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면 봄도 머지않나니 / 변해명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베개부터 본다. ‘오늘은 머리카락이 두 올 빠졌네.’

머리카락을 집어내며 킬킬 웃는다.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제법 수십 가닥이 빠지지만 항암제를 맞는 사람치고 생각보다 덜 빠진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는다.

네 번째 항암 주사를 맞은 이틀째다. 거울을 본다. 얼굴은 붓고 손도 퉁퉁 부었다. 손가락 마디가 흙색으로 보이고 손톱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내일이면 부기도 가실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아침 기도를 바친다. ‘주님 당신 곁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 이리 길고 힘든지요? 하오나 세상에 더 머물라 하오시면 그 뜻 따라 최선을 다 하겠나이다’

항암 주사를 맞기 전에 의사와 진료실에서 만났을 때는 별다른 증후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경과가 좋다고 말했다. 나는 어쩌냐고 묻는 의사 말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밥 먹기와 운동하기는 싫고 누워 있고만 싶다. 잦은 통증에 머리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고 여기저기가 공연히 아프다 말고’ 어쩌고 하면서 종알거리니 “그게 다 아픈 거잖아요?” 해서 웃었다.

담낭에서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도 안 된다는 담낭암 4기.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첫날 의사는 가족에게 나를 내보내고 한 말이 있었단다. 황달이 오고, 복수가 차고, 물을 빼고 하는 과정을 겪게도 되는데 가족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 줘야 한다는 말이었단다. 그래서 의사는 그런 경우가 오지 않는 것으로도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10일 후 CT, X-RAY, 피 검사 등을 다시 하고 1월 24일 뵐게요.”

언제나 의사 앞에서는 깍듯하고 세련된 전직 교장이다.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물러난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의사라 권위 의식이 없고 이웃 사람과 이야기하는 푸근함이 있다. 입원할 동안 회진을 돌 때도 다른 말로 환자를 어루만진다. 방에 불을 끄고 있다 의사 회진에 불을 켰는데 나가면서 “불을 꺼 드릴까요?” 하면서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우선 고맙고 신뢰가 갔다.

외래 주사실 침대에 가서 누워 주사를 맞는다. 4시간의 인내가 요구되는 시간이다. 언제나 이곳에 함께 누워 주사 맞는 50, 60명의 환자들을 보면서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 생긴다. 89년생 환자 곁에 누웠을 때 더 그랬다. 나보다 젊은이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의 처지가 너무 안됐다는 생각과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 내가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저들도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까! 한창 일을 할 나이에 직장에 근무하거나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이에 그 충격과 고통은 내 경우에 비기면 크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남자들, 한 잡안의 가장으로 가족 생계를 떠메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고통은 또 어떠할까? 금방 끝날 일도 아닌 지루하고 힘들고 완치된다는 자신감을 갖기도 힘든 경우 나는 그들의 고민 곁으로 다가설 불행조차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워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 ‘저들을 빨리 낫게 해서 세상으로 나가 활동하게 해 주세요. 요즘은 암도 별것 아니라고 하잖아요? 약도 많고 방법도 많이 개발되었으니 주여 저들을 보살펴 도와주소서. 당신을 의지하여 힘과 용기를 얻게 하소서.’

나는 침대 머리를 고여 편히 누워 내 방 11명의 환자를 살핀다. 내 옆자리 30대 남자로 보이는 사람은 주사를 꽂자 책 한 권을 펼쳐 들고 읽기에 열중한다. 내 건너 침대의 젊은 여인은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려 쓰고 잠든 듯 누워 있다. 그 옆 자리는 72세의 할머니다. 들어서면서 “나 항암 주사는 안 맞을 거여” 하며 불평이다. 머리가 다 빠지고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항암 주사를 또 맞느냐는 것이다. 모시고 온 아들 같은 사람이 “어머니, 오늘 맞는 것은 항암 주사가 아니고 영양 주사예요” 그러니 할머니는 그러냐며 항암 주사를 맞는다. 착한 시골 할머니, 세상모르고 오직 농사지으며 살아온 할머니 같다. 그동안 당신이 맞은 약을 알고 있을 것이건만 그조차 모르고 있는 순박한 할머니가 아닌가. 나도 그 아들 마음으로 그가 맞는 항암제에 흡수되기를 그래서 빨리 낫기를 기도한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두 침대 여인은 마주 앉아 소곤거리며 이야기에 빠져 있다. 한 여인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머리를 떳떳하게 들고 드나들며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녀는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까지 하고 완치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여인 같다.

