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들의 결혼 / 염정임
남편이 38년 동안 봉직해 온 대학에서 정년퇴임 하는 날을 앞두고 있다. 기차가 언젠가는 종착역에 닿듯이 그도 강단을 떠날 때가 온 것이다. 먼 남의 일 같기만 하던 은퇴가 눈앞에 닥쳐오니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앞두고 착잡해 한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강단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쓸쓸한 충격일 것이다. 나는 한 평생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형태에 적응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늙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하다. 당장 현실적으로 취할 일은 그가 쓰던 연구실을 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자기 방에 한 후배교수가 놀러 왔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방을 미리 둘러보러 온 것 같다고 한다. 그 방은 햇볕도 잘 들고 우치도 좋아서 누구나 탐낼 만하다는 것이다.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어디론가 옮겨야 하는데, 문제는 집에 있는 그의 서재에는 내 책들이 이미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하루에도 몇 권 씩 보내오는 수필가들의 책들을 꽂아 놓다보니, 내 책장은 점점 빈칸이 없어졌다. 마치 야금야금 남의 땅을 빼앗아 가는 식민시대의 강대국처럼 나는 남편의 책장을 차지 해 왔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그의 영토를 돌려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의 연구실의 한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을 집에 가져온다면 내 책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의 두껍고 무거운 책들에 밀려 나의 얇고 가벼운 책들이 자리할 곳은 어디 일까?
그와 나의 결혼 생활도 40년이 넘었다. 가끔 옛날 사진들을 들춰보면, 그때의 앳된 모습들이 지금과 너무 달라 생소하기만 하다. 결혼사진에서도 그는 입을 앙다물고 무언가 고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와 나는 다른 접이 많다. 그는 자기를 절제하는 힘이 강하고 일분일초도 아끼면 자기 일에 몰두한다. 나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매사에 느슨한 편이다. 그는 여름 산을 좋아하고 나는 봄의 산을 좋아한다. 집에서 그는 항상 창문을 열고, 나는 항상 창문을 닫는다. 나는 여행하기를 좋아하고,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접도 있다. 남해의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난 그와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공유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어렸을 때의 꿈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는 그의 편지를 받고 내 마음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었다.
세 아이들이 각각 가정을 이루고 떠난 우리 집은 언제나 적막이 감돈다. 그와 나 사이에는 팽팽하게 조율된 현악기의 줄 같은 긴장감도 없고, 일일연속극처럼 다음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설렘도 없다. 젊었을 때의 갈등도, 열정도 사라지고, 우리 부부는 오누이 같은 연민과 연대감으로 동거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그와 내가 같이 보내는 시간은 식사 때의 한 시간 남짓, 그리고 TV 뉴스를 보는 한 두 시간 정도이다. 젊어서 아이들을 기를 때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안달을 했다. 이제 나의 시간, 나의 공간을 얻었지만 기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없어져 무기력하기만 하다.
어느 날부터 그의 책들이 한 보따리씩 집으로 옮겨져 왔다. 내 책들은 마치 새색시처럼 조신하게 한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의 책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이제 그의 책들과 나의 책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 몸을 비비며 같은 공간을 나누고 있다.
내 책들은 책장을 펼치면 인생, 눈물, 기쁨, 구름, 나무, 성찰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띈다. 그의 책들을 흔들면 경제, 성장, 소비, 같은 말들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경제학용어와 그래프와 숫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가 그리는 그래프와 내가 추구하는 문자언어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영원히 만날 수 없이 평행선을 그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나는 관여할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이 있다. 산이 내려와서 호수와 만나는 시간, 풀꽃과 새들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 시간에는 그의 책들과 나의 책들 가운데서는 찰스 램이 걸어 나와 서로 같은 모국어로 담론을 펼칠지도 모른다. 새뮤얼슨과 릴케가, 힉스와 서정주가 시대와 언어를 초월해 그들을 사로잡았던 이상과 영감에 대해 교감을 나눌 것이다.
한 손으로 책장을 빨리 넘기면 갈매기가 날 때처럼 책갈피는 포물선을 그린다. 그리고 팔락팔락 책장 넘어 가는 소리는 보이지 않는 땅을 향하여 날아가려는 작가들의 숨소리처럼 들린다.
그와 나의 책들은 서로 너무나도 낯설고 이질적이라 처음에는 찬 공기만 감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서로 화합했을 것이다. 신부와 신랑이 합방하듯이 사로가 다름을 경이롭게 여기며 뜨거운 호흡을 나누었을 것이다.
