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듣다 / 최민자  

 

 

 

딱새 한 마리가 동네의 아침을 깨우듯 유자 한 알이 온 방의 평온을 흔든다. 방문을 열 때마다 훅 덮치는 향기. 도발적이다. 아니, 전투적이다. 존재의 외피를 뚫고 나온 것들에게는 존재의 내벽을 뚫고 들어가는 힘도 있는 것일까. 절박한 목숨의 전언 같은 것이 내 안 어딘가를 그윽하게 두드린다.

맛보다는 향기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유자는 레몬과 닮은 꼴이다. 레몬 향기가 금관 악기면 유자 향기는 목관악기다. 레몬 향기가 바이올린의 고음이면 유자 향기는 비올라의 중음이다. 매끈한 피부에 길쭉한 몸매, 청순하고 새치름한 레몬이 도회 아가씨라면 우툴두툴하고 우루뭉술한 유자는 투박하고 속정 깊은 남도 아낙을 닮았다.

스러지는 것들에게는 소멸의 공포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유자는 요 며칠 더더욱 맹렬하게 향기를 뿜어낸다. 여기가 어디냐고, 왜 나를 데려다 내박쳐 두느냐고, 항변이라도 하는 것 같다. 사는 일이 제 안의 생명력이 탕진될 때까지 시간적 공간적으로 존재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라면 냄새란 제 발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형상을 버리고 휘발하는 질료 안에는 형태나 빛깔, 맛만으로는 어필할 수 없는 소통의 욕구 같은 것이 탑재되어 있다.

유자가 차츰 말을 잃어 간다. 우글쭈글한 피부에 검버섯도 눈에 띈다. 몸피가 줄어 탱자만 해진 열매를 손바닥 안에 감싸 쥐고 큼큼거려 본다. 온몸이 말라비틀어져 가면서까지 끈질기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와 같은 집중력으로도 견고한 물성 속에 숨어 있는 속말이 통역되지 않는다. 무언가 절절한, 존재론적 발성을 하고 있는 듯은 한데 알 듯 모를 듯 해독이 되지 않는다. 잘못했다. 진즉 스킨십이라도 자주 해 주었으면 말랑하게 속내를 누그러뜨리며 흉금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르는데, 결연하게 입을 앙다문 채 그대로 선정禪定에 들어 버릴 것 같다.

피고 지는 일에, 나고 죽는 일에 의미나 목적을 부여하려 하는 것, 스치고 지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이면을 뒤집으며 까탈을 부리는 것, 글을 쓰면서 생긴 고질적 악습이다. 새소리의 청아함에 취하는 대신 그것이 울음일까 노래일까를 따지고, 보도블럭 틈새기의 풀꽃을 만나면 뭘 그리 기를 쓰고 피려는지를 묻는다. 생각의 간섭과 개입으로 순간의 안복眼福을 놓치고 과부하가 걸린 뇌 때문에 머릿속은 늘 묵적지근하다. 자연도 인간도 별 뜻 없이 살다 갈 뿐 모든 게 우연이고 맹목일지 모르는데, 잡스가 가도 애플이 굴러가듯 신은 진즉 잠들었고 지구는 관성으로 돌고 있을지 모르는데 왜 나는 구태여 유자 한 알이 발산하는 파동마저 무심히 넘기지 못하는 걸까.

"궁금하면 열어 봐. 뭐라 하시나."

누군가 그런 처방을 했다. 피아노 소리의 비밀이 궁금해 피아노를 해체했다는 사내 이야기를 덧대며 나잇값도 못하는 내 호기심을 질책했다. 맞아, 최고의 단서는 자백이라잖아. 밝혀지지 않은 이유나 진실이 저 안 깊숙이 숨어 있을지 몰라. 주술에 걸린 듯 과도를 찾아 유자의 중허리를 삐걱삐걱 칼금을 넣는 엽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리가 존재해 본 적 없는 복강腹腔, 새카맣게 타들어 간 고요 앞에서 나는 흡, 하고 숨을 멈추었다. 미세전류가 찌르르, 온몸을 관통했다. 먹물 스민 닥종이처럼 뒤틀리고 더뎅이 진 벽체 사이로 곰팡이를 뒤집어쓴 신의 첩자들이 하나 둘 발각되어 끌려 나왔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태초의 신탁神託을 골수 깊이 아로새긴 스물세 알의 씨앗들이었다.

그제야 들렸다. 아니 보였다. 녹슬고 우그러진 심벌즈 사이에서 금빛으로 챙챙 울려 퍼지는 씨앗들의 함성이.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을 꿈꾸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도 같은 유자의 노래가 천둥처럼 내 안에 울려 퍼졌다.

 

가라 꿈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

저기 저 산비탈 언덕까지

바람결 부드럽고 감미로운

내 고향 향기가 날리는 그곳.

 

입 없는 것들이 온몸으로 내뿜는 절박한 아우성, 인간들은 그것을 향기라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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