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 황미연

 

 

 

온몸이 젖어든다.

애끓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소낙비를 맞은 것 같다. 칠 년 동안을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기다렸는데 폭염이 쏟아진들 어찌 절절하지 않겠는가. 비록 며칠을 살다가는 짧은 생이지만 찬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산 시내 한 모퉁이에는 장구를 세워놓고 그 위에 북을 얹어 놓은 특이한 모양의 기념비가 하나 놓여 있다. 동편제의 대표 전수자인 명창 박록주를 기리기 위해서다. 한적한 곳이라 일부러 찾아오거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표지판 하나 없다. 판소리계의 한 획을 그었다던 명창의 흔적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아직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동네 이름이 관심리이다.

선산에서 출생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재능이 있었다. 소리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한 토막씩 불러보던 것이 명창이 되기에 이르렀다. 열두 살에 협률사의 단체 공연을 보고 난 후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 선생을 거치면서 소리를 배우던 중 열여덟 살에 동편제 거목인 송만갑 선생을 만나 소리꾼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서편제가 여성적인 소리라면 동편제는 남성적인 소리인데 그녀의 소리는 모두가 집중할 정도로 우렁찼다. 타고나기도 남성적인 면이 많았지만 남자 명창한테 소리를 배운 영향도 컸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깨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독특한 소리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동편제는 소리를 끌고 가다가 한 번씩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 록주는 무거운 돌덩이를 들었다가 쾅, 하고 내려놓듯 모지락스러운 소리를 했다. 발림보다 목소리로 장면을 구사해내며 이야기를 하듯 놀이를 하듯 청중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50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좋은 소리가 나왔는데 현재 전해오는 판소리의 다섯 마당 중에 흥부가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스승인 송만갑은 혹여 사람들의 인기에 허세가 들기라도 할까 봐 허망한 박수 소리에 속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내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잊지 않았다.

명창이란 한으로 소리를 열고 한으로 소리가 깊어진다고 했던가.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한량인 아버지의 손에 끌려서 잔칫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했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은 아버지가 도박판이나 술집을 드나들면서 다 써버렸다.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는데 어떤 날은 매를 너무 맞아서 팔이 올라가지 않아 춤을 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들병이처럼 내세웠다.

그녀의 소리에는 그 시대 여성들의 아픔이 녹아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는 가난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매를 맞으면서도 희생양이 되어 소리를 팔아가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도박할 돈과 술값도 필요했겠지만 딸을 위해서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을 테다.

록주를 사모했던 김유정의 소설에도 그런 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처자식을 들병이로 내세우고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두드려 패는, 무능력을 큰소리로 무마시키려던 가장들의 슬픈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만약에 지금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참담한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벼랑 끝에 핀 꽃은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전쟁 때 한쪽 눈을 잃었다. 생활이 고통스러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배가 소리로 가득 차서 밥을 못 먹겠다고 할 정도로 소리 공부에 전념했다. 하루에 스무 시간씩 목청을 뽑아 올렸으니 목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음식을 가려서 두 달 동안 참기름만 먹으면서까지 혼신을 다한 결과 진정한 소리꾼이 되었다.

운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이 가득 담긴 인생 백 년이란 가사 한 편을 남긴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누구든 가슴에 슬픔의 덩어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다. 판소리를 좋아했던 대원군도 아들인 고종을 위해 일부러 아무렇게나 행동하여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낮은 곳으로 몸을 던지며 한량 행세를 하지 않았던가. 그녀 아버지도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소리를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명창이 되라고 명이에서 록주로 이름까지 바꿔준 것을 보면 소리에 대한 한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을 권번에 팔아넘긴 것도 가난해서 소리를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라도 가르치고 싶었던 못난 아비의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판소리가 대중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몸에는 흥이라는 유전자가 잠재되어 있어서 소리 한 대목만 듣고 있어도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게 된다. 북장단을 맞추는 고수처럼 추임새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소리꾼과 청중들이 호흡을 맞추며 장단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고유의 정서를 우리답게 느끼기 때문이다. 부채 하나를 들고 일인 다역을 하며 몇 시간 동안 목소리만으로 완창하는 것을 보면 경외심이 일어난다.

그녀와 같은 소리꾼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찌 판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세계유네스코에 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겠는가. 구미시에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새로운 명창이 탄생하여 국악의 맥을 이어간다면 얼마나 흐뭇할 것인가. 백 년도 넘은 광대의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니, 참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소리는 형태가 없기에 마음속에 정신으로 남는다.

공원 한 모퉁이에 있는 배롱나무에서 붉은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니 피를 토하면서 소리를 훔쳤던 명창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란 삶에서 생겨나고 삶이 곧 한이 된다지 않던가. 기념비에 새겨놓은 인생 백년이란 노랫말이 매미 소리를 통해서 한 대목 한 대목 흘러나오는 듯하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