앤 패디먼이하는 젊은 작가는 그녀의 책,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책들을 결혼시키니 비로소 그들의 결혼생활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우리 집 책들도 이제 결혼을 했으니 우리도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여자의 손톱, 그리고 꽃 / 염정임
손톱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피부와는 다른 게, 속이 아른아른 비쳐 보이는 플라스틱 같기도 하고, 소의 뿔이나 거북이의 등껍질을 얇게 저며 놓은 것도 같다. 지문이라는 비밀스러운 부호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거나, 손가락 끝에 달린 조그만 창문 같아 보인다. 우리는 신체의 어떤 부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일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모래시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 손톱과 머리카락이다. 날이 갈수록 눈도 침침해지고 기억력은 흐려지는 나이에도 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어린 아이들의 신체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무언가 나에게 생명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는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지만, 요즈음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그림을 그려 장식한다. 손톱 장식이 유행이라, 여기저기에 네일아트 숍이란 곳이 생기고, 그곳에서 손톱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손톱만으로는 너무 좁아 얇은 막을 끼우기도 한다.
꽃들이 그 색과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원하듯이 여성들은 화장이나, 손톱장식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나타내고 싶어 한다. 위급한 순간에는 호신용이나 무기처럼 쓰기 위해서일까,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그들의 방패나 창에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하듯이, 그들의 손톱에 꽃도 그리고 무지개도 그린다.
천경자의 그림에서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가 담배를 물고 자줏빛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미당은 손톱에 생기는 둥근 반월을 떠오르는 흰 달로 이미지화하고 있고,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여자의 손톱을 은행 알로 비유하고 있다. 영화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한국의 여자 귀신들은 거의 모두 손톱과 머리를 기르고 있다. 객지의 빈 집에서 홀로 자는 선비 앞에 나타난 여자 귀신, 그것은 선비의 억눌린 욕망이 투영된 존재가 아닐까? 생머리에 손톱을 기른 여인은 현대에서도 섹시한 이미지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져 손톱을 자른다. 나의 습관 중의 하나는 손톱이 조금이라도 긴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손톱 끝에 흰 선이 조금씩 넓어지면 자르기 시작한다. 목욕 후에 물기를 머금어 다소 말랑말랑해진 손톱을 자르는 시간을 나는 즐긴다. 가만히 보면 부드러운 피부가 변해서 손톱이 되는 것은 참 신기하다. 갖 태어난 아기의 손톱은 부드러웠다. 살갗과 별 차이가 없다. 그 말랑말랑한 피부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연두색 떡잎이 자라면서 색깔도 짙어지고 잎도 두꺼워지는 것처럼 아기가 자라면서 손톱도 점점 단단해진다.
온돌방에서 한 무릎을 세우고 손톱이 잘려 나가는 경쾌한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바쁘게 보대꼈던 심신이 평안을 얻는 기분이다. 마치 잘려 나가는 각질 부분이 내가 보낸 시간 중 일이 꼬이던 때이거나, 삶에서 부정적이었던 부분처럼, 마치 내 삶을 재정비라도 하듯 잘라낸다.
또깍, 또깍, 손톱깎이 소리는 마치 나무를 전지하는 가위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내 몸속으로 수액이 흐르고, 온몸이 초록 잎으로 덮인 나무가 되어, 웃자란 가지들이 잘려나가는 듯한 청량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 몸이 식물성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내가 햇빛이 비치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나, 샤워를 하며 물세례를 받는 순간 꽃들처럼 생기를 되찾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은 고양이처럼 교활하고, 늑대처럼 사납고, 돼지처럼 탐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얻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사는 순간은 우리 몸의 식물성이 우리의 감정을 지배할 때일 것이다. 기도하는 시간이나, 음악을 들을 때에도 식물적인 정서가 활동하는 시간인 것 같다. 식물이 가진 그 고요함과 예지, 그리고 멀리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평화스러울지 모른다.
현대에는 컴퓨터나, 휴대폰 등 많은 시간을 손가락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최근에 새로 나온 아이패드는 손가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그래서 손톱은 우리 몸을 세상과 연결하며 소통하게 하는 우리 몸의 창문과도 같다.
여성은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를 통해서 그들의 환상과 열정을 나타내길 원한다. 손톱은 그들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꽃과 같다. 이제 열 개의 꽃잎은 어둠 속의 섬광처럼 그들의 꿈을 향하여 미지의 세계를 두드린다.
