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나는 새 / 류시화
새가 날아와 정원의 나무 위에 앉았습니다. 6월 오후, 나무의 그늘이 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정원의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습니다. 바람은 부드럽고 주위는 평온했습니다. 새가 나뭇가지를 흔드는 기척에 나는 눈을 떴습니다. 깃털이 노랗고 부리는 황금빛이며, 목둘레에 붉은 띠가 있는 신비한 새였습니다.
그러한 새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숲에서도, 길에서도, 서쪽의 툭 트인 들판에서도 그러한 새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지상에서 아무도 말을 건넨 적이 없는 듯한 순결한 새였습니다. 더구나 그 새는 쳐다보는 시선 속에 어떤 알 수 없는 향기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새가 벌레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잇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새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닫혀 있던 어떤 문이 내 앞에서 열리는 듯했습니다. 나는 그 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몸을 떨었습니다. 지상의 것이 아닌 그 아름다움과 신비에, 나는 그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머리가 뜨거울 정도였습니다.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새가 내 곁에 있었으나 나는 그가 곧 날아가 버릴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빛과 그늘이 어른거리는 나뭇가지에서 새는 말없이 나의 욕망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두려움에 떨리는 손을 뻗어 하늘의 열매를 따듯이 새를 움켜잡았습니다. 새는 내 손 안에서 숨 쉬는 것도, 눈 깜박이는 것도 잊은 채 나를 응시했습니다. 새는 이제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새를 소유한 기쁨에 젖어 내 방으로 그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종이로 만든 새장 안에 새를 가두었습니다. 그 새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상의 아무것도 우리에게 영원을 약속해 주지 못합니다. 새와 나는 시간의 자식들, 그리고 내가 만든 새장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밤은 길고 낮은 허무했습니다. 새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러 있어 주기를, 나와 한 존재가 되어 주기를 나는 원했습니다. 밤이면 나는 새장 옆에 앉아 새에게 시를 읽어 주었고, 낮에는 종이 새장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서 태양의 시간들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지혜가 나에게 속삭였습니다. 내가 새를 나의 것으로 소유하는 순간, 새는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새의 본질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잃으면 새의 날갯죽지도, 그 비상하는 힘도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시장에 내던져진 은자隱者와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도 그를 신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만 조롱의 말들을 던질 뿐입니다.
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으로 새를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종이 새장을 부수고 새를 놓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 허공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것만이 새가 영원히 내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무한한 허공이 되어 새로 하여금 그 허공 속을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는 날아갔지만, 내 안을 날고 있습니다. 나는 허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는 나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구속받지 않습니다. 새가 어디에 가서 날개를 접든지 나는 보이지 않는 허공의 두 팔로 그를 껴안고, 새가 어느 나무에 내려앉든지 나는 소리 없는 바람으로 그를 어루만집니다.
자유에 지친 새가 부러진 날개를 하고서 돌아오는 날도 있습니다. 나는 따뜻한 바람을 불어 보내 날개의 상처를 씻어주고, 새에게 치유의 희망을 주기 위해 저녁별 하나를 띄웁니다. 때로 새가 떠나보낸 아픔과 허무로 가슴이 비어오는 것은, 내가 아직도 완전한 허공이 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나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