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의 여인 / 존 버거
존 버거(John Peter Berger, 1926년 11월 5일 ~ 2017년 1월 2일)는 영국의 비평가, 소설가이자 화가이다. 그의 소설 《G.》는 1972년 부커 상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BBC에서 방영된 미술비평 텔레비전 시리즈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의 작가이자 진행자
런던 옥스퍼드 광장. 구십 년대의 어느 하루.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마 마흔다섯쯤 되었을까. 여인은 슈퍼마켓에서 몰래 빼낸 듯한 쇼핑 수레에 소지품을 싣고 천천히 도로를 따라 가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실려 있는 유모차를 내려다보듯, 고개를 숙인 채 수레를 밀었다. 수레 속의 소지품은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둘렀는데 그 위로 또 털모자를 썼다. 러시아 말로 샤프카라 불리는 모자였다. 털이 듬성듬성 빠진 모자였다. 누빈 윗도리에 바지, 그 위로 흙빛의 인조털 코트를 걸쳐 입고 있는 여인은, 멀리서 보면 마치 에스키모 같았다. 신발만은 에스키모와 달리 미국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한동안 지내셨던 핼럼가(街) 근처 뉴캐번디시 거리의 쓰레기통에서 여인이 주운 것이었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새로운 설비가 들어섰다. 승객이 앉아서 기다리던 벤치들을 없애고 대신 비스듬히 서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일종의 횟대 모양의 버팀대를 설치한 것이다. 노숙자들이 더 이상 벤치에 누워 잠들 수 없도록 한 탁월한 구성이었다. 여인은 이제 밤이면 역의 아스팔트에 두꺼운 판지를 깔고 옷을 입은 채 잠이 든다. 어머니도 그러셨지만, 밤이면 발이 부어오르기 때문에 신발 끈은 느슨하게 풀어두어야 했다.
한낮이다. 옥스퍼드 광장 너머 보행자 구역에는 비둘기들이 수백 마리씩 모여 있다. 샤프카를 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비둘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날아오르면서 여인 쪽으로 몰려든다. 여인은 모티머가(街)의 한 식당에서 얻어 온 묵은 빵을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내더니 잘게 부수어 비둘기들을 향해 뿌려 주었다.
비둘기들이 여인의 팔위로 날아올라 앉고 어떤 놈들은 머리 위에서 맴돌며 날았는데 대부분은 땅에 떨어진 빵 조각을 쪼아대고 있었다. 여인은 때때로 무심한 듯 부스러기 빵 조각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곤 했다.
어렸을 적, 집 뒤뜰엔 새들이 멱을 감을 수 있게 돌확이 놓여 있던 기억이 난다. 혹독히 추웠던 어느 겨울, 당시 지금의 저 여인 나이 또래였을 어머니는 매일 자작나무 사이로 내린 눈을 헤치고 뒤뜰로 나가, 돌확의 꽁꽁 언 물 위에 빵 조각을 놓아 두셨다. 마테를링크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 역시 새들은 죽은 이들이 전하는 소식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었다.
여인은 새 한 미리를 손에 올려놓더니, 머리를 흔들고 팔꿈치로 쳐내면서 다른 새들을 쫓았다. 여인이 가슴께로 올려 안은 그 새는, 털이 군데군데 빠지고 탁구공보다 좀 더 작은 둥근 머리는 털이 반쯤 벗겨져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빵 부스러기를 주었으나 받아먹지 않았다. 여인이 다른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뒤직이며 찾았다. 그것은 우유가 조금 담긴 아기 젖병이었다. 비둘기의 입을 벌리더니 부리 속으로 몇 방울을 떨어뜨려 넣었다.
날마다 옥스퍼드 광장으로 오기 전, 여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 대머리 비둘기의 젖병을 준비했고, 다른 비둘기들에게 빵 부스러기 모이를 준 후엔 어김없이 이 대머리에게 우유를 먹였다.