숨은 그림 찾기 / 염정임
나에게 있어서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일상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듣는 사물들과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의 의식이나 기억 속에 숨어서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희미한 그림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가끔 잡지나 신문에 보면 “숨은 그림 찾기”란 난이 나온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집과 사람들이 있는 바탕그림에 숨겨진 조그만 그림을 찾는 게임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 속에 물고기도 숨어 있고, 기와지붕 골 사이에는 촛불도 켜져 있다. 여인의 치마 주름살을 잘 살펴보면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삶의 갈피갈피에 숨어 있는 보석처럼 귀한 그림들, 나는 이들을 찾아내어 나와 함께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사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그림들로 미만해 있는 경이로운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는 일상의 사막에도 우물이 있고, 허물어져가는 빈 집 어딘가에 보물지도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때로는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 그림 때문에 많은 날들을 안절부절 못하며 보낼 때도 있다.
숨은 그림을 잘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탕그림을 잘 살펴 보아냐 한다. 그러나 밑그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히 스쳐볼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윤곽을 포착할 수도 있으리라. 때로는 텅 비어 있어 그림의 배경으로만 보이는 빈 여백이 커다란 숨은 그림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잔잔한 물처럼 맑고 고요할 때, 깊숙이 숨어 있던 그림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낸다. 내가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아무 그림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범상하게 지나치던 돌멩이 하나가 어느 날 빛을 받아 음영을 만들면서 굴곡 있는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사랑의 눈으로 볼 때 숨어 있는 그림들도 그들의 비밀을 다소곳이 열어 보이는 것을 수시로 깨닫는다.
나는 내 삶이란 바탕 그림이 이왕이면 격조가 있고 색체가 아름다웠으면 한다. 수묵의 임리(淋漓)가 절묘한 한 한 폭의 동양화이어도 좋겠고 보기에도 즐거운 기호와 간결하고 선명한 선으로 이루어진 추상화여도 좋겠다.
혹시나 하늘을 나는 염소와 날개가 달린 괘종시계 또는 바이올린을 켜는 수탉이 있는 샤갈의 그림처럼 숨 막히도록 환상적인 그림이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숨은 그림을 찾아내어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역시 고달픈 작업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 순간은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고독과 자유를 향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때 시공은 무한한 우주를 향해서 열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근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떨며 나는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마치 꼬마전구에 불이 켜지듯 문득 스치는 상념을 붙들고 나는 원고지를 펼친다.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하얀 원고지를 한자 한자 메워가며 나는 백설의 능선을 묵묵히 종주하는 외로운 알피니스트를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글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쓰고 지우고 또 고쳐 쓰기를 계속한다. 나는 숨은 그림을 너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자제한다. 되도록 너울을 씌운 듯 은은한 색체로 두드러지지 않게 나타내려고 애쓴다.
나는 가능하다면 상징이 풍부하고 함축성이 있는 유연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 글 속에 숨어 있는 그림들을 즐겨 찾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들이 이 “숨은 그림 찾기”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을 미리 숨겨두려는 하나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같이 어리석고 붓끝이 둔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바람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연목구어緣木求魚)만큼이나 힘든 일이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딘가, 높다란 나뭇가지 속 반짝이는 잎들 사이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를 숨겨두었으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수필-숨은 그림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
봄을 맞이하는 산 / 염정임
겨우내 산을 찾지 못했다. 잡다한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어딘가에 와 있을 싱그러운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긴 했지만 3월의 마지막 날이라 어쩌면 나비소식, 제비소식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산으로 오르면서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은 억새풀들을 모로 눕히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차고 매운바람이 아니라, 그 속에는 잠자는 대지를 흔들어 깨우려는 듯한 부드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바람은 나에게도 불어와 머리칼이건 옷깃이건 마구 휘날려 놓고 달아났다. 마치 나를 깨어나게 하려는 듯, 모든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듯…….
