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속의 별무늬 / 박영신

 

 

 

눈이 내린다.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눈 위에 무수한 발자국들이 찍혀있다. 나도 내 발자국을 들여다본다. 아메바처럼 생긴 가운데에는 일정하게 꼬부라진 무늬들이 마치 아지랑이 같다. 가만히 보니 발자국마다 같은 것이 없다. 무늬들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르다. 제각각의 무늬를 가지고 있는 발자국을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자국이 있다.


다소 난해한 무늬들이 한 폭의 추상화 같다. 줄기를 뻗어간 끝에는 별이 도드라져서 건빵처럼 튀어나왔다. 그 끝에 하트 문양의 엑스트라가 반짝인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누굴까. 눈에 덮여 순결해진 지구의 한쪽에 아름다운 무늬를 던진 이가.


발자국은 꿈이다. 일일이 들여다볼 수 없지만 어딘가에 찍혀있다. 바쁜 일상에서는 잊은 듯 보이지난 무심코 내려다본 곳에 있다. 발자국을 거꾸로 따라가면 살아온 날의 어느 풍경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발자국은 아득한 곳으로 멀어지고 궁극의 곳으로 떠나간다. 발자국이 찍힌 곳이다.


발자국은 빗소리다. 흔적 없이 사라져도 가슴을 오래도록 움직이기 때문이디. 고개를 묻지 않아도 잔잔하게 묻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기억의 꽃무늬 속으로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걸어오고 있다. 그는 아주 짧게 스쳐간 인연이었다. 그 시간의 냄새가 훅, 몰아쳐온다. 그의 부드러운 눈길과 손짓과 걸음걸이와 체취가 느껴진다.


발자국은 싸리비다. 흙냄새를 가장 먼저 맡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싸리비에 환한 흙냄새, 싸리비가 쓸고 간 길, 싸리비가 서 있던 헛간, 싸리비가 쓸어주던 소잔등, 어디나 부드럽고 향기로운 흙과 함께 있다.


발자국은 나와 너를 구별하지 않는 자유를 헤엄친다. 발자국들은 서로 서로 포개어져서 자타일체(自他一體)를 이룬다.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도를 이룬 사람의 가장 낮은 세상살이다. 순결한 밭에서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외로움이 있다.


고운 모래가 드리운 해안을 거닐어 보아라. 아무도 가 본적 없는 눈밭을 거닐어 보아라. 세상의 모든 발자국들이 보인다. 사람, 사람마다의 얼굴이 다르듯이 발자국들은 다르다. 발자국만 보아도 그 사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발자국의 표정은 각각 다르다. 사람의 체중에 실린 업()의 파동까지 미묘한 움직임이 발자국에는 실려 있다.

 

먼 훗날을 위해 내 발자국에 무엇인가를 디자인해본다. 공룡들처럼 바위에 새겨둘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는 남아 있을 수 있는, 어쩌면 아무런 무늬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늬 없는 무늬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떤 이의 가슴에 남아 있다가 바람처럼 흔적을 지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떠리, 오늘은 그냥 사람들의 발자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염없이 들여다보고만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