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 김억(1896∼?)
혼자서 능라도의 물가 둔덕에 누웠노라면
흰 물결은 물소리와 함께 굽이굽이 흘러내리며,
저 멀리 맑은 하늘의 끝없는 저곳에는
흰 구름이 고요도 하게 무리무리 떠돌아라.
물결과 같이 자취도 없이 스러지는 맘,
구름과 같이 한가도 하게 떠도는 생각.
그러면 나는 이르노니,
내 세상은 물이런가, 구름이런가. ‘봄’ 하면 떠오르는 이들 중에 시인 김억이 있다. 그는 현대시의 시작, 그러니까 계절로 비유하자면 이른 봄쯤에 서 있는 시인이다. 김억이 유명한 이유는 그가 최초의 번역시집과 최초의 창작시집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최초’ 없이는 이후도 없는 법. 김억의 행적에 대해 논란도 있지만 그를 빼고 우리 문학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도 시인은 유난히 봄을 좋아했다. 그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봄은 간다’도 그렇고 ‘봄바람’이라든가 ‘오다 가다’도 그렇고, 알려진 많은 시들이 봄의 시편이다. 그런데 그가 봄을 유독 좋아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억은 시가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시란 문자로 써 있고 눈으로 읽는 것인데, 김억은 자기 시를 시보다는 내 노래라고 불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래 중에서도 특히 ‘서럽고도 고운’ 것을 추구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김억과 봄은 좋은 짝꿍이 된다. 서러운 심정, 고운 풍광, 흥얼거리는 노래. 이 세 가지를 합쳐놓기에 봄만큼 잘 어울리는 시절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시도 그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아지랑이 같은 아련함이 참 곱게도 표현되어 있다. 1920년대 평양에 살고 있는 친구이자 소설가인 김동인에게 보내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신선놀음을 하는 듯 지나치게 한가로워 보이지만 저 여유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봄처럼 봄의 여유도 그저 찰나에 스쳐갈 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