각하네."
"아주 흔해지기 전에 첫물 딸기를 먹는다든가, 아직 값이 비쌀 때에 첫물 완두콩 요리를 먹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 -그것들을 맛있는 저녁 식사로 먹는 것은 분명 특식이었지. -이제 우리는 무슨 특식을 먹을 수 있겠나? 혹 지금 우리 자신들을 특식으로 대접한다 치면-다시 말해 우리의 재력 한도에서 좀 벗어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지나친 이기(利已)요 천벌을 받는 사치가 될 것이야. 내가 소위 특식이라 하는 것은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것보다 조금 좋은 것을 허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들처럼,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양쪽이 같이 좋아하는 좀 비싸지 않은 사치를 가끔 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미안해하며 잘못에 대한 양쪽의 몫을 모두 혼자 몫으로 책임지려고 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자신들을 호사롭게 한다 해서 별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것은 오히려 남을 대접하는 방법을 시사해줄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러나, 이제는-내 말은-우리 자신들에게 결코 호사스러운 음식을 대접 못한다는 뜻일세.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이 말은 지극히 가난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날 우리들과 같이 궁핍한 상태를 조금 벗어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세."
"나는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네. 연말에 계산을 맞추어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는 거지-그래 섣달 그믐날 밤이면 과용한 액수를 셈하기에 우리는 법석을 떨곤 하였지 -자네는 잘 들어맞지 않은 계산 때문에, 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썼나, 아니면 그렇게 썼을 리가 없다. 혹은 다음 해에는 그렇게 많이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둥, 경위를 찾아보려 궁리 하는 중에, 여러 차례 얼굴을 길쭉하게 늘어뜨리곤 하였지. 그러나 우리 재산의 보잘것없는 원금(元金)이 줄어들고만 있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었지. -그러나 어떻든 방법을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고, 이 항목 저 항목 등을 절충하고, 다음 해에는 이 비용을 줄이고, 저 비용을 없애고, 살아가는 것을 논의하는 사이에,-게다가 젊음이 가져다주는 희망과, 잘 웃어넘기는 활달한 기쁨이-오늘에 이르도록 자네는 한번도 그 점에 부족함이 없었지-있어서 우리는 적자(赤字)를 접어두었고, 결국에는 "그득히 넘실거리는 술잔"을 들고, - "진정으로 유쾌한 코튼 씨"12)라고 불렀던 시구(詩句)에서 자네가 인용하곤 했던-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들이곤 했었지.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섣달 그믐이 되어도 결산할 것이 없고-새해에는 우리의 형편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즐거운 희망도 걸어볼 것이 없게 되었네."
브리짓은 평소에 지극히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녀가 일단 웅변조의 말문을 열었을 때에는, 말을 멈추게 하는데 조심을 한다. 하지만 일 년에 불과 몇백 파운드를 가지고 그녀의 귀여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부(富)에 대한 환영을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보다 가난했을 때 더 행복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님, 우리가 그때는 더 젊었었지요. 미안하지만 그 과분하게 가진 것을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남아도는 돈을 바다 속에 처넣어버린다해도 우리 자신이 조금도 나아질 리는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함께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한 데 대해서는 크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우의의 결속을 돈독하게 해주고 한층 더 긴밀하게 해 주었지요. 지금 누님이 불평하고 있는 충족된 생활을 전부터 항상 누렸었더라면 서로에 대하여 지금까지 지녀온 것과 같은 우의를 우리는 결코 지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곤경에 대항하는 힘-저절로 부풀어올라 어떤 환경도 억누를 수 없는 그 젊음의 혈기가 우리에게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노경(老境)에 넉넉한 수입을 갖는다는 것은 젊음을 보충받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실로 섭섭한 보충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걸어가던 곳을 이제 차를 타고 가야만 합니다. 또 누님이 지금 말씀하신 그 좋은 옛 시절에 할 수 있었던 것보다는 -좀더 호사도 하고, 좀더 편안한 자리에 드러누워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누님과 내가 하루 30마일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다면-베니스터와 블랜드 부인이 다시 젊어지고, 누님과 나도 젊어져 그들을 볼 수 있게 된다면-1실링짜리 대중석에 앉던 그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누님 이제는 이것들은 모두 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순간 화려한 양탄자가 깔린 벽난롯가에서, 이 사치스런 안락의자에 앉아, 이렇게 조용히 말다툼을 하는 대신에-누님과 내가 다시 한 번 그 불편한 층계를 비집고 오르며, 싸구려 관람석에 모여드는 가난뱅이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고 팔꿈치로 얻어맞고 있다면-내가 다시 한 번 누님의 그 근심스런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우리가 비집고 올라간 맨 윗층계를 점령하고서, 발 아래로 흔쾌하게 펼쳐진 극장 전경을 볼 수 있는 구멍이 트일 때면, "아 -이제 살았구나!" 하고 부르짖던 누님의 그 유쾌한 음성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그 옛시절을 사오기 위해서라면, 크러서스13)가 가진 것보다. 거부(巨富) 유태인 R씨14) 가졌다고 생각되는 재산보다 더 큰 재산이라도 깊디 깊은 바다 속에 던져버릴 용의가 있답니다. 그러니, 이제 저 즐겁고 작달막한 중국인 하인이 침대 덮개만큼이나 큰 양산을 들고 저 농청색(濃靑色) 정자 안에 있는, 저기 귀엽고도 싱거운 성모 마리아를 반쯤 짧은 한 귀부인의 머리 위를 받치고 있는 저 찻잔의 그림이나 감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