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닥을 찾아서 / 정성화
빨래거리는 강으로 가기 위한 핑계였다. 강으로 가는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로 이어져 있었다. 하얀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어린 탱자가 가시를 피해가며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은 게 더 큰 이유였다.
빨래 방망이를 헹구어 다 해 놓은 빨래위에 얹고 내 고무신을 씻어 햇살이 드는 돌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는 동네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는 강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발이 푹 꺼졌다.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내 발이 강바닥을 놓쳐버렸다. 아이들의 물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강바닥을 어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물속에서 억지로 눈을 떴다. 강물 속은 엷은 연둣빛이었으나, 움푹 파여진 강바닥은 나를 향해 거무스름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얼른 손바닥으로 강바닥을 힘껏 떠밀었다. 그 반작용 때문인지 내 몸이 다시 떠올랐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큰물이 지나간 뒤에 엉켜버린 수초의 꼴을 하고 강가로 다시 걸어 나왔을 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햇살에 바짝 마른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고무신을 보니 와락 눈물이 났다. 내 발가락도 얼마나 놀랐던지 하얗게 질린 채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열 살 때의 그 아찔했던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된 것은 수필 때문이었다. 수필이란, 소금물에 담가둔 바지락이 해감을 뱉어내듯 그렇게 저절로 내 몸 속에서 빠져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단한 조개껍질을 들어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물로 칼칼하게 씻어 갈무리해야 하는 조개의 속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수필을 쓰면서 갑자기 발아래가 푹 꺼지는 느낌, 물속에 잠긴 채 어디론가 끝없이 떠내려가고 있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수필집을 내는 일은 겁도 없이 강물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강바닥에 언제 처박히고 말지, 물살에 의해 어느 강기슭으로 떠내려갈지 모를 일이었지만, 일단 나의 바닥을 내 발과 내 눈, 아니 나의 온몸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간간이 나를 엄습해 오던 수필에 대한 두려움을 그 강물에 얼마쯤 씻어보고도 싶었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강바닥을 바라보았을 때 나에게 벗어나는 길을 일러주던 강바닥, 수필집을 낸다는 것은 그 강바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