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속에 ―이용악(1914∼1971)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이용악을 인생파 시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민족문학 시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용악 생각을 하면 엉뚱하게도, 그의 아우 ‘이용해’가 떠오른다. 김규동 시인의 회고록에서 이용해는 김 시인의 동급생으로 등장한다. 이용해는 김기림의 애제자였고 모범생이었으며 영어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이용해가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이유는 형님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그는 형님(이용악)이 집안을 일으킬 생각이 없으니 자기라도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런 일화를 보면 이용악은 어린 동생의 걱정을 샀을 정도로 시밖에 모르는 사나이였던가 보다. 
가문보다 시가 좋았던 이용악은 대개 어둡고 강렬한 시를 썼다. 그런데 드물게는 ‘꽃가루 속에’처럼 어여쁜 시편도 있다. 가난한 시인의 마음에는 원망과 울분만 가득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도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알았다. 비뚤어진 세상과 절망한 사람들에 관한 음울한 시편들 사이에는 이렇게 고운 세계가 간간이 끼어 있다. 넓게 펼쳐진 배추밭, 꽃이 만발한 그곳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생을 만끽하고 싶다. 세상은 이렇게나 변했지만, 우리 사람들이 생에 대해 지닌 소망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가 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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