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우체국 연인 / 구 활
통영에 간다.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동양의 나포리라 부른다. 등산로를 따라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통영이 품고 있는 섬들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태양이 중천에 떠있는 빛 밝은 날의 바다색깔은 너무 맑고 푸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작은 방 하나 얻어 한두 달쯤 살고 싶어진다.
통영은 예향(藝鄕)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된 곳이다. 연극인 유치진, 시인 유치환, 시인 김상옥, 소설가 김용익,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화가 전혁림, 음악가 정윤주, 나전칠기 명장 김봉룡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고향은 이곳이 아니지만 통영에서 몇 년 머물며 작품을 남긴 예술가도 더러 있다. 이중섭은 부산 시대와 서귀포 시대를 청산하고 이곳에서 이 년간 머물렀다. 그 때 ‘흰소’ ‘황소’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등을 그렸다. 또 시인 백석은 이곳에서 애틋한 연애 시 몇 편 남긴 것이 지금까지 통영의 자랑거리로 꼽히고 있다.
오늘은 청마문학관을 거쳐 동피랑 벽화마을에 들렀다가 전혁림 미술관에 가서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화가의 그림세계를 살펴보려 한다. 이 프로그램은 관광공사 산하 대경문화발전연구회(회장․강인호 계명대 교수)가 기획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팸 투어이다.
청마의 시는 교과서에 실린 ‘깃발’부터 읽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배들로부터 시인의 생애 중에 있었던 사소한 연애 담을 너무 많이 들은 데다 그의 시가 연정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허기야 시의 주제가 ‘사랑’아니면 맛이 없는 것이지만 타인의 연애에는 괜히 재를 뿌리고 싶은 나의 삐뚤어진 심사가 다분히 작용했으리라.
그래서 이번 통영 길엔 청마의 내면을 꼼꼼히 챙겨 보리라 마음먹었다. 청마가 평생의 연인이었던 정운 이영도 시인을 만난 것이 38세 때인 1945년 이었다.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와 가사 교사로 만난 둘은 첫눈에 빠져 들어 서로가 애욕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청마는 부인이 마련해 준 작업실인 영산장에서 애달픈 편지를 써서 중앙동 우체국으로 걸어 나가 연인에게 부쳤다. 죽을 때까지 5,000통이 넘었다.
청마는 유부남이었고 이영도는 딸 하나를 둔 홀로 사는 여인이었다. 둘 다 가슴만 타고 마음만 부글거렸지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아 넘지를 못했다. 매일 편지를 부치러 가는 청마는 우체국 부근에서 부업으로 수예점을 열고 있는 이영도를 유리창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 주위의 이목이 두려워 만나지 못했다. 맛있는 과일을 눈앞에 두고 한 입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이나 무엇이 다르랴.
그래서 쓴 시는 ‘그리움’같은 것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인도의 금욕주의자 간디도 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영국 해군 제독의 딸인 미라라는 여성이었다. 간디가 56세 때 33세인 미라가 찾아와 문하생이 된다. 간디가 미라에게 보낸 애절한 편지 350통이 공개되긴 했지만 그들 둘 사이엔 육체관계는 없었다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 자체가 의문이다.
간디가 그러하듯 청마의 연애에도 육체가 개입되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5,000통의 연애편지를 쓴 청마가 밋밋한 영혼에다 대고 “날 어쩌란 말이냐”고 매일매일 고함을 지르며 우체통 구멍에 불이 나도록 편지를 밀어 넣었을까. 저승 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부터 물어 봐야겠다.
청마가 숨지기 얼마 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행복’이란 절창의 시를 썼다. 그는 60세 때인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영도는 청마에게 받은 편지를 사후 한 달 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서간집을 펴냈다. 그녀는 ‘돈벌이 속’이란 비난이 쏟아지자 “내가 서간집을 내지 않으면 다른 여자가 먼저 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3년 뒤 반희정이란 여인이 58년부터 63년까지 5년 동안 청마로부터 받은 편지로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이란 책을 펴냈다.
진짜 낚시꾼은 낚싯대 하나로 고기를 낚는다. 구성지게 비가 내리는 날 청마문학관을 나서며 청마의 낚싯대 숫자를 세어 보았다. 하나 둘(엇둘) 하나 둘(엇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