능선에 올라서니 반대편 계곡으로부터 검은 구름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진눈깨비 같은 차가운 것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면서 눈송이는 점점 커져서 꽃잎처럼 금방 녹아 없어져갔다. 나는 잠시 수많은 벚꽃 잎이 떨어져버리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어릴 때 진해에서 본 그 벚꽃 천지, 알싸한 향기…….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일까. 나는 자연의 돌변한 모습에 어지러워 자꾸만 헛발길을 내딛고, 멀미하듯 무언지 몽롱한 기분이 되어갔다. 그렇다. 그건 수천 수만의 흰 꽃송이였다. 흰 안개꽃, 싸리꽃, 벚곷……. 산은 조용히 겨울을 보내며, 눈꽃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일시에 산은 겨울산으로 변한 것 같았다. 가지마다 조금씩 눈이 쌓이고 건너편 산등성이도 희끗희끗 변해갔다. 봄이 모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땅 밑에서 한창 물을 길어 올리던 나무뿌리. 기지개를 켜던 작은 짐승들도 놀라서 모든 생명의 몸짓을 유보한 듯 산은 조용하기만 하다. 하산할수록 조금씩 눈발이 뜸해지더니 어느 틈에 눈은 멎어 있다.
숲을 벗어나 큰 길로 나오니, 비온 뒤처럼 땅은 젖어 있고 어느 틈에 햇살이 비치고 있다. 계곡에서는 물소리도 활기차게 들린다. 말없이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이지만 지난 겨울 동안 추위와 싸우면서 얼마나 인내하며 존재하기 위해 몸부림쳐왔을까.
이 산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벌레들, 날짐승들, 이들 모두는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살아남았으리라.
오래 전에 읽은 미우라 아야코의 자서전이 생각난다. 그녀는 젊은 시절을 척추 카리에스로 7년 동안 기브스 베드에 누워서 지냈다.
겨울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방에 날아온 파리 한 마리를 보고, 추운 아사히가와의 겨울을 견디며 살아남은 그 파리에게서 봄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폐병을 앓던 그의 애인도 이 파리처럼 가까스로 겨울을 넘겼다고 생각하며 눈물짓던 장면이 있었다.
그녀의 애인은 결국 그 봄에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후에 죽은 애인을 닮은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그 남자는 그녀가 결혼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5년 동안을 기다려주었다.
결혼 후에도 몸이 약한 부부는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산다. 어떤 날은 둘 다 너무 기력이 쇠진하여 나란히 누워서 하루를 보낸다 했다.
그녀는 지금 노년임에도 꿋꿋하게 강연하고 글 쓰며, 암과 투병하며 보낸다는 소식을 어디서 읽었던 것 같다.
모진 추위와 눈보라를 이겨낸 이 산에 사는 생물들은 지난겨울 동안 더욱 강인해졌을 것이다. 이제 봄을 맞이하여 분주히 생명의 율동을 시작하리라. 먹이를 찾으러 다니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기르고…….
산의 공기는 맑고 청량하기만 하다.
문득 까치소리가 나서 올려다보니, 마른 나뭇가지 끝에 부부인 듯한 까치 한 쌍이 날개를 파닥이며 가지 위로 날아오르며 우짖고 있다. 그 모습은 정말 생명의 환희와 사랑의 기쁨으로 약동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고통의 겨울을 이겨낸 승리의 날갯짓이었다.
아버지가 짓는 집 / 염정임
아버지는 평생에 세 채의 집을 지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마산의 언덕 동네에 지은 집은 안방과 건넌방 외에 뒷방도 있었는데, 뒷방은 방바닥에 전기 코일을 깔아 난방을 해결한 실험적인 방이었다.
연구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신 셈이다. 그리고 마루가 깔린 조그만 응접실도 만드셨다.
아버지는 집짓기를 좋아햐셨다. 틈만 나면 종이에 네모를 그리고 그 옆에 다른 네모를 덧붙이며 평면도를 그리곤 하셨다. 내 방은 어디에 있어요? 하면 네모 한 칸을 옆에 붙여 그리며 여기가 너희들 공부방이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듯 줄을 긋고 자우고, 다시 반듯하게 네모를 그리셨다.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는 날은 상량식을 한다고 떡을 하고 동네 사람들을 부르며 잔치를 벌였다. 집 짓는 터에는 언제나 큰 솥에다 아교를 끓였는데, 해초 냄새와 시멘트 냄새가 섞인 퀴퀴한 냄새가 황토 흙이 쌓인 마당에 감돌고 있었다. 대패질하는 목수 옆에는 나무 향이 그윽한 톱밥과 함께 얇게 민 나무껍질들이 쌓여갔다. 미장이 아저씨는 솜씨 좋게 시멘트를 이겨 방바닥을 평평하게 바르고, 목욕탕에는 푸른색 타일을 붙였다.
