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 칼라일
일은 언제나 고귀할 뿐만 아니라 신성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아무리 몽매하고 자기의 할 바를 잊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진지하게 일을 한다면 그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영원한 절망은 오직 나태에만 있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저속한 것일지라도, 일은 항상 자연과 교통을 이루는 법이다. 일을 완성하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은 사람을 진리에게로, 즉 다름 아닌 자연의 섭리와 규칙에로 점점 가까이 인도한다.
이 세상 최신의 복음은, 그대의 일을 알고 그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알라.’의 ‘자신’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그대를 괴롭혀왔다. 나는 확신하건대, 그대는 결코 자신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대 자신을 안다는 이 일을 그대가 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지 말라. 그대는 알 수 없는 개체이다. 그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나를 알아라. 그리고 그 일을 헤라클레스와 같이 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나은 계획이 될 것이다.
“일에는 무한한 의의(意義)가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일을 하면 불결한 정글들이 말끔히 개간되고, 그 대신 아름다운 묘판(苗板)이 생기며 웅장한 도시가 선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써 사람 자체가 우선 정글이나 흉하고 불건전한 사막 같은 상태에서 벗어난다. 더할 수 없이 천한 종류의 노동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마음을 잡고 일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그 사람의 전영혼(全靈魂)이 평정(平靜)을 찾아 어떤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생각해보라. 의혹, 욕망, 슬픔, 회한, 분노, 절망 자체- 이들 모두는 지옥의 개들처럼 어느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로 불쌍한 날품팔이의 영혼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가 활달한 용기로 맡은 일에 달려들어 열심히 하면 이것들은 모두 조용해지고 소리를 죽이며 그들이 굴 속으로 움츠러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제 건전한 인간인 것이다. 그의 마음에 내재하는 이 복 받은 노동의 불, 모든 독소를 태워버리며 독한 연기를 빛나고 복된 불꽃으로 만드는 정화(淨化)의 불이 이 아닌가!
크게 보아 운명이 우리를 교화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형태가 없는 혼돈도 일단 회전하게 되면 둥글어지기 시작하여 갈수록 더 둥글어지며, 순전히 중력의 힘으로써 스스로를 여러 개의 둥근 층으로 정비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이제 혼돈이 아니라 둥글고 꽉 짜인 세계가 된다. 지구가 회전을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가 회전하는 동안은, 지구 안의 모든 불평등한 것들, 불규칙적인 것들이 흩어져버리며 모든 불규칙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규칙적인 것으로 변한다.
그대는 그릇 만드는 자의 고패를 본 적이 있는가. 예언자 에제키엘(기원전 6세기경 유대의 예언자)만큼 오래된,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그 숭고한 물건을? 조야한 진흙덩이들이, 단순히 빨리 돎으로써 얼마나 아름다운 둥근 접시로 모습을 이루는가. 그리고 더없이 열심이지만 고패가 없이 순전히 반죽하고 굽기만 하여 접시를(그렇게 되면 이것들은 차라리 형태도 없는 실패작인데) 만들게 되어 있는 도공(陶工)을 상상해 보라.
일하려 들지 않고 펀둥펀둥 지내며 편안히 누워 있으려고만 하는 인간의 영혼을 교화하려고 할 때, 운명은 바로 도공과도 같은 것이다. 게으러고 돌지 않는 인간을 갖고는, 아무리 자애로운 운명이라도 고패 없는 도공처럼, 반죽하고 구워보았자 실패작밖에는 만들 수가 없다. 그에게 아무리 비싼 채색을 하고 도금이나 에나멜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끝내 살패작일 뿐이다. 그는 접시가 되지는 못한다. 접시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못생기고, 휘고, 뒤뚱대며, 모서리가 뒤틀린 모양 없는 실패작- 단순히 에나멜칠을 한 수치스런 그릇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태한 자들은 이 점을 생각해보라.
자기가 할 알을 찾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또 다른 축복은 바라지 않도록 하라, 그에게는 일이 있고 생의 목적이 있다. 그는 그것을 찾아냈고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썩은 진흙 수렁 같은 그의 생활에 고귀한 힘으로 파놓은 수로(水路)처럼, 갈수록 깊어지는 강물처럼, 그것은 얼마나 거침없이 흐르는가. 그 물줄기는 가장 멀리 있는 풀잎의 뿌리로부터 썩은 물을 차츰차츰 쳐내고 맑게 흘러서, 병마가 도사린 수렁이 아니라, 열매가 풍성한 푸른 초원을 이룬다. 그 물 자체와 그것의 가치가 크건 작건, 그 초원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인생은 노동이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신이 그에게 준 힘이 솟아난다. 전능하신 신이 그에게 불어넣어준 신성하고 준엄한 생명의 진수(眞髓)가! 일이 올바르게 시작되면,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고귀한 것- 모든 지식, 자기 지식, 그 밖의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지식? 일하는 데에 유용할 것 같은 지식이면 꼭 잡아두어라. 자연도 그런 지식은 인정하니 그런 것은 받아들여라.
사실, 지식 치고 일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 나머지는 아직 모두 지식이 되기 위한 가정이다. 우리가 실험해 보아서 확정할 때까지는 그것은 학교에서나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구름 속, 이론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이다. “의심(疑心)은 어떤 종류의 것이건, 행동으로써만 풀어질 수 있는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1795-1881) 영국의 수필가, 비평가 ‘수상집’ ‘과거와 현재’ ‘의상철학’ ‘프랑스 혁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