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옷 / 어효선
겨울옷 한 벌, 여름옷 한 벌, 봄가을옷 한 벌, 이렇게 세 벌만 가지면 일 년을 넘길 수 있다. 단벌 신사란 옷 한 벌을 가지고 일 년 내내 입는 사람만이 아니라 갈아입을 제철 옷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한철 옷을 서너 벌씩 걸어 놓고 며칠만큼씩 바꿔 입어서 그게 외상이든 월부이든 꽤 넉넉한 사람으로 보인다.
도시 세 벌만 가진 위인은 남이 보면 그야말로 단벌 신사라기 똑 좋다. 그러나 빛깔이라도 다르면야 또 모르지만 세 벌이 모두 검정이라 여름에 땀을 좀 흘리는 걸 본 이는 ‘아, 이자가 겨울옷을 입고 있구나.’ 하고 가엽게 여겼을 것이고, 겨울에 웅숭거리고 가는 걸 본 이는 ‘아, 저자가 여름옷을 입고 있구나.’ 하고 측은해했을지도 모른다.
이 세 벌이 다 성한 것은 물론 아니다. 위인이 협협하고 넉넉하지 못한 터라 옷 한 벌을 장만하면 밑천을 뽑고서야 벗어버린다. 소맷부리가 해지면 안으로 집어넣어 조금 줄여 입고, 바지 뒷부리가 떨어지면 잘라내고 다시 단을 접어서 이걸 미리 계산하고 새옷은 조금 긴 듯하게 해입는다. 가봉을 입혀보는 사람이 ‘아, 좀 길게 입으시는군요.’ 하고 넘기니 창피할 건 조금도 없다. 이럴 때마다 ‘이러고도 왜 남처럼 잘살지 못할까.’ 하고 거울을 보며 씩 웃는다.
남에게 단벌신사라는 소리는 들을 방정 검은빛이란 참 편리하다. 느닷없이 상가(喪家)에도 갈 수 있고 결혼식에도 갈 수 있다. 옷이 많아서 회색이나 갈색 양복을 입은 친구는 예절도 알아서 행동할 자리에도 뒤로 처진다.
“이 사람아, 그대로 가면 어떤가, 같이 가세.” 하면 으레,
“난 집에 가서 바꿔 입고 갈 테니 먼저들 가게.”한다.
이건 있어서 하는 고생이다.
큰놈이 대학에 든 뒤로 나는 여벌이 생겼다. 단벌신사를 면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우선 봄갈옷을 해야 했고, 여름옷을 해야 했고, 겨울옷을 해야 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입었던 옷을 탈을 했다. 아직도 성한데 빛깔이 어떠니 모양이 어떠니 하고, 새옷이 생기면 헌옷은 소박을 맞게 마련이다. 우연히 놈이 안 입고 걸어둔 옷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만지작거리다가 슬그머니 떼어서 입어보았다. 엔간히 맞는 것 같아 빛깔 아랑곳 않고 입고 나섰것다.
“아니, 이게 웬일이셔요? 갑자기 젊어지셨으니!”
“참 빛깔이 좋아요. 디자인도 스마트하구요!”
“호호호, 갑자기 핸섬해지셨네요! 로맨스 그레이?”
말 많고 민감한 소녀들의 코멘트라 과연 그럴 것도 같아 흐뭇했으니 어찌 생각하면 놀리는 말로도 들려,
“우리 애가 안 입는다고 벗어 놓았길래 입어본 거야, 어색하지 않아?”
하고 얼버무려 넘겼다.
길을 지나면서 거리의 유리창에 비쳐 보이는 모습이 내 눈에도 흉치 않아 그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런데 며칠을 지내니까 옷을 벗고 앉으면 허리깨가 거북하고 누우면 목이 좀 뻐근한 것 같았다.
“웬일일까, 거 이상하다?”
약을 발라도 낫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으로 생긴 것 같은 옷이라, 또 애들이 하도 젊어 보인다고 치켜세우는 바람에 깃고대가 좀 눌리고 바지가 꼭 끼어 좀 거북한 것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참고 입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나마저 소박한다면 멀쩡한 옷을 어쩐다? 할 수 없지, 옷에다 몸을 맞출밖에, 해질 때까진 입어야지. 어허허허…… 이게 다 자식 덕이야. 어허 어허…….’
어효선1925-2004 서울 출생 아동문학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