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이는 강

-신설포의 추억-

 

완행열차만 멈추는 시골 작은 역, 사창이라는 곳에서 한참을 걸어 이르른 곳에 신설포라는 나루가 있다.

대개 기차 시간에 맞춰 강을 건너는 손님들이기에 배의 운행도 거기에 맞춰지기 마련이지만, 특별히 급한 일이 있으면 건너편 강나루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면 배가 사람을 태우러 건너오는 인정의 나루이기도 했다.

처음엔 삐걱삐걱 노를 젓는 배였다. 그래서 비가 와서 강물이 많이 불었거나 물살이 조금이라도 세어지면 물살 약한 이 편 강가의 위쪽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흐르는 물살을 이용해 건너편으로 엇비슷이 가로질러 건너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모터를 단 통통선으로 바뀌자 사정이 조금 좋아졌다. 웬만한 물살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마력 되지 않는 작은 배인지라 물살이 드세 지면 배는 여전히 파도의 높이만큼 치솟았다 내려왔고, 그렇게 한 번 떠올랐다 내려오게 되면 대개는 통통대던 기관이 멈춰져버려 배는 흐름을 이기지 못한 채 이내 저만치 아래쪽으로 떠내려가곤 했다.

배가 한 번 튀어 오를 때마다 일어난 물보라가 나들이 길에 곱게 차려입은 옷에 튀기면 울상을 짓는 모습이 참 안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어린 나는 그런 모습이 또한 재미있어 소리를 죽여가며 쿡쿡 웃곤 했었다.

기차에서 내려 포구를 향할 때 나는 마구 내달리곤 했었다. 나루터로 가는 길목에 산언덕이 있는데 그곳에 오르면 기차가 저 멀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내 이모의 댕기머리 같은 연기를 몽실몽실 피우며 장난스럽게 도망치는 기차가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이미 저만치 앞서 나루터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뱃손님들을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내달리곤 하던 시절, 그렇게 나루를 향하는 나는 알 수 없는 풍요로움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마음이 되었었고, 사십여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그것들은 늘 포근하고 정겨운 한 폭 그림이 되어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강은 왠지 어머니를 느끼게 한다. 배에서 내려 강둑을 한참 내려가다 보면 비릿한 강 내음을 함뿍 먹음은 강바람이 소금기를 눈 가득이 채워 넣는다. 그러면 내 눈에선 기다리기라도 했었다는 듯 가득 눈물이 고였다.

 

사실 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어머니인데 어린 마음은 왜 강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체취를 모르고 자란 나였기에 강 내음에서라도 어머니 냄새를 느끼고 싶었을까?

바다가 아닌 강, 어머니는 항상 강이 되어 내 가슴속을 흐르고 계셨다.

어머니는 강물소리로 내 귀에 이명처럼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그렇게 얼마동안 강둑을 내달리다 보면 저만치서 어머니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늘 까만 무명치마에 하얀 옥양목 저고리 차림이셨다. 언제부턴가 다리가 불편하셔서 먼길을 걷기가 힘드셨다는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는 지팡이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나무 막대를 짚고 다니셨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저만치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거리를 좁히고자 내가 다가가면 가까워져야 할텐데도 늘 그만큼의 거리에 계시던 어머니.그러다가 어머니!’하고 부르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점점 점점 멀어져 가 버리고 어머니가 계시던 곳쯤에선 갈대만이 서로 몸을 비비며 사그락거리고 있곤 했다.

해가 어두워지기 전에 저수지를 옆으로 한 긴 신작로를 따라 산을 하나 넘어야만 외할머니,외할아버지가 계시는 집에 이를 수 있었다. 더 늦으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무서움증이 다리를 붙들기 시작하고, 그러면 마음은 더 급해져 걸음을 빨리 하는데 자꾸만 유유히 흐르고 있을 강이련만 내 뒤를 따라오는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는 횟수가 늘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얻은 홧병이 폐렴을 몰고 와 폐결핵으로 깊어지고, 혹여 자식에게 전염이라도 될까봐 그토록 모질게 나의 접근을 막으셨다는 어머니. 내 위의 형이었던 큰 아이를 잃었고, 이제 하나 있는 자식인데 얼마나 안아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으셨을까만 당신이 숨쉬어서 깨끗치 못한 공기라도 되어 행여 내게로 갈까봐 처소를 엄격하게 격리하셨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그래서 나쁜 것, 병 될만한 것은 공기까지라도 다 당신이 마셔 버리고, 대신 그 가슴에서 걸러져 정갈하게 정수된 맑은 가슴 강물로만 내게로 흘러가게 하셨던 것이다.

철이 없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나였지만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의 염원이 그렇게 내게로 흘러 나도 모르게 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었나 보다.

강가에 서면 나는 어머니를 볼 수 있다. 강물 흐르는 소리는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고, 강물에선 땀 베인 어머니의 적삼에서 남직한 어머니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나이가 들어가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 옅어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내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처럼 쉬임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음인가 보다.

노를 저어 건너던 강, 통통선을 타고 건너던 강, 내 유년에 건너던 강들이 그리움으로 남는 건 순전히 연어의 모천회귀를 닮은 내 별난 모태회귀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보이는 강을 내 가슴속에 언제까지고 흐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내 그리움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내가 하나였다는 그 사실을 더더욱 확연히 하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은 유난히 오래도록 안타깝고 소중히 생각되는 것처럼 내 나이가 떠나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한참이나 지나버렸기에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오는 것일까. 어머니보다 더 많이 산다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라도 이번 여름엔 어떻게든 그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머니가 보이는 그 강가에 다시 서 보고 싶다. 어머니는 이젠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 오실까?

어머니가 보이는 강가에 서면 나는 어쩌면 어린 날로 돌아가 그 때도 울지 못했던 그 울음을 그 때보다도 더 섧게 울어버릴 것만 같다. (1996.9. 수필공원 '96. 가을호>

 

<創作餘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본성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많은 변화를 체험하면서 켜켜이 껴있는 삶의 떼들을 의식케 되고 그러노라면 어린 날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이 그리워지고, 그 고향동산의 추억이 그리워지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포용하고 있는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것이리라.

허나 그런 어머니가 아니 계신 지금에야 그리움만 키울 수밖에 없잖은가. 그리움은 어쩌면 딱 한 사람만의 신도를 가진 종교인지도 모른다. 거기 어머니를 향하여 촛불을 켜고 심성을 밝히면서 눈을 닦고 귀도 닦는 수행의 길, 사람이란 어머니라는 저마다의 은밀한 종교 하나씩을 감추고 사는 자라지 않는 아이들일 것만 같다. 어머니가 보이는 강-신설포의 추억-은 그런 내 마음의 어설픈 표현의 몸짓이다. 아직 철이 덜 든 나는 언제쯤이나 어머니를 벗어버리고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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