옥스퍼드가(街)에 쇼핑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샤프카를 쓴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노숙자 여인이 그 대머리 새에게 말했다. 글쎄, 두꺼운 벽 너머에 숨겨져 있는 것을 저들이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풍요한 정원을 꼭 보고 싶어 한다면 보도록 내버려 두지 뭐.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잔에 담긴 꽃 한 묶음 / 존 버거
괜찮을 거라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전에도 종종 그랬듯 마치 내게 무슨 신비한 것이 있기라도 한 양, 또 동시에 내가 바보이기라도 한 양 나를 바라보았다.
마르셀은 거의 여든의 나이였다.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인생의 삼분의 일 정도는 행복했을 것이다.
해마다 넉 달은 소와 함께 알파주(알프스 지방의 산간 목초지-역자)에서 보냈다. 인생의 삼분의 일을 해발 천칠백 미터 고도에서 보낸 것이다. 철벽 같은 산의 장막에 둘러싸여 그는 평화를 누렸다. 내가 바보처럼 말하는 그 행복 말이다.
산에서는 개 두 마리와 암소 마흔 마리 정도, 그리고 수소 한 마리와 함께 살았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을 사람들 소식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즐겨 물었다. 마치 사람들이 엊저녁 텔레비전 연속극 내용을 묻는 것처럼 그렇게 묻곤 했다.
그의 진정한 삶은 그 산 위에 있었다. 오두막이 자리한 평평한 바위턱을 스쳐 지나가는 낮과 밤, 계절과 햇수들의 그 끝없는 흐름 위에, 어김없고 하릴없는 일상을 띄우면서, 또 치즈를 만들면서.
바위턱에서는 번갯불이 가까이에서 흩어졌고, 마치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 다리 아치가 내려다보이듯 무지개가 내려다 보였다.
산 위에 조금만 있어 보면 외롭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발가벗고 살기 때문에. 발가벗은 사람은 또 다른 차원의 동반자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물론 마르셀이 옷을 벗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밤에도 옷을 입은 채로 잔다. 그럼에도 알파주에서 혼자 한 주 두 주 지내다 보면, 영혼은 그 윗도리를 벗기 시작하고 이윽고 알몸이 되면서,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의 눈에서 그것이 읽힌다.
영혼은 그렇다 쳐도, 가축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늘 있었다. 두 마리 개가 소들의 이름을 죄다 알고 있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소가 길을 잃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곳 산에서는 개연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나무숲이 지금 막 걸음을 멈춘 것처럼 여겨질 때가있다. 은하수가 마치 모기장처럼 가깝게 보일 때도 있다. 어느 8월 아침에는 우유 짜는 헛간에서 똥 치울 때 쓰는 외바퀴차의 손잡이가 얼어 버리기도 한다.
갈라지고 닳고 마디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마르셀의 손은 아주 따뜻했다. 굳은 살갗 밑에 예민함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쓰이지 않게 된 옛 단어들 같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함께 신년을 맞은 후 차로 그의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때였다. 그때 벌써 소들을 데리고 알파주로 올라갈 6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렴 그리 될 거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마치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바위 앞에 선 사람이 그러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머리를 저었다.
지난 6월, 마르셀의 산으로 다시 가 보았다. 풀 뜯는 소도, 종소리도, 개도 없었다. 이름 없는 들꽃들만 무성했다. 무심히 꽃을 꺾기 시작했다. 이런 고도에서는 같은 꽃이라도 들판에서보다 훨씬 선명한 색깔로 핀다. 근처 봉우리들엔 갈가마귀들이 날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페러글라이더가 스무 개 정도 떠 있다. 상승기류를 타고서, 뛰어내린 산모퉁이보다 더욱 높이 올라간다. 이즈음 그 자리는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통한다.
마르셀의 빈 오두막 문을 밀었다. 기차의 칸막이 방만한 방이 둘 있다. 나는 속으로 번져 가는 감정을 누르며, 유리잔에 물을 채우고, 한 묶음 손에 들고 간 꽃을 꽃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하루가 저물 때면 거기 앉아 나는 커피를, 마르셀은 우유를 마시곤 했었다. 그가 가 버리고 없는 지금, 그 의자에 다시 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소떼들의 종소리 뒤로 고함치며 욕지거리하며 다가오는 마르셀의 목소리가 저 정적 속에서 들려 올 때까지, 나는 거기 가만히, 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