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 윌리엄 서머셋 오옴(W. Somerset Maugham)
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보는 책도 있고, 당장 어떤 지식이 필요해서 보는 책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책은 취미나 교양을 위해서 보는 책이다.
어떤 책은 당신이 학위를 따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생계를 도모하는 데 유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 배를 조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고장 난 자동차를 다시 달리게 해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당신이 보다 더 충실한 생활을 하는 데 이바지하는 그런 책이다.
내가 제일 먼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모든 비평가들이 걸작임을 인정하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오늘에 와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도무지 재미가 없는 게 있다. 시대가 바뀌고 취미가 변한 것이다. 그런 책은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당신 구미에 맞지 않는 한 당신에게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이다. 실제로 비평의 역사를 보면, 일류 비평가로서도 평가를 잘못한 예가 적지 않으므로, 그들의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은, 결국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내가 책을 추천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대로, 마음의 양식이 되고,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은 그 책을 읽은 때문이었다는, 그런 책만을 들어서 이야기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도 반드시 내 의견에 찬성해 주리라고 바라지는 않는다. 무슨 책이든지 당신이 읽다가 재미를 느끼지 못할 적에는 아무 염려 없이 중단하여도 무방하다.
다만,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독서의 즐거움은 관능을 만족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지성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아 두어야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시장했던 배가 불러지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괴로움이 가셔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독서의 즐거움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만끽할 수가 있고, 언제든지 적당한 시간을 이용할 수가 있고, 다른 오락처럼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불편이 없다. 그리고 독서는 인생의 온갖 불행에 대해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피난처를 제공해 줄 때가 없지 않다.
베스트 셀러란 어떤 것인가
나는 세계 문학에서 다음 10편의 작품을 최고의 베스트 셀러로 선정한다.
헨리 필딩의 ‘톰 존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디킨스의 ‘데이비드 커퍼필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멜빌의 ‘모비 딕(白鯨)’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보통 베스트 셀러라고 하면 잘 팔리는 책,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책, 따라서 문학적 가치가 떨어지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너무 성급하게 하는 말이다.
첫째, 다수 사람이 읽는 책이 소수 사람이 읽는 책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근거없는 말이다.
첫째, 다수 사람이 읽는 책이 소수 사람이 읽는 책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말이다. 물론 베스트 셀러가 반드시 내용이 베스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시적으로 그런 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결국은 좋은 책만이 생존권을 얻는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모든 고전이 그것을 증명한다.
둘째로,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작품에 걸작이 없다는 것은, 문학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작품의 가치는 그것을 쓴 동기에 의해서 결정되지는 않는다. 새뮤얼 존슨은 어머니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걸작 ‘라셀러스’를 썼다. 작가가 도박을 할 돈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걸작이 나올 때는 걸작이 나오고, 작가가 품행이 방정하고 돈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걸작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셋째, 문학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도 경솔한 말이다. 위에서 든 10편의 작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각각 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어떤 것은 구성이 잘못되어 있고, 어떤 것은 문장이 서투르고, 어떤 것은 감상이 너무 노출되고 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비평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이 10편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그런 결점을 잊어버리고 마지막까지 따라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반드시 우리들의 흥미를 끄는 문제, ‘영원한 인생의 주제’를 그 속에 지니고 있다. 거기에 불멸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의 베스트 셀러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고 칭찬을 해도 2, 3년 동안은 소문에 끌려가지 않기로 하고 있다.
윌리엄 서머셋 오옴(W. Somerset Maugham) (1874-1965)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수상집 ‘ '요약하면'
좋은책 읽기에 대한 글 감사합니다. '오만과 편견' 은 오래전부터 수없이 훌룽한책으로 추천을 받아 몇번 읽었지만 제겐 역시 별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읽고 나니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이번엔 제게 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을까 해서요. 전쟁과 평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달과 6펜스는 제게 잊을 수 없는 책들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