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아내가 서울 친정에 다니러 간 지 13일이 된다. 서울에 볼일도 있고 또 근래 건강이 안 좋으신 친정 아버님도 뵈러 갔다. 예전에는 딸이나 아들이 집에 함께 있었는데, 혼자서 집을 지키기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 같다.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예사처럼 아내를 불러보나 조용하기만 하고, 항상 저녁이 차려져 기다리던 식탁 위도 말끔하다. 어두워지니 집안이 고요하다 못해 조그만 바스락 소리에도 놀라게 된다.
침실에 들어가니 횅하니 침대가 유난히 넓어 보인다. 방문을 닫고 잠그기까지 했다. 공연히 무언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어린애 마음이 된다. 잠도 깊이 못 들고 자다 깨기를 한다. 누웠다가 일어설 때 어릿어릿하니 어지럼증도 나타나고. 아마도 마음이 불안정한 것 같다.
이렇게 며칠을 지나며 그간 아내가 있던 자리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차츰 적응돼가는 것을 보며 새삼 옛말처럼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느낀다. 또 한편으론 이럴 때를 대비해서 혼자서도 지내는 훈련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지금은 일시적이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에는 아내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다, 문득 책에서 읽은 고대 희랍인의 말이 떠오른다. 지혜란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를 알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이런 생각의 전환이 어쩌면 자유로움에 이르게 할 수도 있겠고 나하고 비약을 해본다.
오늘 저녁은 외출해서 혼자 식사를 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옆에 있지만, 문득 그들과 함께다는 생각을 해봤다. 단지 서로 대화가 없고 모르는 이들이라는 것일 뿐. 밤에도 나 혼자 자는 것이 아니라 집들 벽에 가려져서 안보일 뿐 주변에 많은 이들이 함께 자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하늘에서 집 속을 투명하게 내려다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보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