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길/신금재
그녀가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남편도 달리고 있었다.
지난 달 마라톤 대회에서 받은 BJR(Banff Jasper Relay)푸른 티셔츠를 입고서.
수단에서 난민으로 캐나다에 왔다는 그녀는 헬스 클럽 청소원이다.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이를 다 드러내놓고 웃는 그녀를 보면서 지난날 친정어머니가 새로 지어지는 어느 회사 기숙사에서 청소하던 일을 떠올리고 더 따스한 인사를 건네곤하였다.
더불어 수단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을 알고 여러가지 질문을 하던 그녀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에 사시는 할머니가 온실에 농사를 지은 야채를 수확하였으니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남편과 함께 운동을 마치고 헤어져 각자의 길로 떠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할머니댁에서 야채 비빔밥을 나누어 먹고 데크에서 차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던 중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후에 데리러 갈테니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 말씀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후에 데리러 오면 좋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잠시 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교통사고 났어. 빨리 와봐.
남편은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거리에 서있고 우리차는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 서있었다.
앰브런스에 경찰차 그리고 소방차까지
뉴스에서 보던 대형 사고 현장이 거기에 있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다른 차량의 목격자들이 증언을 해주었고 누가 보아도 상대방 과실이라는 걸 터진 에어백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거리는 서쪽 벤프 방향으로 이어지는 글렌모어 트레일 하이웨이이다.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고 벤쿠버로 이어지는 대형 트레일러 이동이 많은 곳이라 늘 조심하는 곳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경찰의 몇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 다리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정도였지만 차는 폐차한다고 하니 혹시라도 하여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돌아서는데 상대방 운전수의 보호자인 듯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녀였다.
헬스 클럽에서 청소하던 그 여자.
딸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운전석에서 내리는 그녀의 딸이 보였는데 세상에나, 이십 센티는 족히 되는 하이힐을 신고있었다.
그러니 붉은 신호등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밟아도 차는 그대로 돌진하였던 것이다.
차량 앞부분은 많이 파손되었고 하얀 얼굴로 질식한 듯 에어백이 터진 것이 보여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고있었다.
그후로 헬스클럽에 가도 예전 처럼 그녀에게 따스한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아들의 조언대로 우리는 변호사를 고용하였고, 그와의 약속대로 그녀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줄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작년말 한해를 마무리하는 대림절에 고해성사를 보면서 그녀에게 사과하려는 용기를 얻었다.
다행히도 보험회사와 잘 해결이 되었다.
그동안 정말 미안하였다고, 그러나 나의 뜻은 아니었다고.
서로 안아주고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나누면서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머리를 질끈 동여메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 내리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니 남편이 달렸던 위핑월(Weeping Wall)계곡 산길이 떠오른다.
아이스휠드 파크웨이(Icefield Parkway) 한가운데를 오르는 길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마치 산이 눈물흘리는 듯 작은 폭포수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달리기를 하면서 눈물젖은 산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굽이굽이 돌아온 그의 산길을 곱씹어 보았을까.
대한민국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여의고 세 동생 보살피던 지난날을 돌아보았을까.
뷰포인트(View Point)지점에 서서 절벽을 바라보면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한계령 노래 처럼 저 산은 우리에게 내려가라고, 내려가서 부딪히는 일상의 삶을 껴안으라고.
수단에서 난민으로 온 그녀
늘 청소하던 모습만 보다가 땀을 흘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한듯 그녀의 꼭 다문 입술이 반짝거린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의 세월
달리기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참으로 좋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주변경치도 즐기면서 조금만 더 천천히 달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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