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카페 / 이규석
도심 한복판 빌딩 숲속에 의뭉스러운 카페 하나 성업 중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면도로에 붙은 주택의 얼치기 변신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골이 빈 것 아니야? 이런 곳에 카페라니”
주인은 통 크게도 남쪽 벽을 깨서 통창을 냈다. 담장을 허물고, 골목 사이에 둔 앞집 담벼락에다 선사시대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 넣었다. 손바닥만 한 집이 훤해졌다. 늙은 무화과나무 한 그루뿐인 정원에다 거칠거칠한 송판으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둘러 알록달록 페인트를 칠하고, 사립문이랍시고 야트막한 대문도 달았다. 살림집인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마다 올려둔 화분에는 주인을 닮은 앙증맞은 꽃들이 색색으로 피었다. 온갖 정성으로 치장을 했어도 옛날 시골 장터를 찾아온 서커스단 어린 여배우의 서툰 분칠 같았다. 그런데도 넥타이 졸라매고 반듯하게 차려입은 신사들이 그 카페로 부지런히 모여든다.
얼치기 겉을 보면 속은 더 궁금해진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툰 아마추어의 솜씨가 클로즈업되어 다가온다. 거칠게 오간 페인트 붓자국이 선명한 벽에선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스멀거린다. 그 위엔 정체불명의 그림과 자수들이 제멋대로 걸려있다. 투박한 마룻바닥은 발걸음마다 엇박자로 신음을 낸다. 어디서 저리도 엉뚱한 짝을 불러 모았을까. 어깃장을 부리듯 의자와 책상은 철저하게 언밸런스다. 문틀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구해온 빛바랜 소품들이 어지러이 올려져 있다. 마치 도깨비 소굴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축배를 들 듯 커피 잔을 들어올린다.
어느 한가한 오후, 나도 조심스레 카페의 문을 밀었다. 삐~익 하고 문틀이 째지는 소리를 내지르자 문짝 위에 매달린 풍경이 마른 웃음소리로 화답을 한다. 무릎 담요를 덮고 책을 읽던 여주인이 배시시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그녀의 표정은 모나리자를 닮았다. 와서 반갑다는 뜻인지, 아니면 독서삼매경의 열락을 깨 야속하다는 뜻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이다.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던 일행들도 뭔가 모자란 그 카페에 들어서서는 무장해제가 된 듯, 말 보따리를 풀어놓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비대칭이 만든 기묘한 조화가 아닐 수가 없다. 모두가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자마다 한마디씩 말부조를 보태며 일어선다.
“해바라기가 곱긴 해도 이 집엔 아트플라워보다야 살아 있는 들꽃이 더 어울리겠는걸.”
나도 뭔가를 도와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던진 한마디였다. 다음 날, 새벽시장에서 개망초를 사다 꽂았으니 꽃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설핏설핏 백치미가 어른거리는 주인 여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남정네들의 수다가 끊일 줄을 모른다. 누군가 선언을 하듯, 이젠 우리도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내 멋대로 살고 싶다고 소리를 높이자 “맞아요, 저도 그래요. 그녀도 맞장구를 친다. 사는 게 온통 멍에였었나? 무두가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카페 화장실에는 한쪽 눈을 꽃으로 가린 잡지 속 광고 모델 여인이 외눈으로 나를 보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미나리가 살짝 데쳐지듯 나도 덩달아 살짝 맛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