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치매 아내 돌보다 과로사한 남편
나는 웃음치료사다. 일반인 모임에도 나가지만 주로 요양원에서 봉사한다. 그중에서도 몇 년 전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님께서 계셨던 요양원에 자주 들른다. 그곳에는 어머님과 같은 방을 쓰던 한 환자분이 생존해 계셔서 내가 잘 몰랐던 어머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반갑게 맞아주는 요양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님보다 한참 연하인 그분은 어머님을 '성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두 분이 다투기도 했지만 좋은 룸메이트였다.
그분은 내가 봉사하러 들르면 어떤 날은 반갑게 손을 잡아주고 마치 피붙이라도 대하듯 살갑게 맞아주지만 가끔은 "그놈의 손바닥 치고 낄낄댄다고 밥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며 호통칠 때도 있다. 기분 좋은 날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생전의 어머님 애창곡을 구성지게 뽑아대어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내가 웃음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시어머님을 데이케어센터에 모셨을 때 그 효과를 체험하게 되면서였다. 매주 수요일 그 수업에 참여하고 오시는 날은 치매 환자 같지 않은 언행을 하셔서 놀란 적도 있다. 그 후 병환이 깊어져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시긴 했지만 진작 서두르지 못한 죄책감과 아쉬움이 남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노래를 부르며 얼굴의 경직을 풀어 드리고, 체조로 몸을 유연하게 해 드리니 어르신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아하하~" 하고 내가 시범을 보이자 어린아이들처럼 잘 따라 하신다. 그분의 함박웃음도 눈에 들어왔다.
강의실 뒤에는 언제나 다부진 인상의 중절모를 쓴 그의 남편이 서 있다. "또 오셨네요!" 나를 만나면 한 손에 모자를 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했다. 가끔 아내가 좋아하는 잡곡밥을 해 와서 요양사들에게도 나누어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상에 걸터앉아 아내의 발톱을 정성껏 깎아주는 모습은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숙연해 보였다. 햇살 가득 내려앉은 창가에서 휠체어에 앉은 아내에게 조곤조곤 신문을 읽어주는 남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어느 날 요양원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 그 남편을 만났다. "차를 몇 번 갈아탈 정도로 댁도 멀다는데 매일 출근 도장 찍다시피 하신다며 요양사들이 감탄하던데요. 참 대단한 정성이십니다." 나의 인사에 그는 "저는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합니다.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이런 날이 지속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아내를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아내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 남편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손을 꼭 잡고 눈을 맞추며 "잘 자요, 내일 올게요." 등을 토닥여주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헤벌쭉 웃으며 배웅하는 아내가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뭘 알고는 있는 걸까요?" 요양사에게 물으니 그래도 남편이 늦게 오거나 안 보이면 밥도 안 먹고 영 기운 없어 한단다. 미약하나마 남편은 알아보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 강당에 들어서는데 늘 배경처럼 서 있던 그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과로사래요. 여기 오시다 길에서 쓰러지셨는데 못 깨어나셨대요." 요양사의 전언에 순간 나는 아찔 현기증을 느꼈다. 등에 진 가방 속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잡곡밥 통이 들어 있었단다.
"선생님 제 아내 잘 부탁드립니다!" 평소 무뚝뚝하던 그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한 발 한 발 하늘 계단 올라가며 손을 흔드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