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대 / 구활
‘늘뫼’는 친구의 아호다. 그는 ‘항상 산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그렇게 작호한 것이라 했다. 호를 갖기 전에 내가 ‘우수(又睡)’라는 별호를 지어 준 적이 있다. 그는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3시쯤에 일어나 진지들에게 시 한 편씩을 배달하다 보니 잠이 모자랐다. 함께 산행에 나설 땐 차만 타면 졸았다. 그래서 또 ‘우(又)’ 자와 잠 ‘수(睡)’ 자를 엮어 ‘또 잔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그 호가 맘에 들지 않아 ‘늘뫼’로 바꿨나 보다.
그는 시 배달을 마치면 바로 산행에 나선다.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한겨울에는 상하 우모복으로 중무장하고 나선다. 동네 앞산에 올라 해뜨기를 기다린다. 그의 버릇은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와작와작 씹어 먹는 것이다.
그는 새벽 산행 파트너로 나를 끌어넣으려고 만날 때마다 아침 해 먹기의 장점을 설명했다.
“햄버그 먹듯 해를 씹어 먹으면 위장이 튼튼해진단다. 시험 삼아 한번 해봐.”
그는 장거리 산행을 떠나는 날은 출발장소 부근의 국밥집에 미리 나와 술국 안주로 막걸리 한 통을 마신다. “해장술이 해로울 텐데”라고 말하면 “아침 해를 씹는 대신에 마시는 술은 몸에 이로워”하고 능청을 떨었다.
내가 새벽 산행을 거절한 이유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새벽잠이 없었더라면 목사가 됐을 것이다. 어머니의 소원은 자식이 목사가 되는 것이어서 기도 제목이 ‘아들 목사, 아들 목사!’였다. 나는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에 나가느니 차라리 천당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일찌감치 목사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미션 스쿨에 다닌 탓으로 또래 친구들은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산천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지어 주신 그 은혜를 칭송하는 풍취(風醉) 찬양대원이 되고 말았다.
늘뫼는 산악인이자 스쿠버 다이버이며 자생란 키우는 난 전문가(蘭人)다. 재주와 능력이 탁월하기도 하지만 호주가로 더 명성이 높다. 격식을 차려 가며 즐길 때도 있지만 때론 너무 집착하여 술의 진경을 터득하느라 앉아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릴 때가 아주 많다.
그가 술과의 전쟁을 벌일 때마다 시인 조지훈 선생이 정한 주당 18단계 중 급수가 어디쯤인지를 가늠해 본다. 술과 함께 유유자적하거나 주도 삼매에 빠져 있는 주선(酒仙)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고 주도를 수련 중인 초급 유단자 경지에는 오른 것 같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체육대회 운동장에서 대취와 미취의 경계선에 있는 딱 한 잔이 어느 잔인지 몰랐다. 그걸 홀딱 마셔 버려 옷을 입은 채로 실례를 하여 독도보다 더 큰 황색 섬을 양쪽 엉덩이에 그린 적도 있다.
우린 동갑내기였다. 그는 사고뭉치였지만 매력 있는 인간이었다. 그가 저지르고 다닌 행동은 하나같이 해프닝이었다. 악우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할 때였다. 남녀 혼숙인 벽소령 산장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자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휴, 옆에 여자가 없으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가 지껄인 소리가 미처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다 듣게 됐다. 키들키들.
나의 산문집 『바람에 부치는 편지』가 출간되자 의논도 없이 출판기념회를 열겠다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봉투에 적힌 발신자의 이름이 ‘강백(江白)’으로 되어 있었다. 마할리아 잭슨이란 여가수가 부른 <깊은 강(Deep River)>이란 흑인 영가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하얀 강(White River)’이란 뜻의 강백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모임 장소인 식당에 도착하니 ‘구활 선생 출판 기념회’란 사인펜 글씨가 구석자리 벽면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손님이라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강백아, 인사 드려라.” 잘생긴 흰색 진돗개 한 마리가 마루 밑에 앉아 있다가 제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개 이름이 강백이었다. 오! 내 친구, 개새끼.
늘뫼는 술(酒)도, 산(山)도, 난(蘭)도 모두 버리고 떠났다. 아침 해를 향해 달리는 마차를 타고 낮게 흔들리며 ‘스윙 로우(Swing Low, Sweet Cbariot)’를 부르며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벼렸다. 아침 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새벽마다 헛 키스를 해대는 꼴이 너무 가여워 가까이 와서 신나게 입맞춤을 해보라고 그렇게 요르단 강을 건너게(Over the Jordan) 한 것이리라. 임금을 짝사랑하다 미쳐 버린 지귀(志鬼)를 어여삐 여긴 선덕여왕이 금팔찌를 벗어 비렁뱅이 총각의 가슴팍에 얹어 준 것처럼 말이다.
붉은 태양을 과식한 탓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를 열반에 들게 한 원인은 위암이었다. 새벽 해장술을 끊지 못한 까닭도 공복의 쓰린 고통을 알코올의 마취효과로 다스린 것 같다. ‘항상 산에 살고 싶다’는 아호의 뜻은 이뤘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립다.
친구를 묻고 산을 내려오면서 밭두렁에 앉아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아냈다. 달구질할 때 마신 뿌연 막걸리가 맑은 눈물이 되어 두 눈으로 내려 빠지는 것 같았다. 소원이 있다면 그가 저승에서 난장이가 쏘아 올리는 작은 공처럼 아침 해를 동쪽 하늘에 띄워 올렸다가 붉은 놀 속의 저녁 해를 잠자리채로 거둬들이는 그런 소임을 맡았으면 좋겠다. 남은 생애 동안에 문득 문득 네가 보고 싶으면 나는 어쩌나. 아, 인생은 하루 해 보다 짧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