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의 말 맛 / 이난호
스페인의 산티아고에는 세 종류의 식당이 있다. 주 요리인 고기에 포도주와 과일이 나오는 12유로 내외의 일반 식당, 17유로짜리 호텔 아침 뷔페, 그리고 무료 급식소다. 일반 식당은 열 시 전후 문을 열어 진종일 영업하고, 호텔 뷔페는 7시부터 11시까지가 아침식사 시간이고 무료 급식소는 아침 8시, 오후 1시와 8시, 하루 세 번 딱 한 시간씩 문을 연다.
거기 머무는 3일 동안 세 종류의 식당에 골고루 들어가 봤다. 어느 하루는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저녁은 무료 식당에서 먹었다. 고기 양이 많아 두 끼니를 너끈히 때울 수 있는 7유로짜리 식당을 알아낸 후 거기에도 두 번 갔다. 기분 좋은 곳이었다. 식당은 늘 만원이어서 사람들은 문 밖에 길게 늘어서서 마냥 기다리며 신나게 떠들었다. 종업원들도 웃음을 머금고 음식 접시를 높이 쳐들고 날렵하게 혼잡을 뚫었다. 보기 좋았다. 거기에 순례객이 꼬이는 이유는 그들의 친절한 미소를 받으며 적은 돈으로 배를 불릴 수 있는데다가 운이 좋으면 전에 한두 번 스쳤거나 같은 숙소에 들어 낯익힌 까미노들을 재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거기서 까미노 초기에 몇 번 내 편의를 봐준 샤론을 다시 만나 식당이 떠나가도록 환호했다.
무료 식당엔 세 번 갔다. 주로 노숙인들이 고정손님이었다. 팔에 깁스를 한 청년, 흑인 아저씨, 걸음새가 부자연한 뚱보 노인, 그리고 배가 도도록한 여인을 세 번 다 만났다. 여인은 첫날 식당의 유일한 여자 손님이어서 눈여겨봤었는데 다음 날은 대성당 낮 미사에서 만났고, 그 저녁에 식당에서 마주쳤다. 서로 깜짝 깜짝 놀랐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꼼짝 않고 내내 눈을 내리 깔아두는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반갑게 인사하고 웃고 장난치고 떠들었다. 나는 그들 노숙인 무리와 섞여 있기 쑥스러워 멀찍이서 빙빙 돌다가 문이 열리면 얼른 들어갔다. 내 이중성이 씁쓸했지만 남의 덕을 볼 때 그만 찔림은 받아야 한다고 자위했다.
배식 시간 5분 전쯤 문이 열리고 수녀님이 식사에 대한 기도 송을 선창했다. 대부분 따라 불렀지만 한둘은 상반신을 벽에 기댄 채 내내 입 다물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몇 명은 급히 화장실로 갔다. 그 도시에는 식당이나 공공건물 외에 용변 볼 곳이 마땅찮아 이들에겐 배설 문제도 클 것 같았다. 메뉴는 맛과 질에 차이가 있지만 빵과 고기와 수프와 생선튀김에 후식으로 과일이 나오는 건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았다. 호두주만 없었다. 배가 도도록한 여인이 수프에 빵을 뜯어 넣으면서 마주 앉은 남자와 웃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흑인 아저씨는 매번 배식을 받자마자 수프만 마시고 빵과 고기를 싸들고 나갔다. 거동이 불편한 가족의 끼니를 책임진 가장일까. 나는 우거지 수프가 입에 당겨 두 그릇 먹었다. 다른 까미노들에게 그곳을 소개할 때 강낭콩 수프 말고 꼭 우거지 수프를 먹으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빵을 분배하는 수녀님의 덤덤한 표정을 찍고 싶었다. 우선 엇비슷한 방향에서 셔터를 눌러봤다. 아니나 다를까. "노 포토!" 그가 나를 노려봤다. 백배 사죄했다. 다음부터 식대로 5센트 내라 했다. 낼 만해 보이는 이에게 최소한도의 밥값을 물리는 것이 그곳 규칙인 듯했다. 자존의지를 일깨우려는 의도일 것이다. 나는 50유로쯤 호기를 부려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500유로쯤 슬그머니 기부상자에 넣으면 모를까 그곳 분위기에 50유로는 코미디 아니면 희롱으로 비치기 십상일 금액이었다.
먼빛으로 수녀님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엔 베푸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짓기 쉬운 들뜬 미소가 없었다. 그러나 걸음걸이가 어설픈 뚱보 노인이 두 번째 수프 그릇을 받아들고 천천히 걸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보는 눈길이 따스했다. 어린애의 서툰 걸음마를 숨어보는 어미의 그것이었다. 떠돌이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빵보다 저런 시선이리라. 맘에서 우러나는 그 표정이 탐나 사흘 내리 바라다봤다. 연습해서 가능한 일이라면 노력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대성당 야곱 상징물에 키스하지 않았다. 2천 년 전 그가 허기를 기도로 채우며 걸었던 길을 기도 대신 아귀아귀 빵을 씹으며 걸었어도 그의 눈을 보자 단박 마음 편해졌던 것이다. 민망한 들판에 혼자 서서 배부른 아기 소리를 냈었다. 우우우, 뒹굴고 맴돌았다. 40일 매순간 나는 팽팽히 당겨진 풍선이었다. 그랬으므로 나는 그이 앞에 가책 없었다. 인간의 빵이 되어 씹히는 예수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려 한 야곱'이라면 이렇게 '이쁜 아기'를 어찌 미소하지 않으랴.
그래서일까. 산티아고에서 내가 한 일이란 고작 이집 저집 고기 양을 저울질한 것, 사진기를 들먹거리다가 혼꾸멍난 것뿐임에도 다시 가고 싶다. 왜 가느냐고 물으면 여전히 '그냥'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지만 가고 싶다. 아홉 번이나 그 길을 오간 이의 대답 역시 별다르지 않으리라는 짐작은 언제 해도 유쾌하다. 무료 식당 수녀님에게 왜 거기 서 있는가 물어도 비슷한 대답일 것 같다.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