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李正林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나는 동교동 로터리에서 합정동 쪽을 향해 걸어간다. 삼거리에서 길모퉁이를 돌면, 아침을 활발하게 시작하는 나이든 여인들의 인사 소리가 요란하게 밖으로 새어 나온다. 생명보험 건물인 것이다. 그 아래로는 일주일치 편지를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가서 붙이곤 하는 작은 우체국이 있고, 그 우체국 바로 옆으로 외줄기 기찻길이 나 있다.
내가 그 기찻길에 닿는 시각은 아홉 시 사십 분쯤,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기차가 지나간다. 손님을 태운 객차가 아니라, 둔중해 보이는 화물차다. 차량은 모두 해야 서넛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기차는 기차라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 있어야 한다.
일이 분을 다투는 출근 시간에, 땡땡 치는 종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들어오는 기차를 기다리고 서 있노라면,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 조바심이 났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도 자동차도 그 허술해 보이는 차단기 앞에서 얌전히 멈추어 서 있지 않는가.
성미 급한 운전사도 차단기 앞에서는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하는 순종과 평등의 시간. 소리만 들리지 모습은 보이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갑갑하여 차단기 밑으로 지나가려는 이도 있을 법하건만,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라도 기다리듯 공손히 두 발 모으고 서 있다.
어느 날, 그 느릿느릿 지나가는 기차의 운전석에서 기관사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까지 덩달아 하품이 나올 것 같아지면서 갑자기 부글거리던 조급증이 거품처럼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나는 이제 그 건널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그 짧은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분주한 동(動)의 세계에서 내밀한 정(靜)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 온갖 잡음이 소멸된 그 정적(靜寂)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정적, 일주일에 한번 무심(無心)을 배울 수 있는 화요일의 아침을 그래서 나는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