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물에 대한 명상/ 정목일
차의 맛, 그 바탕은 물의 맛이다. 좋은 차를 맛보기 위해선 좋은
차를 구해야 하지만, 좋은 찻물이 있어야 한다. 같은 차일지라도
물맛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맑은 물 깨끗한 물을 정화수(井華水)라 한다.
맑음, 순수, 진실을 품고 있다. 정화수는 제의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온갖 부정을 정화하는 작용과 공간을 신성하게 만든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부활과 소생의 힘을 주고 생기를 넘치게 한다.
모든 생명체 구성성분 중 가장 많은 게 물이다. 생명체끼리
교감할 수 있는 건, 물의 기운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은 생명체에게 거룩한 어머니나 다름없다.
찻물은 깊은 산 속의 샘물이 좋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저절로 샘도 맑고 향기로운 법이다. 깊은 산속 울창한 숲과 수풀에
내린 빗물이 나무와 풀뿌리를 적시며 땅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은
물이 정화되고 향기로워진다. 온갖 약초 뿌리와 땅속을 스치는 동안
물은 심오한 맛과 향기를 띠게 된다.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투명하고 담백한 맛이다. 지리산 샘물은 산 높이와 계곡의 깊이만큼
오랜 명상으로 가라앉아 담담하고 정갈한 맛을 보일 뿐이다.
샘물 한 사발로 지리산 만년 명상의 맛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큰 산에는 큰 절이 있기 마련이고, 절마다 샘물을 맛볼 수 있다.
냉수 맛은 잘 분간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절마다 물맛이 다른 것은
산의 높이와 거느리는 장엄과 형세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사찰의 샘물마다 맛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산에서
어떤 식물이 자라느냐에 따라서 또한 토질과 산 높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아닐까. 깊은 산중까지 가서 찻물을 구하지 못하면,
향나무가 있는 샘에 가서 물을 구해오기도 한다.
요즘의 가정에서는 수돗물이나 가게에서 파는 생수를 찻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좋은 차를 구한다고 해도 좋은 찻물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 차보다도 물이 더 귀한 셈이다.
우리 생활주변에선 맑은 물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백자
사발에 맑은 물 한 그릇을 상(床)위에 단정히 올려놓고 새벽마다
그 앞에 꿇어앉아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하늘에 빌며 하루를
열었던 조선의 어머니! 어머니는 정화수 한 그릇을 하늘에
바침으로써 하늘과 교감을 할 수 있었다. 욕심 없는 물 한 사발,
없는 듯 비어 있는 듯 투명한 물 한 사발엔 하늘의 고요가 내려와
평화와 안식과 건강을 주었다. 상위에 놓인 물 한 사발을
보면서 마음속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씻어내고,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보곤 하였다.
물은 순환, 순리, 영원, 겸손을 가르쳐 준다. 정화수를 보고
마시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새 기운으로 활력을 얻는다. 물은 창조,
부활, 정화의 상징성을 갖는다. 물은 액체, 고체, 기체로 변하며
지상, 지하, 천상으로 교류한다. 잠시도 멈추거나 쉬지 않고 흐르면서
생명을 낳고 기른다. 조선시대엔 정화수 한 사발을 상 위에 올려다
놓고 백년가약을 맺기도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정화수를 통해
하늘의 계시와 교감을 얻을 수 있었던 때문이다. 정화수 한
그릇만으로도 진실과 신성의식을 치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맑은 물에 찻잎을 넣어 달여 낸 차 한 잔! 손쉬운 듯하지만, 좋은
물과 좋은 차가 만나는 덴 정성과 마음을 보태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순수, 정화, 영원의 세계와도 맥을 통하는 일이기도 하다.
담담하고 무색무취한 맹물이 차와 함께 어울려 내는 오묘한 맛은
삶의 여운이요, 운치와 신바람으로 정과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차 한 잔으로 산의 만년 명상과 마주 앉게 하고, 산이 지닌 침묵의
말과 신비를 맛으로 짐작하게 하는 일이야 말로 미각의 경지를
초월한 선(禪)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오감을 열고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함께 숨 쉬는 시공간을 맞게 한다.
마음이 맑은 사람만이 좋은 물과 차의 맛을 안다.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하늘과 불순물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맑은 물을 아는 사람이어야 물의 맛과 향기를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도 샘이 있어서 맑은 물을 샘솟게 하는 사람이다.
순수하고 겸허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달이 좋은 날을 택해서 하동 쌍계사 계곡으로 차를
마시러 가보아야겠다. 차인인 K씨를 찾아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꽃이 피고 좋은 벗이 있다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하늘이 맑고
달이 돋으면 더욱 좋으리라. 한 마디 대화조차 없어도 좋지 않으랴.
시나 문학 얘기를 한 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다.
달빛에 대숲이 수런거리고 나무 그림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 잔 차에 달빛이 비치고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마시며
차를 들면 된다. 구름은 유유히 흐르며 산도 잠든다.
차 사발이나 차 마시는 예법 따위도 따질 이유가 없다.
벗과 함께 오래도록 한 하늘 아래 달빛 속에 차를 마시고 있다는
인연과 기적에 대해 감탄할 뿐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런 순간과
자리를 몇 번이나 마련할 수 있을까. 세상일을 제처 두고 이뤄진
이 만남의 완전 일치, 달빛 속의 차 한 잔의 열락을 누가 알 것인가.
맑은 물과 좋은 차의 만남, 산과 물의 만남,
달과 벗과의 만남을 바라보며 말없이 차를 마시는 적막하여
황홀한 이 맛을 누가 알 것인가. 차 한 잔에 하늘의
달빛과 산의 적막이 담기고, 만남의 정과 아름다움이
어울리는 이 순간을 어찌 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