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 - 손광성
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나는 가끔 혼란에 빠지곤 했다. 분명 다른 꽃인데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화라고 불리는 꽃은 얼마나 많은가. 작약도 개목련도 함박꽃이요, 산에서 자라는 크기가 10미터나 되는 교목에 피는 흰 꽃도 함박꽃이라 불린다. 함경북도에서는 산철쭉을 보고도 함박꽃이라 한다. 그뿐인가, 갈대와 억새도 자주 혼동하여 쓰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은 어떤 시인의 <갈대>라는 시의 일부다.
등성이마다 오르다가 갈대는 피어 키를 덮고 산을 덮고 무엇에 흔들린다. 제 몸이 키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마음이 몸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어쩌자고 귀는 내놓고 흔들리는가.
제목은 <갈대>로 되어 있지만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갈대가 아니라 억새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생긴 잘못이다. 갈대는 북위 40도 이남의 해안가나 호숫가에 나는 여러해살이식물로 이삭이 빗자루처럼 생기고 색은 옅은 갈색이다. 억새는 제주도 서귀포에서부터 함경북도 두만강까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산등성이나 산자락 또는 밭 둔덕 같은 곳에 무더기로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은색으로 하얗게 꽃이 피는 것이 억새다. 억새라는 말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아마도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아닌가 한다. 억새를 '어욱새'라고 했다.
어욱새 속새, 덥거나모 백양 속에 가기 곧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죽어서 쓸쓸히 억새풀 우거진 곳에 가서 묻히고 나면 누가 술을 권하겠는가? 그러니 살아생전에 한 잔 더 받으라는 것이다. 장진주사란 말하자면 권주가가 아니겠는가.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이 유행가를 모른다면 그는 필시 한국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으악새'가 가을에 우는 무슨 조류로 오해받았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그것이 억새의 사투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무슨 새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기게 되었는가 하면, '으악새'란 말 다음에 '슬피 우는'이란 구절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으악새가 운다는 것은 억새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내는 서걱거리는 가을 분위기를 더욱 돋우기 때문에 이런 가사가 나왔지 싶다. 한자어로는 갈대를 노(蘆) 또는 노위(蘆葦) 등 여러 가지로 부른다. 거기에 대해서 억새는 망(芒)이라고 한다. 억새라는 이름은 억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선 뿌리는 땅 속에 단단히 박혀 있어서 여간해서는 뽑히지 않으며, 건조하고 메마른 산등성이나 산불이 났던 공터 같은 곳에서도 억척같이 잘 자란다. 게다가 미끈한 줄기와 활시위처럼 휘어진 잎사귀가 보기 좋다고 만지다가는 금세 살이 베어지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결각(缺刻)이 있기 때문이다. 억새는 가까이서 볼 것이 아니라 멀리 뚝 떼어놓고 볼일이다. 그것도 한 무더기나 두서너 무더기가 아니라 군락을 이룬 것을 볼 때에야 제 맛이 나는 식물이다. 이런 억새밭으로 볼 만한 곳이 몇 군데 있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민둥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경남 함양군의 거망산, 그리고 밀양 표충사 뒤 재약산 사자평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 사자평의 억새밭은 1000여 미터의 고원 지대에 있으며, 그 면적이 120만 평이나 되어 경관이 자못 볼 만하다. 이곳의 억새는 추석을 지나면서 피기 시작해서 양력 10월 10일을 전후해서 절정을 이루는데, 이를 광평추파(廣坪秋波)라 하여 재약산 팔경(八景) 중에서 제일로 친다. 몇 해 전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가을 억새를 보려고 사자평으로 간 적이 있다. 토요일 낮차를 타고 밀양을 거쳐 표충사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사자평 고사리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리하게 밤 산행을 시작한 것은 다음날 아침 해뜰 때의 억새밭의 정경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달밤에 친구와 함께 걷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냇물 소리가 가을 바람을 타고 간간이 올라오고, 길가에 핀 억새꽃이 열사흘 달빛에 하얗게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달과 억새, 그리고 가을 물소리와 친구와의 정담, 그것은 그대로 한 편의 가을 서정시였다. 우리가 해발 1000미터의 고사리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저녁 아홉 시.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방을 얻을 수가 없었다. 등산철이라 손님들이 많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가지고 간 일인용 천막에서 함께 자는 수밖에 없었다. 존 웨인처럼 건장한 내 친구는 눕기 무섭게 코를 골았지만, 바닥은 밤이 깊어갈수록 냉기가 스며들어서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금세 새벽이었다. 겨우 일어나 등성이에 오르니 해는 막 앞산 마루에 고개를 내밀고, 눈앞에 전개된 것은 온통 햇빛에 하얗게 부서지는 억새꽃의 바다였다. 아침 햇빛에 억새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황혼녘의 억새밭도 장관이지만 거무스름한 산 그림자를 배경으로 금빛 아침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며 하얗게 빛나는 억새밭은 더없이 황홀한 정경이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파도치는 저 망망한 구름 바다. 한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눈이 닿는 데까지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막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함께 바라보고 있는 이형(李兄)도 나도 말을 잃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박지원(朴趾源)은 요동벌을 처음 보고 그 자리에서 통곡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바로 그 심정이었다. 좁은 땅덩이에서 억눌렸던 온갖 감정의 응어리들이 탁 트인 끝없는 벌판을 보자 일시에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었다. 장부는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울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함부로 울지 않는 것이고, 한 번 울었다 하면 크게 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에는 장부의 통곡을 받아들일 만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빌린다면, 황해도 장연의 금사벌과 동해가 보이는 금강산 비로봉 두 곳이 그나마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사벌도 비로봉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멀고먼 이국 땅이다. 이제 통곡다운 통곡도 제대로 해 볼 만한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120만 평, 이 드넓은 사자평의 억새밭이 그나마 사나이가 한 번쯤 통곡할 만한 곳이 아닐까?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老後)여.
임영조 시인의 <억새>라는 시의 일부다. 이 가을에도 억새는 비울 것 다 비운 그런 노년의 표정으로 능선에서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내며 서 있을까? 어린 치기도, 덧없는 혈기도 다 버리고 통곡도 다 버리고 성성한 백발로 이제 나도 그 옆에 한 줄기 억새로 섰으면 싶다.― 수필집《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을유문화사, 2001년) ♥ essa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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