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와 나 / 최민자
구두를 샀다. 빨간 단화다. 강렬한 원색이 낮은 굽을 보완해 주어서인지 처음 신은 단화가 어색하지 않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줄기차게 7센티 굽을 고수했다. 무릎이 아프다고, 발목이 좋지 않다고, 진즉 편한 신발로 갈아탄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하이힐을 고집했다. 젊은 시절부터 습관화되어선지 신발이 낮으면 오히려 불편했다.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 들어와 버린 적도 있다.
구두 굽이 높아지면 숨 쉬는 공기의 맛이 다르다. 턱을 치켜들고 등뼈를 곧추세워 또각또각 걷다 보면 마음 복판에도 철심이 박혀 자세가 한결 당당해진다. 종아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아랫배에 힘이 쏠려 저물어 가는 여자의 곤고한 심신이 일시 탄성을 되찾기도 한다. 쭉쭉빵빵인 젊은 여인들처럼 뭇 남자의 시선을 거느리진 못해도 왜소해진 자존감을 들어 올리는 소도구로 하이힐은 내게 간간이 유효했다.
지지난해인가, 파리에 잠시 머물 기회가 생겼다. 아침마다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고 저녁에는 까르푸에서 산 싸구려 와인을 땄다. 비 내리는 센 강가를 걷고 샹젤리제의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 일이 좋았다. 얼추 팔십은 넘어 보이는 노부인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후들거리는 걸음새로 신호대기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늙음을 빌미로 긴장의 끈을 늦추거나 매무시를 흐트러뜨리려 하지 않는 원조 파리지엔느의 결기가 멋져 보였다.
다음날 나도 여행객 티가 줄줄 흐르는 아웃도어를 벗어던졌다. 키높이 운동화도 밀어 두었다. 살랑거리는 스카프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고서점과 그림엽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골목들을 천천히 헤집고 다녔다. 주눅 들지 않으려고 너무 힘을 주었던가? 발목이 그만 삐그닥, 꺾였다. 발목이 꺾이면서 무릎도 꺾였다.
동행한 친구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케토 뭣인가 하는 관절파스를 붙여 주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수다스런 중년 탤런트의 광고 카피가 아직 나랑은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돌아와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순례했다. 구두 굽이 낮아지고 구두코도 점차 펑퍼짐해졌다. 발목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낯선 도시의 뒷골목에서 우지직 찢겨 나간 내 자존의 인대 하나는 끝내 다시 복구되지 않았다.
한때, 오래 서서 일해야 하는 외국의 간호사들이 주로 신는다는 수입 캐주얼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께 큰 맘 먹고 사 드렸던 그 효도 신발을 우리는 그때 여포신이라 불렀다. 여자이기를 포기한 신발이란 뜻이었다. 뒤늦게 편한 맛을 보기 시작한 내 발가락들이 날렵한 정장 구두에 구겨 넣어질 때마다 뒤꿈치와 발바닥이 합종연횡으로 몽니를 부리며 칭얼거릴 때, 그 뭉툭한 신발 생각이 났다. 친한 척 슬그머니 다가앉은 노경老境, 그 불청객에 무릎을 꿇고 나도 이제 여포신에게 굴종해야 하는가. 착잡했다. 씁쓸했다. 여자의 뒤꿈치와 구두 높이 사이에 어떤 친연성親緣性이 작동하기에 신발 하나에 성 정체성마저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해, 남프랑스의 마르세유 항에 들렀을 때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잡아챈 것은 광장 복판에 놓여 있는 엄청나게 큰 진홍빛 하이힐 모형이었다. 바람 부는 갑판, 흔들리는 잠결 속에서도 거칠고 울룩불룩한 이두박근의 사내들은 항구의 여자처럼 알짱거리는 핑크빛 하이힐을 꿈에 그리며 시퍼런 벼랑과 맞서 싸우고 구멍 난 그물을 당겨 올렸을 것이다. 신데렐라에게 구두가 왕자의 옆자리 티켓이었고 샤론 스톤에게 구두가 섹시 아이템이었듯이, 되똑 들어 올린 여자의 발꿈치에는 삶의 하중을 떠받치는 마법의 지렛대 하나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욕망의 바코드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산악인 오은선의 키는 155센티미터, 그가 오른 안나푸르나의 정상은 8,091미터였다. 그는 왜 자기 키보다 522배나 높은 산을 그토록 목숨 걸고 올랐던 것일까.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 대한 동경으로, 짓눌린 꿈을 향한 도발의지로, 어떤 여자는 히말라야에 오르고 어떤 여자는 코를 높이고 또 다른 여자는 무시무시한 킬힐을 신고 밤거리를 아슬아슬 누비기도 한다. 한 치라도 더 높이, 더 위로 솟으려고 제각기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산다. 콧대도 못 높이고 히말라야에도 못 간 나는 구두 굽이나 겨우 높이며 살았다. 이제 그마저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살아 보니 인생은 잡았다 놓치는 것, 주었다 빼앗는 것,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시식 쪼그라져 내려앉는 거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사십 년 동안 내 인생은 기껏 7센티미터 높아졌다가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