한 채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기에 그 현장에는 기대와 희망과 풋풋한 생명감이 같이 한다. 노동이 주는 활력과 집의 얼개를 이룰 재목들이 갖고 있는 견실함을 아버지는 사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던 땅에서 무질서와 혼란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한 채의 덩실한 꽃으로 피는 그 아름다운 질서를 즐기신 것이리라.
집이 다 되어 이사를 하는 날, 온돌방 바닥에는 들기름 냄새가 향긋하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외할머니는 떡시루를 앞에 놓고, 새 집을 가져다 줄 복을 위해 두 손을 모우시곤 했다. 마루에 서기만 해도 멀리 마산 앞바다가 보이는 그 집에서 우리 형제들은 제비 둥지 속의 새끼들처럼 아버지 어머니 보호 속에서 잘도 자랐다. 아버지가 지은 둥지 속에서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키운 것이다.
그 후 아버지는 작장을 부산으로 옮기시고 삼 년 후에 다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아이들을 서울에 있는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북아현동 집은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자리잡은 집이었는데, 크지는 않았지만 중정(中庭)도 있고 벽난로도 있는 멋쟁이 양옥집이었다.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사방에 장미꽃을 심고 연못을 파고 등나무 그늘도 만드셨다. 서울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그때가 아버지에게는 제일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상급학교 입학시험에 척척 붙어 남의 부러움을 샀고, 책임을 맡은 회사의 경영도 잘 되어 국가 표창가지 받으셨다. 그 집에서 나와 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결혼하고 친정을 떠났다.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에게는 힘이었고 돌아갈 푸근한 고향이었다.
그 이후에 아버지는 제지회사를 세워, 큰 기계를 들이고 공장도 새로 지었다. 회사는 잘 운영이 되었으나 10년이 지난 아버지의 회갑 되던 해에 부도가 나서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오일 쇼크에 따른 불경기와 새로 도입한 기계 설비가 실패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많은 정신적 고통 속에 아버지는 시골에다 다시 조그만 집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모눈종이에 설계도를 그리고 방 두 칸과 거실이 있는 지붕이 나지막한 벽돌집을 지으셨다.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고 텃밭을 만들며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셨다.
아침의 이슬과 저녁달을 벗삼고 이웃의 촌로들과 어울렸다. 아버지의 시골집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색색가지의 꽃이 피고 졌다. 영산홍, 등꽃, 작약, 능소화, 그 사이를 춤추던 호랑나비들……. 우리 육 남매의 어린아이들은 방학 때면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개울에서 피라미도 잡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쌓아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는 노쇠하여 그 집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몇 년 전 그 집을 정리하고 집 관리가 용이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자식들은 모두 따로 둥지를 틀고 자기 새끼들 키우느라 바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년의 적막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신다.
요즈음 아버지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바둑 두시는 일이다. 친구와 기원에서 만나 바둑을 두며 세월을 보내신다. 때때로 친구와 서로 바둑알을 들고 내 집, 네 집하며 다투기도 하는 것 같다. 친구와 안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TV에서 바둑 채널을 보고 계신다. 흑색과 백색의 집들이 지어졌다 허물어졌다 하는 것을 지켜보시낟.
어느 날은 TV를 보다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드신다. 아버지는 꿈속에서 집을 지으시는지도 모른다. 흰 바둑돌로 빽빽하게…….
오늘도 아버지는 TV를 켜 놓은 채 잠이 드셨다. 아마 아버지는 꿈속에서 가로 세로 열아홉 줄의 모눈 위에다 새 집을 설계하고 계실 게다.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도 올리고 목수와 미장공들을 지휘하며 아담한 집을 짓고 계실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는 집을 짓고 나면 꼭 잘못된 곳이 한두 군데씩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아버지가 꿈속에서 지으시는 집은 아무 후회가 없을 그런 집일 것이다. 아버지의 삶처럼 하려하지는 않지만, 네 귀퉁이 반듯하고 앉아도 서도 넉넉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집일 것이다.
평생을 성실하고 겸허하게 사신 아버지! 너무 큰 집은 아버지 분에 넘친다며 언제나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집을 좋아하셨다.
아버지의 꿈속에서 우리 육 남매는 어린아이들로 돌아가 마당을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아버지의 등 뒤에 숨기도 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따가운 세상 볕을 가려주고, 우리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에게까지 서늘한 영혼의 푸르름을 그 핏줄 속에 흘려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