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점엔 조그만 기차역 있다 검은 자갈돌 밟고 철도원 아버지 걸어 오신다 철길 가에 맨드라미 맨드라미 있었다 어디서 얼룩 수탉 울었다 병점엔 떡집 있었다 우리 어머니 날 배고 입덧 심할 때 병점 떡집서 떡 한 점 떼어먹었다 머리에 인 콩 한 자루 내려놓고 또 한 점 베어먹었다 내 살은 병점떡 한 점이다 병점은 내 살점이다 병점 철길 가에 맨드라미는 나다 내 언니다 내 동생이다 새마을 특급 열차가 지나갈 때 꾀죄죄한 맨드라미 깜짝 놀라 자빠졌다 지금 병점엔 떡집 없다 우리 언니는 죽었고 수원, 오산, 삼남으로 가는 길은 여기서 헤어져 끝없이 갔다
족보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버젓이 존재했고 행세했다. 그런데 지금, 많은 경우 족보는 있어도 없다. 내 관계의 네트워크는 가족관계증명서로 축소되었다. 공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처지다. 나를 기억하는 이는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시대의 족보는 이제 ‘내 안’에만 있다. 그것은 나와 함께 쓰였다가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확인한다. 내 의미는 무엇일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슬프고 외로운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자기 족보를 혼자서 써 내려가고 혼자서 읽어본다. 당신이 아니라고, 나는 그런 기록 따위 없이 이미 충만하다고 대답하시기 전에 이 시를 읽어드리고 싶다.
시인은 경기 병점에 살았다. 아버지는 철도원이었다. 사실 그대로다. 이것은 한 편의 시이기 전에 우리 시대 외로운 족보 이야기이다. 병점의 떡과 맨드라미와 언니와 동생과 길 모두 한 사람의 혈관 속에 개인 역사로 살아남아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내 핏줄을 꽉 채우고 있는 이 위대한 기록.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너무 적어져, 이제 나만이 나의 유일한 목격자이고 마지막 친구인 듯한 세상이다. 당신의 병점은 어디였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