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갈비 살 / 조이섭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사람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꼿꼿한 자세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쓰러진 사람을 흔들어 보더니 곧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길 한복판으로 나가 교통정리를 했고,또 다른 이는 119구조대를 불렀다.
넘어진 사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킨 탓이라 했다. 주위에 있던 의로운 시민들의 신속한 조치 덕분에 한목숨이 살아난 것이었다.
나도 몇 년 전에 심근경색이 왔다. 다행히 가슴의 통증과 왼팔로 내려오는 저림을 허투루 보지 않고 곧바로 대학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받았다. 스텐트 시술을 받고 일주일 동안 경과를 살핀 후에 퇴원했다. 의사는 심장 혈관이 막혔다면서, 대사증후군이 원인일 수 있으니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하라고 했다.
처음 몇 달간은 좋아하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십 년 전에 담배를 끊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걷거나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다. 휴일에는 앞산 허리의 야트막한 자락길을 걸었다. 아내는 하얀 쌀밥을 콩이 섞인 현미밥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일 년 남짓 지났다.
몸무게가 2Kg 정도 빠지면서 콜레스테롤, 지방간 수치와 체질량지수가 정상범위로 들어섰다 얼굴 피부도 투명하게 맑아졌다. 아프기 전보다 몸이 가벼워지자 언덕을 오를 때 숨쉬기가 편해졌다.
사람 마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더니 피하던 술자리에 차츰 합석하게 되었다. 한두 잔 받아 마셔도 아무런 특이 증상이 없었다. 한두 잔이 서너 잔으로 늘더니 한두 병까지 되었다. 기름기가 많다고 먹지 않던 삼겹살, 막창도 꺼리지 않게 되었다. 방심은 게으름으로 이어져 운동량도 줄어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걱정과 잔소리가 늘어갔다.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처방전을 받는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꾸준히 잘했으면 먹지 않아도 될 약을 지금도 아침마다 먹는다. 정기검사를 받을 때마다 수치가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기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꼭지가 바뀐 지 오래지만, 머릿속에서는 넘어지는 장면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도 언제 저렇게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의 천행이나 지난번의 나처럼 운이 계속 좋을 수가 있겠는가. 갑자기 찾아오는 심정지 상황에서 쓰러져 도움을 받지 못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것도 10분 이내에 받지 못하면 어떤 장애나 후유증이 남을지 알 수 없다.
이 무슨 조화인가? 저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벌떡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가든지 아내에게 식단부터 다시 챙기자고 상의를 해야 할 터인데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그것도 혈관에 별로 좋지도 않은 소고기를 구워 먹고 싶어진 것이다. 돌발 상황에 대한 예방보다 결과의 허무함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마구 샘솟았다.
꺼무숙하게 어둑살이 지는데, 저녁 준비하고 있는 아내더러 고기 좀 사오라고 했다. 아내는 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이 한번 쳐다보더니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군돈질을 하지 않으려는 속셈일 게다. 그럼 내가 사 오겠다고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남편 돈으로, 그것도 직접 가서 사오겠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아내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상추도 사 놓은 것이 없는데…….”
“상추도 간 김에 사오면 되지.”
아파트 단지 상가에 들어가 정육 코너로 다가갔다. 손님이 없어 한산하던 차에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소고기 쪽을 기웃거리니까 소리가 더 커졌다. 국거리, 등심을 지나 갈비살이 진열된 앞에 서니 목소리가 날아갈 듯하다. 안경을 고쳐 쓰고 작게 쓰인 라벨 글씨를 읽어보니 꽃갈비 살이다. 팩에 담긴 양을 보니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듯했다. 아내와 같이 푸짐하게 먹으려면 세 팩은 사야 할 것 같았다. 가격과 양을 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집에서 뛰쳐나올 때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도끼에 찍힌 나무둥치처럼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돈이 무슨 소용이며 아끼는 것이 다 무엇이랴 하는 생각이었다. 비싸거나 말거나 넉넉하게 사서 배 터지도록 먹겠노라고 정육점에 들어섰었다. 막상, 비싼 가격표를 확인하고 나니 밥하고 함께 먹으면 두 팩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비집고 들었다. ‘참, 그릇 꼬락서니하고는.’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내에게 고기와 채소를 건네주며 맛있게 구워보라고 했다. 자기 먹으려고는 손이 오그라들어서 평생 사보지 못한 비산 고기를 본 아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프라이팬 채로 식탁에 올려놓고 구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상추에 기름장 찍은 꽃갈비 살을 얹고 마늘, 고추에 된장을 발라 주먹만 한 쌈을 싸서 아내에게 건넸다.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참 잘해준 것도 없는 남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도 별일 아닌 것으로 버럭 고함을 지르지 않았나.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일상이 툭 끊어지면 누가 많이 슬퍼할까. 자식이 생각나고 떠오르는 친구 얼굴도 있지만, 아무래도 아내가 제일 많이 울 것이다. 이런 속내를 꿈에도 눈치 채지 못하는 아내 앞으로 고기를 자꾸 밀어냈다. 난데없는 꽃갈비 살 파티에 싱글벙글하는 아내를 건너다보며 그 몸에 좋다는 소주 한잔을 목구멍 깊숙이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