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팔아 외롬 사서 - 변영로(1898∼1961)

꿈 팔아 외롬 사서
산골에 사쟀더니 
뭇새 그 음성 본을 뜨고 
갖은 꽃 그 모습 자아내니 
이슬, 풀, 그 옷자락 그립다네.

꿈 팔아 외롬 사서 
바닷가에 늙쟀더니 
물결의 수없는 발 몰려들매 
하늘과 먼 돛과 모래밭은 
서로 짠 듯 온갖 추억 들추인다

꿈과 외롬 사이 태어나서 
외롬과 꿈 사이 숨 지나니 
별이 하늘에 박힌 듯이 
달이 허공에 달리 듯이 
꿈과 외롬의 두 틈 사이 
잠자코 말없이 살으리라.


변영로 시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논개’와 ‘술’을 기억한다. 맞다. 변영로 시인은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이라는 시 ‘논개’를 쓴 시인이다. 그리고 주선(酒仙)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술을 즐겨 마시던 시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면 섭섭하다. 변영로는 생각보다 매력이 무궁무진하다. 우선, 변영로는 박목월 시인이 가장 좋아하던 시인이었다. ‘목월(木月)’이라는 필명도 변영로의 호인 ‘수주(樹州)’에서 ‘나무 목’ 부분을 따온 것이다. 박목월뿐 아니라 다른 청록파 시인들도 변영로 시인이 참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초창기 한국 문단에서 활동한 사람 중에는 일본 유학생 출신이 많았다. 해외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변영로는 특별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서울 토박이에 구한말의 명문 집안 출신이면서, 일본 유학으로 시작하지 않고 이 땅에서 공부한 사람이었다. 거의 자력으로 영어를 습득하되 그 수준은 영시를 창작할 정도였다. 나아가 그가 쓰는 작품은 투철한 민족정신과 아름다운 서정을 동시에 갖추었다. 투철하면 서정적이기 쉽지 않고, 서정적이면 투철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변영로의 시문은 천재적이었다. 이 천재의 작품이 논개 하나일 수는 없어 오늘은 다른 작품을 소개한다. 꿈같은 사람을 잊으려고 도피했는데 새도 꽃도 방해만 한다는 시다. 꿈과 외로움 사이에 태어나 죽는다니, 시인의 운명을 타고난 수주 변영로 자신을 말하는 듯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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