암 수술은 대체로 암세포를 찾아 들어내는 확실한 암 제거 방법이다. 그러나 수술을 받을 수 없이 여기저기 전이된 사람은 언제 암세포가 물러갈지 알 수 없는 싸움이다. 나는 슬며시 그녀가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곳에서는 폐암 환자 둘이서 마주 앉아 서로가 병력을 털어놓고 있었다.

“건강 검진 때 날 보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어. 6개월도 되지 않아 자꾸 기침이 나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폐암이라고 하잖아?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을 그들은 이미 그때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환자를 만들어 줘?”

그는 너무 속이 상한지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그의 말에 박수를 치며 그 자리에 동참하고 싶었다. 내 경우도 그랬다.

일 년 전 건강 검진을 받았다. 그때 일반 건강 검진 외에 선택 사항에서 암 검사를 덧붙였다. 유방암, 자궁암, 그리고 위 내시경도 했다. 그때 초음파 검사를 하던 사람이 다음 날 다시 한 번 한다고 나를 하루 더 나오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날 초음파 검사를 다시 했고, 검사 결과에 대한 소견서는 전체 아무 이상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이상 없늕 건강한 사람이었다. 왜 초음파 검사를 두 번씩 해야 했는지 모른 채.

그 뒤 일 년을 그곳 가정의학과에 매달 다니며 고혈압약과 갑상선 저하증, 고지혈증이 경계에 오고 있다며 약을 타다 먹고 한 달에 한 번씩 피 검사며 오줌 검사며 X-RAY를 찍었다.

지난 10월 한 달을 꼬박 바쁜 일로 일을 했는데 자꾸 오른쪽 옆구리 아래가 뜨끔거리며 아파 왔다. 대상포진을 앓고 난 뒤라 난 그곳에 대상포진이 또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병원에 갔다.

그때 가정의학과 의사가 말했다. 건강 검진 때 담낭에 작은 결석이 두 개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검사를 해 보니 담석도 없어지고 깨끗하다며 신경성 위장병이란 말로 넘겼다.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외국 여행까지 10일간 다녀왔다. 그러나 그 10일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11월 20일경 나는 다시 병원에 가서 아무래도 담석증 같으니 CT를 찍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의외로 담낭암에 이미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가 된 결과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 건강 검진 때 초음파 검사를 두 번씩 하면서 왜 CT를 찍지 않고 넘겼는지 모를 일이다. 그때 녹두알만 한 담석은 담석이 아니고 암이었는데, 그래서 일 년을 암을 키우고 검사한 병원의 의사는 내게 암 한자를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병원의 의사들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는가. 나는 그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가정의학과 의사가 말했다. 검사할 때마다 간 기능은 정상이었고 피 검사에 문제가 있거나 체중이 줄거나 아무 증상도 나타나지 않아 암을 생각할 수 없었노라고, 미안하다고. 가정의학과 의사가 뭘 알랴. 먼저 초음파 검사를 하고 말 한마디 없던 사람들, 그때 건강 검진 결론을 내린 의사의 무관심이 문제지. 나는 항암 주사를 맞으며 폐암 환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나처럼 이곳에서 항암제를 투여하며 투병하던 사람들이 끝내 암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문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도 나처럼 이 침대에 누워 항암 주사를 맞으며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눈을 감는다. 삶과 죽음은 내 뜻이 아니니 신에게 맡기고 마음을 다잡는다. 주여 당신께 의지합니다. 당신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겨울이 가면 봄도 머지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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